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龍昊聲(문화관광부 행정사무관)
함부르크발레단의 발레마스터 케빈 헤이겐의 청소년 특강
89년 말 메이플소르프와 시라노 등 일련의 진보적인 예술가들의 전시회에 대한 지원 사건으로 시작된 「미국 정부예술기금(the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 NEA)」의 존폐 논쟁은 ‘문화전쟁(Culture War)’이라고 불리는 국가적 차원의 이슈로까지 발전하였다. 동 논쟁은 이후 형식적으로는 96년부터 NEA의 예산과 인력을 각각 40%이상씩 감축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많은 정책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예술교육의 부각이었다. 일련의 논쟁을 겪으면서 NEA는 개별적인 예술가들의 창작사업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직접적인 지원이 가져올 수 있는 과도한 논쟁을 피함과 아울러 중·장기적으로 예술의 진흥을 가져올 수 있는 유력한 정책방향의 하나로 예술교육에 대한 지원 강화를 결정하였다.
물론 NEA가 예술교육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가지기 시작한 것은 훨씬 이전의 일이다. 이미 1988년에 「문명사회를 향하여(Toward Civilization)」라고 하는 예술교육 정책의 방향에 관한 중요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예술교육 정책의 일대 전환점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보고서는 유치원에서 시작하여 12학년, 즉 고등학교 3학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커리큘럼의 하나로 예술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NEA에서는 이러한 보고서의 후속 과제로 각 학년별로 최소한 이수 혹은 달성해야 하는 예술교육에서의 구체적인 목표들을 연구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였다. 96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예술교육에 대한 지원사업은 이러한 오랜 준비와 경험들을 바탕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이후 예술교육은 NEA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중요한 정책에 대한 포장재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며, 연방정부 차원의 예술지원사업을 맡고 있는 NEA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던 공화당원들에 대해서도 유효한 방어무기가 되었다. 예술교육이 중요시된 것은 예술 그 자체의 가치 때문만이 아니라 배우는 학생들로 하여금 좀 더 깊이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창의성과 다양한 문제해결능력을 길러주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예술교육에 관한 한 논란의 여지가 그만큼 적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술교육의 강화에 대해서는 여러 관련 연구가 밑바탕이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NEA에서 매 5년마다 실시하는 「공공예술참여조사(SPPA)」에 의한 통계조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연구결과는 성인기의 예술참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유년기의 예술 활동 경험 혹은 예술 활동에 대한 부모의 격려 등 예술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예술 활동과 향수를 진흥하기 위해서는 개개 예술단체에 대한 창작 지원과 아울러 전 국민에게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대해 접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재단 가운데 하나인 「게티재단」을 이끌고 있는 해롤드 윌리엄스는 1993년에 있었던 「공공정책과 예술」을 주제로 한 심포지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예술은 오랫동안 학교에서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제는 수학이나 과학 혹은 국어 교육처럼 필수적인 교육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현재 미국 정부나 그 밖의 공공 영역에서 예술교육을 어떻게 고려하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예술교육은 대단한 예술영재를 발굴하여 이들을 엘리트 예술가로 길러내기 위한 교육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다수의 학생들에게 예술을 통해 인생을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닌 애매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는 그 동안 우리나라 예술진흥정책이 대부분의 노력을 공급 부문, 즉 예술가나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어왔다는 것과도 관련이 깊다.
이처럼 예술교육에 대한 정책적 진공상태가 지속되어 온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생색이 나지 않는 정책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거나 반대로 미실시로 인해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다른 사업들과는 달리 예술교육은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꾸준히 하지 않으면 그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점에서 정책적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국민들이 예술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해서 갑자기 경제가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수많은 국민들이 경제적인 풍요에도 불구하고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 느끼거나 심한 경우 불행하다고 느끼는 결과를 가져올 따름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예술교육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 올림픽파크텔에서는 「문화발전 5개년 계획」을 세우기 위한 전초 작업으로 문화예술계 전문가 등 광범위한 사람들로부터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연극을 전공하는 어느 대학교수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 분의 주장은 이러했다. “연극이나 춤은 하나의 예술장르로서 보다는 언어와 몸짓을 통한 자기 표현 교육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필수적인 과목의 하나로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울러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예술교육은 문화예술에 대한 올바른 향수능력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문명사회를 향하여」에서도 예술교육의 목표에 대해 “모든 학생들에게, 창의성이나 예술적 수단에 대한 교육과 아울러 예술작품을 올바르게 선택하는데 필요한 비평적인 요소들에 대한 감각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술진흥정책의 중점은 예술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예술교육은 예술가를 길러내기 위한, 엘리트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보통의 학생이 다양한 예술적 표현기술을 습득하여 예술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유효하게 드러내고 표현하는 방식을 배우고, 아울러 그러한 예술을 보고 즐기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그들의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가꾸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향의 교육을 말한다.
적어도 제대로 된 예술교육이라면 학생들에게 단지 예술을 접하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게 하고 그들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무한한 잠재력을 깨닫게 하고, 이를 발휘할 수 있게 하며, 또한 그로 인한 결과물들을 충분히 음미하고 즐김으로써 그들의 인생이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향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는 우선 초·중·고등학교 교육에 있어서 학생들이 매 학년마다 최소한 배워야 할 예술교육의 내용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구체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를 위해 필요한 예술교육 전문교사를 양성해 가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예술 분야 대학교육은 이도 저도 아닌 아마추어 예술가만을 양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예술을 통해 문화적인 인간을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예술교육인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좀 더 정교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개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예술교육인과 피교육자가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공교육 시스템만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유력하게 검토해볼 수 있는 것은 ‘방과 후 예술교육’이다. 공적인 영역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방과후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문화복지의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예술단체에 대해 예술 프로그램과 아울러 예술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예술진흥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향의 예술교육은 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며, 물질적인 풍요를 넘어서서 진정한 부와 행복이 어디에서 찾아질 수 있는가를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