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4월인데도 사방은 흰눈으로 하얗게 덮여있었다.
웁살라(Uppsala)는 대학도시이다. 그곳에 나는 다녀왔다. 스웨덴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는 한 한국여인을 만나기 위해 간 것이다. 그 여인은 내가 미리부터 알고 있었던 게 아니라 여행 중에 만난 G씨에게서 그녀 이야기를 들어서 알게됐다. 서울을 떠날 때만해도 웁살라라는 도시는 나의 여정 속에 끼어있지 않았다. 실은 웁살라라는 도시이름조차 나는 알지 못하고 있었던 곳이다.
“웁살라대학교수인 스웨덴남자와 살고있는데 만나보면 좋을 거예요. 스웨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하여간 꼭 만나보도록 하세요”라며 G씨는 그녀의 전화번호와 함께 ‘미세스 영자 킴 얀손’이라는 이름을 적어주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본명은 김영자인 것 같았다. G씨가 나에게 꼭 찾아가 보라고 한 것에는 외로울지도 모를 그녀를 위한 배려의 뜻이 더 많이 담겨있었다.
독일 간호원으로 갔다가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 그대로 남아서 미술공부를 하던 중 파리에서 스웨덴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다는 것이 그녀에 대한 사전 지식이었다.
스톡홀름 공항에 내리자마자 호텔에서 짐을 풀고는 G씨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돌렸다. 마치 스웨덴에 온 목적이 미세스 얀손을 만나러 온 것인 양 제일 먼저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전화는 직접 그녀가 받았다. G씨의 말대로 그녀는 나의 한국말을 듣는 순간 반가워하며 웁살라에 오라는 말부터 했다.
스톡홀름 중앙역에서 탄 기차는 50분만에 웁살라에 도착하였다. 그녀는 기차역에 나와있었다. 그녀와 나는 미리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처럼 서로를 금방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기차에서 내린 한국사람이 나 혼자였고 기차역 플랫폼에 나와있는 한국여인이 또한 그녀 한 사람이어서 의심할 여지없이 금방 서로를 알아봤다. “오시느라고 피곤하셨죠? 미세스 얀손입니다. 이 사람은 제 남편 카알입니다.” 옆에 서있는 키 큰 남자를 그녀는 나에게 소개했다. 나는 손을 내밀어 그녀에게 인사하고는 얀손씨에게도 같은 방법의 인사를 하였다. 미세스 얀손은 화장을 하지 않고 있었다. 머리도 생머리 그대로여서 발랄한 여학생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여행하느라고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마음을 안겨줬다.
그녀의 집으로 가기 전에 얀손씨는 자기가 교수로 있는 웁살라대학 캠퍼스를 안내하겠다고 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웁살라대학을 보여들여야 한다는 거예요. 일단 집으로 들어가면 다시 밖으로 나오기가 어려울지 모르니 미리 보여드리자고 했어요.” 그녀는 한국손님인 나를 남편이 더 기뻐하고 있다고 했다.
얀손씨는 운전을 하면서 연구소와 도서관, 강의실 등을 일일이 설명을 해가며 보여주었다. “웁살라대학은 4백여 년 전에 세워진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전통있는 대학입니다.” 부활절 휴가가 막 시작된 직후라서 거리는 한적했다. “강의가 시작되면 이 도시는 연구원과 학생들로 가득 찬 도시로 변합니다. 대학교육과 관계없는 일들은 이 도시에선 거의 볼 수 없지요.” 웁살라대학의 생물학교수인 얀손씨는 자기의 연구실 건물을 지나면서 일년에 한번씩 파리대학으로 특강을 하러 간다는 얘기도 했다.얀손씨네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니까 신발들을 벗어놓은 것이 눈에 띠었다. 미세스 얀손이 한국여성이라 한국식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하는가 했더니 스웨덴 가정에서도 대개는 집안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는다고 한다. 그런 작은 문화 한가지라도 한국과 같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스웨덴에 친근감이 갔다.
우리가 집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남편인 얀손씨가 부엌으로 들어가서 나와 부인을 위해 차를 준비하고 들고 나왔다. “우리는 친구가 오면 서로 대신해서 차 준비를 해 줍니다. 이 나라는 남녀가 아주 평등하거든요. 남편의 손님이 왔을 때 부인이 차 준비를 하듯이 남자들도 이 나라에선 부인을 위해 부엌에 나가 가사일도 합니다. 그래서 집안 일은 으레 나누어서 하게 되어있고 또한 생활비도 서로가 반반씩 부담합니다. 스웨덴은 여성의 70퍼센트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어떤면에선 스웨덴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수입이 좋기도 합니다. 우스운 것은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때도 차값이나 음식값을 남자가 자기 것만을 내고 여자도 자기 몫을 지불합니다. 제가 얀손씨를 처음 만났을 때도 얀손씨가 자기 먹은 것만을 내서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몰라요. 저녁을 함께 하자고 해놓고는 계산을 할 때 자기가 주문한 메뉴와 음료값을 정확히 계산해서 자기 것만을 내고 있으니 한국에서 같으면 그런 째째한 남자하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예요. 처음엔 실망을 했지만 그가 학생신분으로 있을 때라 이해하려 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돈 없는 젊은이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얼마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럼 오늘은 저 때문에 돈을 더 많이 내야겠네요” 했더니, “아닙니다. 오늘 저녁식사는 비용을 남편도 함께 부담하겠대요. 보통 때는 나의 친구가 오면, 남편은 자기 방에 들어가서 책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하는데 오늘은 이여사님과 함께 자기도 즐거운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같이 내겠다는 겁니다.” 나는 마음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갑자기 전화 한 통으로 찾아간 나였기 때문에 예의 바른 스웨덴남자에게 행여나 좋지 않게 보였을까 하는 것이 속으로 조금은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스웨덴에 살면서 한국과 문화풍습이 달라서 힘든 일은 없었는지를 물었더니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얀손씨와 결혼을 약속하고 스웨덴의 부모님께 인사를 가기로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가 스톡홀름으로 떠나기 전날에 그의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친구하고 여행을 다녀오게 돼서 너희들이 오는 것을 못 보게 되었으니 그냥 집에 와서 잘 쉬다 가거라”는 전화였어요.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한국 며느리를 맞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얀손씨가 말하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스웨덴에서는 자식의 결혼에 대해서 부모들이 반대하는 일이 없다는 거예요. 물론 자식들도 결혼을 할 때 부모의 허락을 맡아야 하는 일은 없고요. 부모들은 그저 자식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것을 기뻐할 따름이라고 합니다.”
스웨덴에선 아이들이 태어나면 정부로부터 육아양육에 대한 모든 혜택을 받게 되고 교육도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와 같이 ‘내가 어떻게 해서 너를 키웠는데!’ 식의 강압적인 부모의 권한같은 것은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노후에도 부모들이 자식에게 의지한다든가 자식에게 책임을 강요하는 일도 물론 없다고 했다.한국사람의 사고와 너무 많이 다른 스웨덴 사회의 이야기가 나에겐 별로 흥미 있게 들리지는 않았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호간의 애정은 구속과도 관계된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부모와 자식간에서는 그러한 의무와 권리까지 없애버린다면 얼마나 허전한 인생일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남녀의 성문제에 대해서도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입니다. 스웨덴의 부모들을 자녀들과 성에 대한 얘기도 숨김없이 나누곤 합니다. 그리고 딸이 여학생만 되면 피임약을 복용하는 법을 엄마들이 일러줍니다. 그리고 스웨덴의 많은 젊은이들은 좋아하는 상대하고 자유롭게 성관계를 갖기 때문에 결혼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갖고 싶은 여성들은 그래서 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들만 낳아서 미혼모 생활을 하지요.”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도 식탁을 치우는 일은 얀손씨가 맡아 했다. 내가 미안해했더니 미세스 얀손이 “괜찮아요. 여기서는 그렇게 해요”하며 그녀는 나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에 더 신경을 썼다.
미세스 얀손에게 나는 부모님에 대해서 물었다. 부모님이 그녀의 결혼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굼해서였다. 그랬더니 그녀는 어릴 때의 집안 이야기부터 나에게 들려주었다.
“저는 거제도 어촌에서 태어났어요. 어머니가 가족의 생활을 위해 바다에 나가서 전복, 소라, 미역들을 따서 그것을 팔아서 저의 형제 삼남매를 키우셨어요. 아버지도 계시지만 아버지는 우리가족을 위해 경제적으로 아무런 역할을 못하시는 분이셨어요. 참으로 허약한 분이시죠. 술을 좋아하셔서 매일같이 술을 드시고는 어머니를 괴롭히시는 거예요. 어머니가 바다에 나가서 따오신 것들을 아버지가 시장에 가지고 나가 파시는 일을 하셨는데 아버지는 언제나 그 돈으로 동네어른들과 술을 드시고는 취해서 집에 오시곤 하는 겁니다. 그러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제나 큰소리로 다투시곤 했어요.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시는 것이 싫어서 많은 시간을 바다에 나가 지냈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우리집 앞에 다다르면 안에서 어머니가 소리지르시는 목소리가 담 밖으로 들리곤 했어요. 그러면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곧바로 바다가로 가서 바위 위에 앉아 해질 때를 기다립니다. 그때쯤이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싸움이 끝나니까요. 바위 위로 파도가 쳐서 나의 옷을 흠뻑 적실 때도 있어요. 옷이 젖게되면 처음엔 어머니에게 야단맞을까봐 겁이 났었는데 차츰 나는 그게 기분이 좋았어요. 자기자학 같은 감정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일부러 옷을 적시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젖은 옷을 입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싸우시는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무언의 반항이었던 것이지요.”
미세스 얀손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