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마사이 마라족 사람들과 캠프파이어를 마치고

우편함에 케냐 우표가 붙어있는 엽서 한 장이 와 있었다. 미지의 세계 아프리카에서 온 소식이 아닌가! 나이로비의 파라다이스 사파리파크호텔의 책임자인 김인학 전무로부터 케냐 주재 KOTRA(한국무역공사) 「한국의 날」 행사 후원으로 전통무용단을 초청하고자 하니, 추천해 달라는 것이다. 부산한국무용단(예술감독 이윤자)과 함께 레퍼토리를 결정하고, 연습을 한 후, KOTRA행사의 정식초청장을 들고, 15일간의 아프리카 여정에 오른 것은 첫 엽서를 받고도 7∼8개월이 훌쩍 지난 후였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도착하니, 10월인데도 후덥지근한 날씨가 먼저 우리를 맞았다.
나이로비에서 사파리파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푸른 잔디 광장, 아름다운 거목 정원과 나지막한 건물들, 10만여 평의 대지에 세워진 단일 규모로는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호텔이다.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웠다. 아프리카 지역의 고유 건축양식과 한국 기와문화를 접목한 디자인으로 현대 감각의 석회분으로 마무리하고, 쪽나무 지붕으로 흑단목을 연상케 한, 아프리카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고급스런 호텔이었다. 각 나라의 대표들이 오면 자기네 나라 호텔보다 이 호텔에 묵고 싶어하고, 관광장소처럼 차나 식사를 즐긴다고 하는 만큼, 8개나 되는 다양한 레스토랑과 아프리카 가든 극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공식 행사도 호텔 안에서 이루어졌다. 케냐에 주재하는 모든 대사관과 관계 내빈과 교포들이 모여 「KOTRA 한국의 날」 행사가 이루어졌다. 공식 행사의 휘날레로 『부채춤』과 대구국악관현악단에서 파견된 사물놀이 팀의 연주가 합세해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모두들 좋아해 성공적이라는 결과는 나왔지만 아직도 우리의 정신이 전달될 춤은 없는가 한번 생각해 보았다. 『살풀이』, 『부채춤』, 『북춤』, 『탈춤』, 『화관무』…, 창작 춤은 어떤가?
케냐는 14세기 이후 아랍계들이 정착하여 상가의 8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경제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인도인들의 상술은 알려진대로 대단했다. 우리들이 그곳 호텔 안 쇼핑점에서 만난 어느 인도인은 별명처럼 ‘노 프로블럼(No problem)’으로 통할 정도였다. 우리들의 갖가지 요구에 늘 문제없다고 대답했고 친절에 친절을 더하여 주었다. 한 예로 내가 그곳 고지대의 기압차이 때문에 견갑골에 결림 있음을 알고는 아프리카의 젤(gel)로 된 파스를 직접 구해주기도 하였다.
우리 문화를 통해 한국을 알리고, 소비자들이 이러한 공연을 통해 한국을 경험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우리 물건을 받아들이는 상황으로 이끄는 심리적 상술이 아닐까? 국력은 경제적 힘을 대변해 준다. 그렇지만 홍보에 있어 국력이라는 것이 경제력으로만 측정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문화의 자존심, 다른 나라가 가지고 있지 않은, 혹은 남들이 잃어가고 있는 정신적 친화력이 경제적 위력을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공식행사를 마치고 대사님, 교포회장님 등 많은 분들이 무용단을 초청해 주셔서 호텔 밖 나이로비 시내를 접할 수 있었다. 치안 면에서 안전한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사관 방문시에도 우리가 대사관 입구에 도착하니 그제서야 경비원이 나와서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이유인 즉 소말리아, 이디오피아 등지에서 건너온 배고픈 사람들이 집단으로 총, 칼을 들고 들이닥쳐서 여러 가지 피해를 받고 산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경비 사업이 성행하고 있는 이유를 알 만했다.재래 시장은 우리나라 시장 같은 분위기로 들썩들썩했고 한국말을 해가면서 반가이 맞아주었다. 매주 한 번씩 열리고 있는 벼룩시장엔 원주민들의 수공예품들이 광장 전체를 메우고 있었다. 흥정을 하다보니 어떤 이는 달러의 환율도 확실히 모른채 그것이 그들의 삶을 충족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열망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곳 나이로비에서도 맥도날드 상점이 성시를 이루고 있었고 콜라와 피자는 우리 무용단원들의 기호를 충족시켜주었다.
거리엔 새까만 피부의 꼬마 아이들이 손을 내밀고 있었는데, 1달러나 볼펜 한 자루라도 줄라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우루루 같은 또래의 꼬마들이 달라붙는다. 그들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버스를 타고 갈 때면 가슴이 아픈 것은 잠깐이고 뭔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그들에게 마약을 살 수 있는 현금을 절대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어린이 마약복용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야기했던가. 진정한 자비심은 물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이런 말은 지금 그들에겐 허공을 가르는 메아리일까. 볼펜 한 자루, 1달러가 얼마나 지독히 끝없는 채움의 시작인지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간 나는 뭘 채우고 버리려 할까?
공식 행사를 끝내고 진정 광활한 아프리카를 느끼고 싶었다. 나이로비의 날씨는 아침, 저녁 기온 차가 심해서 우리나라 늦가을 날씨처럼 쌀쌀해서, 바바리나 숄을 걸치고 다녀야만 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와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들의 타악 리듬 같은 원시적인 광활한 뜨거운 아프리카를 느끼고 싶었다. 결국 공연 스케줄 변동을 핑계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나이로비를 떠나 만나는 첫 번째 여행지는 케냐의 남서쪽, 탄자니아 국경에 있는 나이로비에서 28㎞ 떨어진 마라 江(강)변의 대초원, 마사이 마라(Masai Mara) 국립보호구역이었다. 덜컹거리는 도로를 5시간 정도 가야만 했다. 우리와 동행한 사파리파크호텔의 직원들(부산파라다이스호텔의 교환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여행), 호주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실습차 그곳에 와 있는 한국 학생, 우리대학 미술학과 졸업생과 결혼한 연유로 우리를 위해 특별히 고생을 마다않고 특별히 동행하신 그곳의 모든 지리와 안전 수칙을 꿰고 있는 김부장님,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영국 청년 등 일행은 자동차 트렁크에 식탁보, 유리컵, 음료, 수저, 쌀, 빵 등을 싣고 다니며 함께 여행을 즐겼다. 주변에 사파리차를 타고 온 세계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여기 저기서 새로운 세계를 맞고 있었다. 갑자기 짧게 쏟아지는 비가 더욱 아련한 초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수사자는 암사자가 사냥해 온 먹이를 먹고 있고, 새끼와 어미는 멀리서 수사자의 식사 끝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 원주민들도 남자는 맹수들에게서 가족을 지키는 일과 종족 번식만을 하고 여자가 생계를 지키고 자식을 키운다. 그리고 일부다처제 나라로 여자가 결혼 할 때 남자에게 정해진 몇 마리의 소를 가져간다고 한다. 여자애가 태어나면 그 집안 기둥이 빠지는 걸로 슬퍼하고, 소가 없으면 시집도 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혼하고도 남자는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나버리고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힘들게 사는 모습이 많았고, 호텔직원 중에도 그런 여자들이 있고 많이들 찾아와 직업을 구하고자 한다고 했다. 우리가 묵는 호텔방 앞에서 늘 그 자리에 정원의 잡초를 뽑는 아프리카 여인들을 볼 수 있었다. 아침 나절에 허리 굽혀 일하던 그 자리에서 저녁시간이 되어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 세상은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은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인가?’
동물들이 나타난 곳으로 사파리차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텐트를 칠 수 있는 캠프에서 자리를 준비했고 식사 준비 중 자칫 소홀하면 침팬지나 원숭이들에게 우리의 식사용 빵을 두 눈뜨고 송두리째 빼앗기는 경우도 있었다.
저녁이면 마사이族(족)들이 캠프파이어를 준비해 양고기를 직접 장작불을 피워 우리와 함께 준비해온 와인과 맥주로 건배하며 먹고 마시며 춤을 즐겼다. 그들이 사냥을 갈 때와 다녀와서 추는 춤은 땅을 높이 튀어오르고 고함치며, 노래 부르며 원무를 추는 것이었다. 우리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 춤을 추었다. 영역을 표시하듯 소리를 내고 발을 굴러댔고 땅의 소리를 듣듯 그렇게 가볍게 점프를 하는데, 그들의 반질거리는 건강한 검은 피부, 남녀 모두 작은 얼굴에 곧게 뻗은 다리, 너무나 멋진 체형들이었다. 원색의 붉고 화려한 색채의 의상, 그에 어울리는 자연석, 동물의 뼈, 열매들로 만들어진 장신구…. 모든 것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붉은 진흙으로 머리며 몸의 색을 장식하여 직업을 표하기도 하고, 몸을 보호하고, 얼굴의 페인팅한 모습은 현대 미술, 화장술 등을 무색케 했다. 그 자리에서 찍은 무비 카메라를 재생하여 그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더니 자꾸 그것을 보려고 하는 바람에 충전해 간 밧데리를 다 소모해버려 찍어야 할 장면들을 놓쳐서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동물들이 일어나는 시간인,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난 우리 몇 명은 서둘러 氣球(기구)에 올랐다. 카렌 브릭스(Karen Blixen) 원작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촬영한 곳으로 이름난 마사이 마라 공원에서 우리 모두는 열기구를 타고 높이 떠다니며 광활한 초원과 동물들의 잠자는 모습들을 망원경을 통해 볼 수 있었고, 내려와서는 초원으로 펼쳐진 지평선과 아프리카를 상징하듯 외로이 서 있는 일명 ‘큰나무(Big tree)’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미국에서 온 일 가족, 캐나다인(한 대에 7명 탑승)과 함께 사파리차를 타고 가면서 대화 중에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오! 백남준이 한국 사람임은 알고 있다’며 반가워했다. 그들은 우리를 ‘백남준의 나라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사람의 예술가를 통해, 지도 어디에 위치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