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演評

박명숙 안무 『유랑』

□ 서울현대무용단
춤같은 공연예술은 미학적으로 볼 때, 그림이나 조각같은 시각예술과는 달리, 진품(Original Work)의 개념이 없다. 즉 그림의 경우 20세기 초반 세계 예술사조의 흐름을 바꾼 입체파 화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란 작품과 아무리 똑같은 그림을 그린다 하더라도 이는 결코 진품이 될 수 없는 모방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연예술은 끊임없이 조금씩 변하면서(안무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새로운 원본을 만들어 나간다. 즉 19세기말 러시아의 위대한 안무가 쁘띠빠의 작품 『백조의 호수』같은 경우도 지난 1백여 년간 수많은 안무가들에 의해 시대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며 공연되어 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 이 재공연된 작품을 원본을 모방했다고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면에서 본다면 21세기의 대표적인 공연예술인 춤은 대단히 소실성이 강한 순간적인 예술로 보이지만, 사실은 영원한 예술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춤의 재공연은 끊임없이 작품의 완성을 향해 정진해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서울현대무용단(예술총감독 : 박명숙)의 『유랑』 재공연이 지난 3월 4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있었다. 우리 주위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너머로 섬세한 움직임을 펼쳐두어 화해와 포용의 공간을 만들어 나갔던 이번 작품은 지금부터 약 1년전인 1999년 12월 8일 초연된 작품을 새롭게 안무하고 구성했다.
사실 작품을 다시 손질하여 재공연한다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조금만 잘못되면 원작의 디테일한 의미가 변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작품 전체적으로 볼 때 원작 재구성의 이런 어려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해내고 있었다. 우선 안무 구조가 훨씬 정교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부드럽고 우아한 분위기가 무대 전체에 넘쳤다. 특히 작품 중반부에 흰 의상의 여인들이 흰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느린 타악기 음에 맞추어 선명한 라인을 이어나갈 때는 푸르고 엷은 선의 막이 무대전체에 신비롭게 퍼져나가는 듯 했다.
또한 일부 완전히 새롭게 작곡된 음악을 통한 섬세한 움직임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성을 더욱 깊게 파고들어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한 작품의 캐릭터가 더욱 성공적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인물들의 등·퇴장의 모습을 빨아들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었던 조명도 절묘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방식의 조명은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우리나라 춤 무대에서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마무리 부분의 재구성은 압권이었다. 서울현대무용단의 중견 무용수들이 오브제처럼 무대 후방에 모여있을 때, 젊은 무용수들이 한국적 현대춤을 이룰 때 객석에는 감동의 전율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로 이 장면은 누가 하더라도 꼭 이렇게 해야될 것 같은 완벽한 공감이 가는 이미지를 정확하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 가장 결정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작품의 일부에서 초기 작품의 거칠은 듯 하면서도 순수한 모습, 혹은 투박함 속에서의 열정같은 것이 사라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아무래도 작품전개에서 연극적인 요소가 너무 과다하게 가미된 결과가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작품 도중에 ‘여기 어디야’하는 너무 내러티브(Narrative)한 대사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움직임보다는 연기로 처리되는 장면이 많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한 작품 후반부에 시신을 앞에다 두고 실제로 소리내어 울어버리는 것도 춤 무대에서는 너무 직접적인 모습이었다. 사실 이 장면에서는 울지 않았어도 그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고 있었다.
앞에서 이미 보았지만 춤 같은 공연예술은 고정불변의 예술이 아니다. 작품의 재공연 등을 통해 끊임없이 창조적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예술이다. 이는 마치 노자와 장자의 사상 같은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고전텍스트들까지 사실은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장구한 세월 속에서 끊임없이 변모와 생성의 과정의 거친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바로 이런 면에서 볼 때 이번 서울현대무용단의 작품 재공연 시도의 의미는 컸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작품 일부에서 원작의 거친 듯이 장쾌하고 시원스러운 톤이 사라진 것 같은 아쉬움은 있었지만 자신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 모습에서 예술가들의 깊은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 2001 「춤작가 12인전」
요즈음 우리나라 문학계에서는 문단이 점점 늙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컴퓨터시대의 젊은이들이 고통스러운 창작의 작업에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본다면 우리 춤계는 적어도 그 작품의 양의 면에서 본다면, 신구의 조화가 그런 대로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예술 창조작업에서는 아무래도 나이보다는 그 예술가가 얼마나 자신의 예술의 길에 매진해왔는지, 혹은 얼마나 자신의 예술작품에 열성을 쏟았는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일부 중견작가들이 평소 때는 아무런 준비를 해오지 않다가, 갑자기 자신의 이름 석자를 걸고 무대에 나설때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 이들의 작품은 예술 그 자체로 승부를 걸지 못하고, 나이 답지 않게 교묘하게 둘러대는 재주부리기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의 작품은 마치 뭔가 파격적인 동작이나 안무 구조처럼 해두었지만, 실제로는 내용없는 허망한 공연이 되기 일쑤이다. 심지어는 이들은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는 것이 의도적인 것이라고 우기는 억지부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지난 3월 6일부터 8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한국현대춤협회(회장: 정의숙) 주최로 열린 〈2001 춤작가 12인전〉은 이런 모습을 탈피한 의미있는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아직도 일부 작품에서는 단순히 음악에 맞춘 움직임을 마임식으로 전개하기도 했으나, 몇몇 작품은 따로 모아서 흥행에 나서도 될 것 같은 높은 수준을 보였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은 움직임 전체에 상상력의 생동감이 듬뿍 묻어 있던 문영철의 『마흔의 일기』였다. 무대 뒤의 붉은 원 속에 창살문이 생기고 중절모를 쓴 남자가 담배를 피워 물고 신문을 보고있다. 천천히 상의를 벗고 어둠의 뒷면에서 앞으로 걸어나온다. 무대 위에는 커다란 마름모꼴 조명이 깔리고 검정 의상의 문영철이 애상 어린 움직임을 만든다. 결코 강하거나 큰 움직임은 아닌데 깊은 감성이 담겨있다. 클래식 발레의 테크닉이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아 섬세한 움직임을 이룬다. 그냥 걷는 모습도 완벽한 예술이 된다. 독무지만 3차원적인 동작에 리듬감을 살려가면서 한편의 추상화를 그려나가고 있다. 이 작품은 작품의 앞뒤 부분에서 미닫이문을 열고 드나들던 모습이 덜 세련된 모습을 보였으나, 클래식의 어휘를 완벽히 해체시킨 다음 의미있게 새롭게 구축해나가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평자가 본 독무 중에서 가장 뛰어난 독무를 이루어 냈다.

문영철 안무 『마흔의 일기』

또 하나 눈여겨볼 수 있었던 작품은 이정희의 『하얀 영혼의 노래』였다. 어두움 속에서 마찰음 들리고 무대 뒤에 3개의 비디오 화면이 떠오른다. 곧 바로 그 밑에서 흰옷을 입은 여인이 가로로 허공에 떠서 누워있다. 누운 상태의 여인이 가만히 몸을 좌측으로 돌린다. 팔을 직각으로 하며 팔베게를 만들며 몸을 우측으로 튼다(이러면 몸이 객석 정면으로 위치하게 된다). 무대 전체에는 특이한 분위기가 살아난다. 두 다리와 온 몸을 든다. 몸을 뒤틀어서 후방으로 돌린다. 조그만 움직임이 작품 전체에 큰 변형을 준다. 객석은 여인의 조그만 움직임에 선명히 빨려 들어간다. 이때 무대 좌측의 사각형 조명 위에 검은 정장의 남녀 두 명이 한폭의 깨끗한 정물을 이룬다. 흡인력있는 안무전개로 작품의 내면을 깊숙히 파고 들어가고 있던 이 작품은 움직임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움직임을 아끼고 있었다.
타이핑 소리가 들리면서 막이 오른 오문자의 『풍경화』는 붉은 모자를 쓴 여인이 가방을 들고 서있다. 부드러운 음향 속에 순수한 움직임을 이룬다. 무대 좌측 전방의 철구조물 위에 붉은 장갑을 낀 남자가 선명히 나타난다. 이때 철제 사각망을 이루는 조명이 깨끗한 느낌을 준다. 좁은 공간에서 두 명이 정밀한 움직임을 만든다. 두 명 모두 무대 아래로 내려와서 김남식이 묵직한 톤의 라인을 그리는 공중회전을 이룬다. 두 사람이 밧줄을 잡고 함께 회전한다(이때 밧줄 작업은 하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 다시 이들 함께 무대공간을 무게있으면서도 신중하게 점령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치 어린이들처럼 즐겁게 움직이기도 한다. 물 흐르는 소리 들리면서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끝없는 여행을 떠난다. 이 작품은 중반에서 일부 매끄럽지 못한 부분 보였지만, 검고 선명한 매혹적인 섬세함이 작품전체에 알알이 담겨져 흐르고 있었다.
연푸른 유니타이츠가 빛나기만 했던 이원국의 『Mon Amour』는 이원국의 크고 빠른 회전 움직임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몸을 누워서 무대 좌측에서 우측으로 굴린다. 허공을 깊숙히 파고 오르는 뚜랑네 다음 무대 전방에 조용히 쓰러진다. 이때 무대 우측에서 분홍빛 유니타이츠의 김세연이 나타난다. 분위기가 화사하게 피어오른다. 높은 톤의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 상큼하고 우아한 동작을 이룬다. 이원국이 천천히 여인을 들어 가볍게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