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탐방

박은성씨

『Kiss』. 세사람이 주고받는 에너지가 무대위에 흐트러지지 않는다.
몇 일째 , 홍대 앞 소극장에서 젊은 춤꾼들의 댄스페스티벌을 보았다. 공연이 끝나면 ‘주차장길’을 지나곤 하는데 길가에 이어진 原色(원색)의 벽면이 인상적인 곳이다.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감독: 빔 벤더스)에서 시종 흐르던 하바나(HABANA)거리의 원색의 향연을 떠올리게 한다. 풍부한 태양 빛을 배경으로 원색은 강렬하며 순수한 빛깔이 된다. 니스(Nice)에서 작업했던 마티스(H. Matisse)의 그림이 그렇고 햇빛을 안고 춤을 추었던 바라간(L. Barragan)의 건축물도 원색의 이미지를 강한 순수함으로 표현했다.
오늘 홍대 앞 카페에서 만난 朴垠星(박은성, 29세) 또한 원색의 이미지를 가진 무용수이다. 무대에서 보아온 박은성의 몸짓은 가식이 없는 춤언어의 덩어리다. 그를 주목하는 이유인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박은성이 보여준 무대에서의 활동은 실로 왕성한 것이었다. 김복희무용단과 가림다무용단의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어떠한 무대에서도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해냈다. 어디서나 그의 넘치는 에너지와 빼어난 기교에 이목이 집중되지만 그러한 모습들을 서술함에 주저 없이 ‘순수함’이란 단어를 쓰고싶다. 순수함이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근본의 상태를 말한다. ‘몸짓으로 발산하고 싶은 욕망’, 이것은 ‘춤’이 갖는 근본적인 생명력이며 이를 강렬한 몸짓으로 표현하는 박은성의 춤은 원색의 순수함을 담고 있다. 투박한 듯 세련된 춤언어, 사고하는 대로 무대에 툭툭 던져내는 몸짓에서 그가 만드는 춤의 순수함을 본다.
박은성은 광주에서 나서 성장기를 보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춤을 처음 접한 이후 한양대에서 현대춤을 전공하였다. 연습을 많이 하는 춤꾼으로 “오늘 하루 쉬면 내일 다시 그 전의 느낌으로 끌어올리는 건 너무나 고통스런 일”이기에 끝없는 반복으로 자신의 몸을 단련한다고 한다.
여타의 작품에 출연활동을 많이 해왔지만 안무가로서 박은성 또한 관심의 대상이다. 몇 개의 안무작중 4작품을 구성적인 면에서 조명해 본다.
작품 『Kiss』(1997년 4월 25일, 문예회관 소극장)는 클림트의 그림 「Kiss」에서 받은 강한 인상을 ‘사랑’이란 달콤함 속에 숨은 ‘질타와 시기’의 모습으로 풀어놓았다. 한 쌍의 남녀(김성용, 이지아)와 한 여자(박은성)가 주고받는 에너지의 긴장도를 작품의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인상적이고, 수평하게 또는 직각으로 가르는 평이한 구성 위에 긴장된 메시지의 반복이 효과적으로 전개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음해에 안무한 『握手(악수)』는 박은성의 춤 스타일을 6명의 무용수가 생동감 있게 무대에 펼쳐놓은 작품이다. 사회적 행위인 ‘악수’의 이면에는 겉과 속이 다른 복잡 다단한 인간의 감정이 담겨있음을 이야기하고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무대구성으로 감정의 변화를 유쾌하게 담아냈다.
1999년 홍대 앞 씨어터제로에서 솔로로 추었던 『새, 마지막 출구』(3월 10일)는 박은성의 작품 중에서 주목할 작품이다. “인간의 삶이란 새장 속의 새와 같이 규정된 틀 속에서 맴돌고 있지 않은가?”하는 물음으로 시작된 작품은 협소한 소극장에 작은 오브제 하나를 놓았다. 오브제 속에서 만드는 춤의 이미지는 작은 극장을 상대적으로 크게 느끼는 연출효과를 이뤘다. 구속의 공간을 통해 자유로운 공간의 상상력을 발생시킨 것이다. 절제된 조명으로 시선을 제한하고 지향점만을 열어둔 구성은 작은 틀 속에서 넓은 춤을 보여준 수작이었다.
같은 해 12월 『얇은 달』(12일, 문예회관 소극장)에서는 여성 속에 내재된 ‘신경질적인 날카로움’과 ‘넉넉한 부드러움’이 상반되는 심리를 ‘도발하는 몸짓’과 무대 위에 드리운 ‘커다란 비닐막’을 대비시켜 풀었다.
박은성의 작품은 자신의 내면에서 돌출 하는 이미지를 ‘현상’으로 정리하고 이를 무대로 옮겨 강한 선을 만들고 순수한 춤언어로 이미지를 중첩해간다. 직관적인 몸짓으로 현상의 이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는 “몸짓 하나 하나에 사고와 무게가 배는 춤을 추고 싶다”고 한다.
아직은 안무가로서 자신의 춤을 무대 위에 유용하게 구성하는 점에 부자연스런 면이 있어 아쉽고, ‘현상’을 넘어 ‘은유의 깊이’를 담아내는 형안이 길러지길 바라며 그가 희망하는 자유롭고 순수한 춤이 더욱 훌륭한 춤판을 빚어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