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매년 연말이 되면 필자는 8년째 사용해온 프랭클린 플래너 다이어리의 리필을 구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해와 그 한 해를 구성하는 매달의 삶의 방향과 내용을 설정한다. 필자가 프랭클린 플래너와 스티븐 코비식의 접근방법을 선호하는 이유는 삶에 대한 미션(프랭클린 플래너에서는 ‘사명’이라고 표현), 즉 사는 목적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에 따라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식의 금언 아래 갖고 있는 한정된 시간과 돈과 정력을 배분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명확한 미션을 바탕으로 한 해를 설계해나가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단체의 영역으로 갈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단체의 구성원이 늘어나고, 조직과 예산 규모가 커지고, 사업내용이 다양해질수록 의사결정에서 구체적인 활동으로 이어지는 단계가 더욱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어떤 단체든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에 관하여 설계를 하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개인에게든 단체에게든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이러한 일들이 우리 공연단체들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보편적인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근저의 이유를 보면 대개는 돈이다. 예술활동을 해나가는데 필요한 적절한 금전적 뒷받침이 이루어지지 못하니 당연히 한 해의 공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예술단체들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의 예산이나 기금 지원 혹은 민간 기업의 협찬만을 기대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다음 공연 여부를 결정 짓는 일을 반복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견 불가피한 현실로 보이지만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 보면 전후관계가 뒤바뀐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프랭클린 플래너에서 강조하는 이른바 사명, 예술경영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어떤 단체의 설립취지 혹은 목적에 해당하는 미션이라는 부분이 어느새인가 뒷전으로 밀려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션에 대해 확인하고 이에 따른 활동방향을 설정하는 식이 아니라 단지 매년 반복적으로 기금 지원 신청을 하고 그 결과 지원 결정이 이루어지면 공연을 하고 이루어지지 못하면 공연을 하지 않는다는 식의 유아기적 상태를 많은 공연단체들은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언가 사고 싶은 어린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조르게 마련이다. 다행히 용돈을 얻어낸 아이는 그것을 사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그냥 포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머리가 좀 큰 아이는 다르다. 단지 엄마와 아빠에게 손을 벌리기에 앞서 자신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한다. 용돈을 조금씩 아껴 저축을 하거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통해 한푼 두푼을 모아 배낭여행을 간다든가 좋아하는 음향기기를 산다든가 하는 식의 명확한 목표 달성을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노력을 해나가는 것이다.
예술활동에 대한 것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최소한 배낭 여행을 가려는 혹은 새로 나온 음향기기를 사려는 아이가 자신의 목적을 명확히 설정하고 그에 필요한 경비를 계산해본 뒤 그것을 벌기 위해 부모님을 설득하든, 저축을 하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일을 하든 다각적인 경비 마련 전략을 세우는 것 만큼의 노력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천수답을 경작하는 농민과 같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예술단체들이 많다는데 있다.
이는 공공 부분이라고 해서 더 나을 것이 없다. 다행히 최근에는 책임운영기관화나 재단법인화 등을 통해 예술경영 전문인력들이 많이 유입되어 공공예술단체의 활동이 활성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매년 주어지는 예산에만 안주하여 반복적인 예술활동만을 해나가는 단체들이 훨씬 많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역시 그 단체를 이끌고 있는 혹은 그에 관한 정책결정을 하는 지도자의, 미션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그 단체가 왜 그 지역에 존재하는 것이고 지역민들이 땀흘려 일한 결과 납부한 귀중한 세금이 그들을 위해 쓰여져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자리잡고 나면 그 다음에 부딪히는 문제들은 단지 해결해나가야할 과정에 지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돈이 없으니까 공연을 못한다는 소극적인 소리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돈은 단순하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 그것이 펀드레이징이고 재원조성이다. 돈을 만드는 것이 어디 쉬운일이냐는 답변은 늘 제기된다. 하지만 예술단체가 받는 돈을 실제로 벌어들이는 개인들이, 혹은 기업들이 그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리고, 어려움을 당하고, 머리를 짜내고,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왔는가를 알고 있다면 이러한 재원조성 활동이 어렵다는 식의 불평은 할 것이 못된다. 어린아이와 같은 투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힘들여 번 돈을, 내 기업이 어렵게 경쟁하여 벌어들인 수입을 다른 곳이 아닌 어떤 예술단체의 활동을 위해 쓰겠다는 결정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그러한 결정의 타당한 근거를 나와 내 예술단체가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즉 먼저 명확한 미션을 설정하고, 그 미션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업들을 개발하고, 그 사업에 필요한 상세한 예산계획을 수립하여 요청하는 것이 바로 정상적인 절차인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혹은 자신이 이끌고 있는 예술단체의 미션의 명확한 설정이다. 내가 혹은 내가 이끌고 있는 이 예술단체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또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점검과 확인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한 해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보기에 아주 적절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미션이라는 것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의 간결하고 축약적으로 표현된 미션은 전체 조직을 하나로 결속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다는 식의 혹은 막연하게 뭐든 하겠다는 식의 미션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든 조직은 그 주요 구성원들이 처음 그 조직을 만들면서 가슴에 품었던 중심이 되는 믿음을 하나의 미션으로 구체화하여 갖고 있어야 한다.
특히나 자신의 능력이나 그에 따른 활동만으로는 정상적인 재정 운영이 어려워 공공부문 혹은 민간부문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하는 대부분의 예술단체들의 경우 이러한 미션의 설정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잘 정의된 미션은 재원조성에 나섬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출발점을 형성하게 된다.
다음은 명확한 미션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주요한 구성요소가 되는 것들이다.
먼저 어떠한 것을 이루고자 하는가가 중요하다. 어떤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어떠한 성과를 얻고자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활동의 결과 나, 나의 단체, 그리고 그 단체가 활동의 지반으로 삼고 있는 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가? 구체적으로 내 단체가 해온 다양한 노력들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기를 원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보는 것이 미션을 설정하는 출발점이 된다. 예를 들어 “예술 활동을 통해 국민들의 정서를 함양하고 삶의 질을 높여나간다” 라는 식의 지향점을 설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떠한 활동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장래 어떤 시점의 목표 달성을 위하여 어떤 활동, 프로그램, 서비스를 해나가는가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야 하는 것이다. 즉 이는 앞서의 성과를 얻어나가기 위한 수단이 되는 영역이다. 예를 들어 앞서의 “예술 활동을 통해 국민들의 정서를 함양하고 삶의 질을 높여나간다” 라는 지향점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국공립예술단체를 설립하여 운영할 수도 있고, 민간 예술단체에 대한 지원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외국의 우수한 예술단체 초청을 지원할 수도 있다. 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도 예술단체에 대한 지원을 통해 할 수도 있고, 공연장에 대한 지원을 통해서도 할 수있다. 사랑티켓처럼 관객에 대한 지원을 통해서도 할 수 있다. 즉 여기서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과 방법의 선택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나의 혹은 내 단체의 존립과 활동으로 인해 누구에게 이익을 주고자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점에서 많은 예술단체 종사자들이 막연한 착각에 빠져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어떤 단체가 그 자체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국가나 자치단체가 혹은 기업이 그 단체를 도울 이유가 없다. 그 단체의 존립으로 인하여 국민들이, 자치단체 지역주민들이, 기업의 구성원이나 고객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에 그들은 공공의 자금을 혹은 사적인 재산을 내놓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단체의 활동의 성과를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돌리고자 하는가에 대한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담은 미션의 초안을 만들고 나면 이것이 바람직하게 설정되었는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져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 구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얼마나 현실적인가?
○ 표현된 문장이 명확하고 간결하여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는가?
○ 단체의 존립이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것인가가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가?
○ 단체의 노력을 지속시켜나가기 위한 가치와 믿음이 정확하게 반영되어 있는가?
○ 공공의 이익에 대한 기여를 보여주고 있는가?
○ 단체의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을 동기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