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몽골휴양지 테렐지에서 낙타를 타고 있는 필자

‘티임무루툴러(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단어를 자주 쓰는 일이 많아 졌다. 왜 하필 몽골인가? 많은 사람들이 물어 오기도 하지만 종종 나 자신에게 되레 묻기도 한다. 왜 나는 몽골을 사랑하는 것일까?
2000년 여름, 본인이 활동하고 있는 트러스트현대무용단 단원 2명과 함께 문화탐방 프로그램차 몽골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몽골의 현대무용가인 토야체첵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계속적인 몽골과의 개인적인 교류가 시작되었다. 남편이 관여하고 있는 국제 활동기구를 통해 벌써부터 몽골에 대하여 주위에서 들어오긴 했었지만 그다지 애써 듣고 싶지도 않았고 가고 싶은 마음은 더구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과연 그곳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하며 가 보기도 전에 늘 먼저 나의 마음에서부터 문을 닫아버리곤 했다. 그렇게 해서 거의 10년 가량 흘러보낸 후에야 몽골이란 땅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한국문예진흥원의 지원으로 국제교류 공연과 몽골에서의 초청 워크숍, 현대춤 축제 등 여러 계기로 수 차례 방문하게 되었는데 마침 남편이 의료봉사차 몽골로 오게되면서 지금은 아예 가족이 이곳으로 옮겨와 2001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다.
몽골 민족은 매우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다. 특히 시골로 갈수록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대화 나누는 일을 좋아한다. 더구나 한국에 대한 감정은 각별하다. 한국을 ‘코리아’라고 부르지 않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가 바로 몽골이다. ‘솔롱고스’라고 부르는데 이는 ‘무지개’라는 뜻이며 한국을 아름다운 나라, 희망의 국가로 생각한다. 더군다나 최근 한국에 가서 일하는 것을 생의 목표로 삼을 정도로 ‘코리안 드림’이 편만해져 있어서 한국을 동경하고 또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을 본다. 광대한 초원에서 수세기 동안 유목 생활을 해온 민족이기에 손님 맞는 예의가 각별한데, 이것은 인적이 드문 외로운 초원 생활 속에서 인간을 향한 그리움이 짙어진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이동 생활을 하면서 여행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잘 이해하는 데서 오는 미풍양속인 것이다. 그래서 손님이 오는 대로 잠자리를 제공하고 가장 좋은 음식으로 정성껏 대접하는 아름다운 풍속은 우리나라의 옛 시골 풍경과도 같다.
몽골인들은 특히 모자와 허리띠를 매우 소중히 하며 보통 생명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모자를 서로 바꾸어 쓰거나, 길에 떨어진 남의 모자를 줍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여름 쓰고 있던 모자를 공원 벤치에 두고 온 적이 있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 중이라 어쩔 수 없이 포기하기로 했었지만 혹시나 싶어 가보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주운 모자는 횡재가 아니라 오히려 손해의 길이 된다고 이 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에 모자를 다시 찾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십여 년 전 몽골은 사회주의 붕괴와 자본주의 전환의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었는데, 정치적 혼란, 가난, 실업, 가정파괴가 큰 사회 문제로 잇따르면서 아이들이 길거리로 내몰려지고 거리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며, 백화점이나 시장, 공연장 등 사람이 모여있는 곳마다 소매치기가 득실거린다.
지금 몽골에는 8백 명 넘는 한국교민들이 살고 있다. IMF 이후 한국에서 사업가들이 살길을 찾아 이곳에 들어오기도 했다. 몽골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을 좋아하고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반면, 우리가 일본인들을 싫어했던 것처럼 중국사람에 대해서는 아직 반감이 심하다. 지난 16~19세기의 약 3백 년 간 만주족인 청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너무도 심한 차별과 무자비한 고문을 치렀던 터에 이미 멸종된 상태나 다름없는 만주족을 지금의 중국과 동일시하며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여름이 되면 한국에서 오는 사회봉사팀, 여행자 등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을 하는데 이 모든 사람들은 이곳 소매치기들의 밥이 되는 것이다. ‘톰자흐’라는 큰 재래시장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물건을 아주 값싸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다. 하지만 늘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인인줄 어떻게 알고 소매치기 일당들이 주위를 맴돌며 정말 귀신처럼 돈이 없어지는데 지금은 누가 소매치기인줄 알아 볼 수 있고 호주머니에 손이 들어오는 것을 알고 뿌리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를 가지게 되어 불편함이 불편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일상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우리도 이러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60년대엔….
몽골에 살기 전에 몇 번 여행으로 왔을 땐 그냥 여행자의 기분이었다. 그러나 막상 살기 위해 가족이 들어왔을 땐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내가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일주일간 아무 생각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고 처음 오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지만 한국과 기압차이로 계속 잠만 자게되고 무기력의 연속이었다. 척박한 몽골 땅을 바라보며 걱정과 불안에 눌려 잠을 설칠 때도 자주 있었다.
도착한 며칠 후 토야체첵 선생에게서 전화가 와 「현대춤워크숍」을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한 해 동안 몽골에서 현대춤 전공자들과 몇 차례 오가며 함께 공연도 하고 가르친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늘 걱정스러웠던 것은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에 대해 고민되었고 무조건 테크닉만을 가르친다는 것은 이들에게 아무 도움이 안될 것 같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비록 부족하지만 제대로 돕고싶었던 때문이었다. 몽골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세계를 지배했던 징기스칸의 후예라는 자존심을 춤으로 이어주고 싶었다. 몽골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18살이 된다. 이후에 몽골국립발레단 전통무용단 등 여러 곳에 프로무용수로 활약하게 되는데 한 달 월급이 5만 원 수준이다. 하지만 구두 한 켤레에 6만 원을 하니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직도 그것은 의문점이다.
고대부터 중앙아시아의 넓은 목초지를 이동하며 유목생활을 하는 것이 몽골인들의 삶의 보편적인 형태인데 정치, 경제, 풍습, 문화의 전반에 깊이 영향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민족성 자체도 대체로 성격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어 춤을 추는데 있어서도 인내심이 부족한 모습들이 종종 보이기도 하지만 지속적으로 계속 열심히 하는 몇몇의 무용수들이 있기에 발전 가능성이 있으리라 본다. 우선 어린 무용수들보다도 당장 몽골 춤계를 책임질 리더들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지금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 와서 내가 그동안 배우고 가르치고 했던 것을 나누어 줄 때가 가장 행복하고 보람있는 시간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사가 때가 있는 것을 느낀다. 지난 몇 년 동안 무용단을 이끌면서 분주한 일정 속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하긴 하는 것 같았는데 분명한 목적 없이 반복적인 삶의 연속이었지 않나 싶다. 정리가 필요했다. 생활 속에서 마냥 안락함을 추구하게되고 더 편리하고 더 새로운 것을 찾는 등 점점 내 속에 있는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을 보았다.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한국생활을 정리할 수 없었지만 우리 앞에 펼쳐진 저 넓은 초원과 자연이 짧은 기간이나마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단호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실상은 무엇보다 나 자신의 결정이 힘들었다. 하지만 몇 차례 몽골을 오가며 내가 여기 와서 해야할 일들과 왜 와야하는가에 대해 분명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다. 눈앞의 현실 속에서만 갇혀있던 내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삶을 경험하게 되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몽골에서는 「몽골국제현대무용제」와 「연극제」가 격년마다 한번씩 개최되고 있다. 국제적인 행사인 만큼 여러 주변국가와 동구권에서 참여하는데 10일간의 행사기간동안 전야제, 개막공연, 메인공연, 콩쿨, 워크숍, 문화체험, 폐막제 등 다채로운 행사로 진행이 이루어진다. 제1회 때 참가한 나라로는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유고슬로비아, 프랑스, 크로아티아, 한국 등이 있다. 몽골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현대춤이 소개되었지만 다양한 작품을 그들이 보면서 이해하고, 수준 있는 관객들의 반응에 관계자들과 우리들도 놀라워 했었다. 몽골에는 이런 문화 행사말고도 매년 여름에 국가적 축제인 「나담」이라는 큰 행사가 있다. 고대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온 민족 축제의 하나로 이때는 민속 경기인 말달리기, 씨름, 활쏘기 경기가 열리게 된다. 말 경주는 「나담」의 가장 핵심적인 종목을 이루고 이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대개 6세에서 13세의 어린아이들인데 이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최소 한 달간 훈련을 하게되고 몽골사람들은 이 경기에서 일등으로 들어온 말의 땀을 몸에 바르면 일년이 운수대통이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다.
몇 일전에는 가깝게 지내는 어느 선생님이 사고가 났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운전수가 돌변하면서 파이프를 내리쳐 머리에 피가 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머리에 이상은 없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정신적인 충격이 커 여기에 사는 모든 한국사람들이 긴장을 하고 있다. 점점 살기가 힘들어지고 물가는 오르고 보기에 한국사람들은 돈이 많은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하고 다니던 파이프로 때렸던 것이다. 그 분은 달리고 있던 차량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울란바타르 시내에 살고있는 사람들 거의 몇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