衣裳살롱

□사진·매튜 윌리암슨의 달콤한 흰색 드레스에 터프한 블루진 상의를 조화시킨 퓨전 패션

얼마 전부터 동양과 서양의 조리법을 두루 활용해 만든 ‘퓨전 후드’가 각광을 받더니, 패션에서도 ‘퓨전 패션’이 세계 여러 나라의 많은 디자이너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퓨전(fusion)’이란 용해, 융해 등 합친다는 의미의 낱말로, ‘퓨전 패션’도 서로 반대적인 요소를 조화시켜 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섞어 패션’이라고나 할까.
원래 이같은 퓨전 패션은 20세기 초에 시도된 것이다. 1908년, 니진스키를 톱 발레리노로 삼은 러시아발레단의 파리 공연이 그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패션 왕 폴 포와레는 이 발레단의 레온 바크스트가 연출한 동양적인 무대 장식과 의상에 크게 감명을 받는다. 그 후 그는 서양옷이면서도 동양풍을 풍기는 스타일을 발표한다. 롱이브닝드레스에 짤막한 원피스를 겹쳐 입힌 첨탑형의 의상 등, 서로 이질적인 요소인 동·서양의 퓨전 패션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로 들어선 요즘 퓨전 패션은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부드러운 것과 거친 것, 속옷과 겉옷의 조화 등이다.
특히 이번 시즌의 파리 콜렉션에선 이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쟝 꼴로나의 터프한 느낌의 블루 진 점퍼와 부드러운 러플 장식 스커트의 매치라든가, 발렌시아가의 셔츠 및 바지의 남성적이고 활달한 차림에 진주와 술 장식 등 여성적이고 섬세한 디테일의 첨가라든가, 로에베의 가죽 재킷에 파티용의 반짝이 스커트의 조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퓨전의 초급 단계다. 조금 더 아름답게 다듬어진 퓨전 패션도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루이비통의 밀리터리 풍의 민소매 상의에 받쳐입은 여성적인 벌룬 스커트(풍선 모양의 치마) 차림새에서는 깔끔한 이미지가 돋보인다. 지방시의 베이지빛 팬츠 수트에 클래식한 배두렁이 감각의 넓은 허리띠 차림은 색다른 감각으로 한 번쯤 입고싶어지는 옷이다. 크리스챤 디올의 퓨전 패션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다. 군복 프린트(미채 무늬)의 미니 스커트에 볼레로(앞을 여미지 않은 짧은 상의) 풍 상의와 그물 장식의 조화라든가, 밀리터리 팬츠에 날아갈 듯 하늘하늘한 시폰 소재 드레스의 매치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섹시한 이미지를 한껏 보여주고 있다. 런던 콜렉션의 매튜 윌리암슨 역시 재미있고 예쁜 퓨전 패션을 발표했다. 발레복을 연상시키는 흰색 드레스에 민소매 블루 진 상의의 조화다. 퓨전 패션은 음양 오행설과 통한다는 철학적인 깊이만큼이나, 코디네이트의 폭도 더욱 넓혀주어, 우리의 의생활을 즐겁고 풍요롭게 해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