演劇살롱

지난 해 연극계는 뮤지컬과 함께 셰익스피어 연극이 호황을 누렸다. 일반 극단은 물론이고 이른바 국공립 단체에서도 셰익스피어를 경쟁적으로 공연했다. 국립극단의 「줄리어스 시저」, 서울시립극단의 「헨리 4세」, 서울예술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태풍」 공연이 바로 그것이다.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국·시립 단체가 한국적 창작극의 제작에 몰두하지 않고 연례적으로 셰익스피어 공연에 집착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서울시립극단의 경우에는 셰익스피어 전공의 예술감독이 새로 취임하고 나서 매년 셰익스피어를 공연하는 까닭에 혹시 셰익스피어 전문극단으로 변신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거기다 지난 해에는 연극연구단체가 주축이 되어 두 개의 셰익스피어 축제를 벌이는 바람에 셰익스피어 열풍이 더욱 거세게 불었다. 「더 클래식 2002 셰익스피어 러브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축제가 5편의 셰익스피어 연극을 정통적 방식으로 공연한 것에 비해 「셰익스피어 벗기기 페스티벌」 이라는 이름의 축제는 공간, 상황, 인물, 몸짓을 한국화하여 새롭게 셰익스피어 만들기를 시도한 것이다. 이 두 개의 셰익스피어 축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기존의 공연성과를 크게 개선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다만 한 가지 셰익스피어에 불균형하게 기울어 있는 한국연극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렇게 한국에 셰익스피어 열풍이 불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일제의 식민지 상황에서 서양의 근대극을 수용하면서 입센, 버나드 쇼오, 체홉을 번역, 공연하기는 했어도 셰익스피어는 거의 외면했다. 셰익스피어와 근대적 개혁사상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이 1928년에 셰익스피어를 완역한 것에 비해 한국은 1964년에 가서야 이것이 가능했다. 그것도 일본 셰익스피어 완역의 은혜를 입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본격적으로 셰익스피어 열풍이 불게 된 것은 해방 후 미국의 영향 아래 영미문화를 중점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특히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백 주년을 맞이하여 국립극단을 비롯한 5개 극단이 시리즈 공연을 가진 것이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 이후 한국의 극단과 연출가는 예술적, 경제적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셰익스피어를 공연했다. 예술적인 도약이 필요할 때는 안민수의 「하멸태자」, 김정옥의 「햄릿」, 기국서의 「햄릿」 시리즈처럼 부담 없이 셰익스피어를 활용했다. 극단이 공연적자에 허덕일 때는 하나의 회생책으로 셰익스피어를 활용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어느덧 셰익스피어는 약방의 감초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주체적 입장에서 한국적 전통유산을 바탕으로 셰익스피어를 올바르게 수용했다고 인정받은 공연이 하나도 없고, 그러기 때문에 일본의 경우와 달리 셰익스피어를 앞세워서 세계 연극계를 감동시킨 공연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셰익스피어 공연도 이 시기에 확실한 진전과 변혁이 없이는 기껏해야 후기 식민지 연극이라는 불행한 청사진를 인화하는 행위를 반복할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