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頭詩

해돋이 기차를 타고 가다

최금진

기차는 서울을 빠져나가고 잠을 자기 위해 아이들은 울거나 숫자를 센다. 초겨울의 기약 없는 태양과 마주서려면 일찌감치 술에 취해야 한다.
사내들은 출입구에서 웃통을 벗어 뇌까지 어둠을 들이마신다. 십자가 불빛들이 무덤처럼 흘러가는 도시를 끌고 막 이륙할 때, 엄마 여기 달은 꼭 누군가 놓쳐버린 수소풍선 같아! 반쯤 졸면서, 선반의 가방들은 여행의 시작보다는 끝에 대하여 지퍼를 꽉 다물고 있다.

연인들의 포옹 속으로 편두통의 터널이 지나가는 새벽 무렵, 거대한 탄더미 같은 산맥은 하늘 꼭대기까지 기차를 올려놓는다. 불켜진 칸칸의 꽃잎 같은 유리창을 매단 기차, 쓸쓸한 밤의 절지동물이 산을 넘어간다.
담배연기 몽롱한 객실을 제 몸 깊이 안고 조는 사람들 속에 덜컹거리는 11월의 바다, 허기진 손으로 애써 천천히 까는 미끄러운 계란, 군대갔다 왔더니 머리가 완전 곯았더군,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 앉아 반쯤 기우는 늙은 청년 곁에서 소주병이 구른다, 많은 물소리를 내면서 취기 속을 휘몰아치는 불안은 기차보다 앞서 달린다, 종착역보다 앞서 달린다.

꿈인 듯 누군가 바다가 보인다, 라고 외쳐도 눈을 뜨지 않는 여행에서 완벽하게 서울을 잊은 사람은 없다. 입석표를 끊고도 설 자리가 없는 막막한 바다를 향해 달리는 기차, 하이에나처럼 침엽수들이 기차를 포위하는 초겨울 밤, 차창에서 문득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검은 탈바가지와 눈이 마주쳐 흠칫 놀랄 때 바다는 다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 같은 해를 수평선 위에 건져 올려놓는다. 사람들은 서둘러 싸들고온 희망을 꺼내어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허겁지겁 노란 달걀 같은 허기를 서둘러 채운다. 그렇게 안구건조증의 아침이 벌겋게 밝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