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演評

□ 예전무용단 정기공연
예전무용단은 민속춤 계열의 새로운 창작 레퍼토리를 확보해 가고 있고 정기적인 연습을 통해 궁중춤에서부터 민속춤 계열의 춤들을 꾸준히 수련하는, 전통춤 전문 무용단이란 점에서 여타 춤 단체와 차별성을 갖는다.
3월 8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있었던 예전무용단 정기공연에 대한 평자의 관심은 한국의 민속춤에 근접한 창작 작업과 한국의 전통춤을 토대로 보다 현대화시킨 창작 작업 쪽에 모아졌다.
이명진이 안무한 『不二門(불이문)』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不二(불이)는 `진리는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서로 다르지 않고, 생과 사, 만남과 이별 역시 그 근원은 모두 ‘하나’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다분히 불교적이고 또 철학적이다.
안무자는 이 불교적인 색채를 풀어 가는 매개체로 『바라춤』을 택했다. 바라를 든 무용수들의 군무를 시작으로 목탁 소리, 큰북의 울림 등으로 짜여진 음악 구성은 중반쯤 전자음악이 가세하면서 보다 다양한 이미지로 증폭된다.
무용수들의 머리에 쓴 고깔의 크기를 작게 하고, 색깔을 검정으로 처리한 것은 『승무』나 『나비춤』 등에서 흔히 보는 전통춤의 정형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여진다. 소고놀이에서처럼 바라를 바닥에 두들기는 시도 역시 서서 두 개의 바라를 서로 부딪치며 추는 『바라춤』의 일반적인 연희 형식에 어떤 변화를 주고자 하는 의도로 보였다.
전체적인 춤 구성은 무척 자유로워 보였다. 시종 10명이 넘는 출연자들은 무대 공간을 점유하는데 있어 별 다른 약속 없이 무리 지어 움직였다. 그러나 원형의 대형이 너무 많았고, 이는 결국 전체적인 작품의 짜임새를 지나치게 단조롭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다.
3~4인무, 7~8인무 등으로 춤 구성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바라 등 악기를 사용할 때의 공간 분할이나 움직임 구성에서 속도감과 춤사위의 강약을 적절히 조절하는 안무 감각이 아쉬웠다.
인간의 삶과 생명사상은 몇 년 전부터 시도하고 있는 강미리의 창작춤 작업 화두이다. 이명진, 손선숙과 함께 예전무용단의 지도위원 자격으로 신작 안무에 참여한 강미리의 『開(개)』 역시 생명사상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안무자는 공연 프로그램에서 ‘우리의 창세 신화를 바탕으로 생명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해 세상을 밝게 가꾸어 가는 모습을 춤으로 형상화했다’고 밝히고 있다. 안무자의 말 대로라면 작품의 분위기는 회화적이고, 추상적일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막이 오르고 나타난 첫 장면은 무대 좌,우 뿐 아니라 정면의 막까지도 없앤, 최근 안무자가 즐겨 사용하는 무대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넓은 무대 전체에 흩어진 8명의 무용수들의 좌선 대형과 그 무용수들의 머리에 쓴 관은 다분히 신화적이고 제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첫 장면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여기에 무용수들의 머리 위로 뭔가 계속 떨어지는 이물질과 그것들이 내는 소리까지 가세하자 무대 분위기는 순식간에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여러 명의 무리 중 한 명의 무용수가 천천히 일어나면서 만들어내는 움직임, 여기에 여러 명의 무용수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다시 고개를 숙여 아래를 향하는 동작의 반복은 이들이 어떤 수행의 과정에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강미리의 최근 창작 작업에서 보여지는 궁중춤 등에서 차용된 움직임 구성이나 대각선과 일직선, 나선형 등 무용수들의 동선을 시각적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시도는 철학적인 소재에서 오는 난해함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한 시도는 전작에 비해 크게 확장된 무대 공간을 별 무리 없이 커버해 가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작품 내내 동양적, 관조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긴 하지만 무용수들의 몸을 통해 전해지는 움직임의 질, 그리고 생명사상을 표출하는 매개 기능의 다양성 구사 면에서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무용수들이 안무자가 요구하는 현대적인 이미지를 내면적인 연기로 표출하고 그것을 외부로 드러내는 순발력 역시 다소 힘에 부쳐 보였다. 그러다 보니 무용수들의 움직임에서는 한국 전통춤의 품격이 읽혀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대적인 파격미, 자유로움 같은 것을 즐기기도 쉽지 않았다.
강미리의 생명사상과 연계된 한국적, 철학적인 소재의 작업은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론 면에서 보다 다양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몇몇 아주 강렬한, 오감을 전율시키는 아주 인상적인 장면 구성이 작품마다 거의 예외 없이 보여지긴 하지만 그런 긴장과 집중감이 공연 내내 이어지지 못하고 자주 끊어져 버린다. 무용수들의 문제도 있겠지만 안무가의 정확한 컨셉에 의한 치밀한 구성력의 부재에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약간의 드라마적인 요소를 살려 보다 분명한 캐릭터를 설정해 본다든지, 다른 장르와의 접목 작업을 어느 부분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시도해 보는 것도 하나의 보완책이 될 것이다.
손선숙이 안무한 `『풍요의 띠』는 앞의 두 작품과는 다르게 민속춤 계열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난 작품이다. 농경사회, 생활 문화 속에서의 일과 유희의 어울림을 춤으로 보여 주려한 시도가 쉽게 읽혀졌다. 『장구춤』, 『북춤』 에 타악기를 내세운 춤 구성은 그러나 춤의 내용 면에서나 흥과 신명의 분위기를 살려내는데 있어 어떤 새로운 틀의 시도가 엿 보이지 않았다.

사물놀이 연주자를 무대 정면에 배치해 분위기 전환을 노렸으나 사물놀이 연주와 춤 구성과의 조화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예전무용단의 작업은 한국의 전통춤이 컨템포러리댄스로의 확장과 관련, 지나치게 현대적인 요소에 치우친 작품 제작의 한 측면을 보완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 손경순 예술감독에 위해 시도된 『태평무』를 5인무로 변주시킨 작품에서 보여지듯 어느 일면 성공적인 작업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바로 이것이 평자가 이 무용단의 활동을 주목하는 이유이다.
예전무용단 소속의 지도위원 세 명의 안무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는 것 외에도 외부의 객원 안무자 초청 등을 통한 교류 시스템을 만들어 간다면 예전무용단의 작업이 한국 춤계에 미치는 파장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