演劇살롱

극단 자유의 총체극 「花水木(화수목) 나루」는 극단 자유가 35주년 기념으로 준비하는 첫 번째 공연이다. 오랜만에 김정옥 특유의 희곡과 연극만들기를 대면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웠다. 또한 40년에 가까운 극단 자유의 기나긴 연륜이 빗어낸 노장 배우들의 노쇠한 듯 하면서도 뭔가 여전히 청신하고 윤기가 배어나는 연기를 보는 것도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이번의 극단 자유 공연을 눈여겨보게 된 것은 4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극단에 새로운 지성적 연출가가 등장했다는 사실 때문에서이다. 바로 김승미씨이다. 프랑스에서 연극을 인문학적으로 연구한 학구파라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연출가 김정옥의 외동딸로서 그의 예술을 이어받을 2세라는 점에서 더욱 연극인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연극분야에서 부모의 예술을 계승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혁신과 개혁 성향이 강한 서양연극에서도 부모의 뒤를 이어 성공한 연극예술가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연극의 전승이 혈연적 체재 속에서 면면히 이어온 곳은 동양지역이다. 카스트 제도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 인도의 구루(Guru)도 원래는 부모가 자식에게 독점적 기술을 은밀히 전하기 위한 목적에서 생겨난 것이다. 일본의 무가시대에는 노오[能]의 상연권이 예술의 전승과 함께 부와 권력의 세습을 의미했던 까닭에 노오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秘傳(비전)의 형태로 은밀히 전해지기도 했다.
최근에 와서는 연극을 학문으로 연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연극학 분야에서도 2세들이 등장하여 눈에 띠는 업적을 내놓고 있다. 가까운 중국에서는 중국연극사 연구의 開祖(개조)라 일컫는 周貽白(주이백)의 아들인 周華斌(주화빈)이 중국 고대연극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저술을 내놓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가부끼」 말기의 이름난 대본작가였던 가와타케 모쿠아미의 아들인 가와타케 시게토시가 연극학자로서 우수한 저작을 내놓아 일본연극사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은 바가 있으며, 다시 그의 아들인 가와타케 도시오가 부모의 학문적 업적을 계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척박한 한국연극사 분야에서 이두현 교수와 사재동 교수가 일구어온 학문적 업적을 그들의 2세인 이미원과 사진실이 계승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만한 하다.
이렇게 부모의 연극과 학문을 계승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부모의 연극과 학문을 자식이 계승하려 한다는 일반적 현상은 바람직하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자식에게 연극하는 것을 물려주려는 부모를 만나기가 매우 어려웠다. 연극에 대한 사회의 호의적인 인식을 확산하기 위해서 좋은 일이다. 그리고 연극이라는 것이 수학공식처럼 외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기에 부모의 삶과 예술의 역정을 지켜본 자식이 부모의 연극을 몸과 마음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귀중한 것이며, 부모의 예술이 다음 세대에 전해져야 할만큼 귀중한 것이라면 같은 피가 흐르는 2세에게 전해지는 것이 최선책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