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老回顧

▣ 자연친화적이고 사색적인 선비의 道(도) ‘風流(풍류)’
1916년 전후에 일본사람들이 劇場(극장), 유곽(공창), 그리고 요리집을 우리나라에 만들었는데 조선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향락을 즐기는 한 수단이었다.
요리집은 내가 초등학교 5~6학년 때 우리나라 사람들도 만들기 시작했는데, 조선사람이 만든 유명한 요리집으로는 明月館(명월관)과 종로 네거리 YMCA옆에 있던 太西館(태서관), 그리고 지금 조흥은행 본점 자리에 있던 食道園(식도원), 관철동에 지금도 이름이 남아있는 國一館(국일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요리집은 아무나 들어가지 못했고 아주 富者(부자)들만 출입이 가능했다.
그 시대에 내가 아는 부자들은 전라도 사람으로는 중앙고등학교, 동아일보, 고려대학교를 설립한 金性洙(김성수), 경상도 사람으로는 張吉相(장길상)씨가 큰 지주였다. 그때는 부자의 척도를 몇 마지기 농사를 해서 쌀을 몇 석이나 가지고 있는가인데, 이 사람들은 모두 다 만석이 넘었다. 그리고 閔泳徽(민영휘)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平安(평안)감사를 지내면서 돈을 모은 아주 악명 높은 사람이었다. 이름의 끝자를 따서 徽文(휘문)학교를 설립한 이가 바로 이 사람이다.
이 세 명이 지주와 전통적인 부자들이라면, 신흥부자로는 鑛脈(광맥)을 발견하여 벼락부자가 된 崔昌學(최창학)과 方應模(방응모)가 있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할 무렵, 러시아인, 청국인, 영국인들이 우리나라로 마구 들어와서 뒤지고 찾고 야단법석을 떨곤 했는데 그때 미국 사람들도 金鑛(금광)을 시작했다. 그네들은 금광을 찾으면 ‘손대지 말라’는 뜻으로 “No, touch!”라고 외쳤는데, 그 말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와서 ‘노다지’가 된 것이다. 최창학과 방응모씨가 바로 이 ‘노다지’를 한 사람들이다. 방응모씨는 1932년에 조선일보를 산 사람이고, 최창학씨 집은 지금 서대문에 자유당 시대 이승만 대통령의 아주 측근이었던 이기붕의 집이었고, 그 다음에는 삼성병원이었던 집이 하나 있다. 그때는 서대문의 큰 양옥집이었다. 이 사람들과 그 외의 돈이 굉장히 많은 장사꾼인 거상들만이 이런 요리집에 출입했다. 나는 25살이 넘어서도 그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 워낙 비싸니까 들어가 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술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으레 妓生(기생)이 불려간다. 이 기생들을 일본사람들이 組合(조합)으로 구성했다. 이것을 우리나라에서는 券番(권번)이라고 불렀으며 여기에 적을 두어야만 요리집에 나갈 수 있었다. 권번에서는 상류사회 사람들이 즐기는 노래, 춤, 간혹 서예 등 예능을 했는데, 오늘날 국악, 춤이라 불리우는 것의 존속과 발전의 근원이 바로 이것이다.
본래 일본의 요정은 유곽에서 술도 팔고, 연회도 하며, 이어서 그곳에서 자는 것이 전통인데, 그 후 요리집이 따로 생겼지만 기생과 함께 자는 풍습은 그대로 계승됐다. 일본 기생은 술자리에서 몸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한 풍습이었는데, 우리 풍습에서는 상류 기생은 일본기생처럼 몸을 함부로 내 맡기지는 않았다는 것을 춘향전에서 춘향이 이도령을 기다리며 절개를 지켰다는 이야기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종황제시대에 史料(사료)를 수집하고, 종교, 민속 등 다방면으로 연구한 李能和(이능화, 1869~1943년 고종 26년(1889년) 貞洞英語學堂(정동영어학당) 졸업, 31년 漢語學敎(한어학교) 졸업, 32년 官立法語學敎(관립법어학교)에서 修學(수학)한, 그 당시로는 최고의 지식인으로 융희 1년(1907년)에 한성법어학교 교장에 취임을 하기도 한 사람이다. 議政府(의정부) 관청의 특명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왔으며 1910년에 한일 합방한 후 하던 것을 모두 중지하고 학문에만 몰두했다.)씨의 저서 중 「朝鮮解語花史(조선해어화사)」(이 책의 제목 중 ‘해어화’란 말을 알아듣는 꽃, 즉 기생을 말한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는 1牌(패), 즉 1급은 ‘妓生(기생)’이라 부르며, 2패는 ‘殷勤者(은근자)’라고 한문으로 썼지만, 우리가 흔히 엉터리나 詐欺(사기)같은 것을 가리켜 ‘은근짜’라고 부르는 말이 이것이다. 3패는 ‘搭仰謀利(탑앙모리)’라고 한자로 쓰는데, ‘더벅머리’를 이르는 것이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지 않은 엉터리같은 여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계급에 따라서 1패는 말 그대로 기생이며, 2패는 돈도 약간 있고 같이 놀러 다닐 수 있는 여자, 그리고 3패는 아무 곳에서나 돈을 주든 말든 몸을 주어버리는 여자를 말한다. 4패가 있어야 하는데, 「寺黨牌(사당패)」는 너무 천하게 여겨서 4패로도 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이능화씨가 화류계 여자들을 계급으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

그는 기생의 시초를 신라시대로 규정했다. 신라 24대왕인 振興王(진흥왕, 534~576년) 때에 화랑의 전신인 ‘源花(원화)’라는 것이 있었다. 그 원화의 두 우두머리의 이름은 南毛(남모)와 俊貞(준정)으로 3백여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잘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을 ‘源花道(원화도)’라고 불렀다는 점과 로마시대나 중국의 진시황 시대를 비추어 보면, 이들은 분명 진흥왕의 애첩들이었다. 그래서 ‘원화’를 우리나라 기생의 시초로 본 것이다.
이능화씨 설에 의하면 처음 원화의 두 두목인 남모와 준정이 서로 시기하여 준정이 남모에게 술을 먹여서 강에 빠뜨려 죽였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질투나 시기정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왕은 그 준정을 사형에 처하고, 그 후 ‘여자는 안되겠다’하여 귀족출신의 미소년들을 뽑아서 ‘花郞道(화랑도)’를 만든 것이다.
高麗時代(고려시대)에는 恭愍王(공민왕)이 사랑하는 아내 노국공주가 죽은 후 여자를 만나지 않으려고, ‘화랑도’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子弟衛(자제위)’라 하여 역시 미소년들을 궁중에 들였다. 그 자제위로 인해 분란이 일어나 결국은 공민왕이 내시에게 칼을 맞아 죽는 일도 발생했다. 신라시대의 흐름을 공민왕도 알고 자제위를 만든 것이다. 이것도 이능화씨 설에 의하면 나라를 지키는 군대의 임무보다는 性(성)적인 면이 강했다고 했다. 원화의 계통을 물려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능화씨는 화랑도를 國仙徒(국선도), 源花徒(원화도), 風月徒(풍월도), 風流道(풍류도)라고도 불렀다고 했는데, 고려시대에 삼국유사를 썼던 崔致遠(최치원)은 “우리나라의 玄妙(현묘)한 道(도)가 있으니 이를 風流(풍류)라고 이른다”라는 말을 했다. 김유신이나, 원술같은 사람도 대표적인 화랑 출신이다. 박정희가 말하는 그 씩씩한 군대에 왜 풍류도라는 말을 넣었는가가 문제이다. ‘풍류’라는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체념과 탈속의 경지에 들어서서 자연과 친화하며 詩文(시문), 歌舞(가무), 淸談(청담)을 즐기며 운치있고, 우아한 사색 생활을 즐기는 선비생활을 이르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능화씨 자신이 상상하여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최치원의 말과 다른 모든 것들을 통해 유추해서 신라시대의 화랑도라는 것을 ‘풍류도’라고도 불렀는데, ‘풍류’라는 것이 ‘씩씩한 군인정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궁중의 ‘자제위’와 더불어 고려시대에는 奴婢(노비)가 있었는데, ‘노’는 남자, 그리고 ‘비’는 여자들을 일컫는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돈을 주고 사고 팔 수 있는 제도가 바로 이것인데 이 속에서 예쁜 여자를 골라서 愛妾(애첩)으로 삼기도 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官妓(관기)가 생겼다. 나라에서 기생이라는 직업을 하나의 조직으로 구성해 놓은 것이다. 관기로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藝能(예능)을 갖추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기생과 나머지 하나는 藥房妓生(약방기생)이라고 하여 왕비나, 왕의 어머니 등 왕족의 여자는 모두 남자였던 의원이 직접 만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진찰하고 의원에게 말을 전해주곤 하던 여자들을 이르는 말이었다. 黃眞伊(황진이),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倭將(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빠진 論介(논개), 그리고 가설이지만 춘향의 어머니, 月梅(월매) 등으로 미루어 보건데 조선시대에 기생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분명한 것은 춤·소리·연극 모든 演藝(연예)를 상류계급 가정의 여자들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매춘에서 시작된 일본 전통연극 「가부끼」
1603년부터 행해졌다는 일본 전통연극인 「가부끼[歌舞技]」의 출발은 여자들이 몸을 팔기 위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기생들과 다른 점은 몸을 팔기 위해 자기를 과시하는 것으로 노래하고 춤을 추었던 것이다. 그것이 집단적으로 자꾸만 커져가면서 보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무대에서 행해지게 되고 점차 형태를 만들어져 퍼포먼스화된 것이 「가부끼」이다.

1603년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가부끼」와 유사한 사당패가 있었다. 사당패에는 지금의 抱主(포주)와 같이 여자들을 자기 아내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몸을 팔게 시키곤 하는 謀甲(모갑)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모여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몸을 팔았는데, 「가부끼」와 마찬가지로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이들이 장소로 사용한 곳이 바로 절이었다. 스님들에게 여자를 바치고 그 代價(대가)로 그런 일들을 행했는데, 그래서 「寺黨牌(사당패)」의 한자를 보면 절사字(자)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능화씨는 「사당패」를 너무나 천하게 여겨 4패에도 넣지 않았다.
「가부끼」와 「사당패」가 시작했던 장소를 비교해 보면 「가부끼」의 경우, 芝居(シバイ, 시바이)(현재 일본에서는 전통연극인 「가부끼」와는 다른 개화된 연극을 「시바이」라 부른다. 내가 5~6살 적에는 “말[馬]시바이 보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