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畵살롱

신인 조근식 감독의 「품행제로」는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패싸움을 그리고 있다. 무대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든 것이 복고풍이다. 주인공은 문덕고의 쌈장인 중필(류승범)이고 그의 싸움 상대는 전학생 상만이다. 하지만 그는 주인공은 아니다. 중필을 좋아하는 오공주파 쌈장인 나영(공효진)이 있고 중필이 좋아하는 이웃 여학교의 퀸카 민희(임은경)의 삼각관계가 진행된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의 서사구조는 조폭간의 전쟁과 여인을 쟁취하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을 그린 전형적인 갱스터 장르의 구조를 갖고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 이 영화는 희극미학의 구조를 지향한다. 이 영화의 미학의 핵심은 그런 점에서 희극에서의 ‘전복성’에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는 반 아이들이 설명하는 중필에 대한 묘사가 펼쳐진다. 중필의 영웅담은 그간 보아왔던 모든 영웅담의 결정판으로 희화화되어 있다. 수십명의 악당들을 혼자 물리치는 이소룡, 터미네이터, 마징가 젯, 서부극의 영웅 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미지들을 조합하여 놓는다. 관객들은 이중적인 동일시현상을 경험하는데 영화속 영화로 재현된 중필의 영웅적 이미지와 이윽고 실제 나타난 일상적으로 평범한 중필의 이미지 두 개를 번갈아 확인하면서 영화속 허구영웅에 대한 자각을 하게된다. 조근식 감독은 이러한 전복적인 장치가 이 영화가 희극으로 모습을 갖추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필의 인물형상화는 이렇듯 영웅과 서민의 모습 사이를 수시로 왕래하면서 관객의 판단력을 요구한다. 절정부에 중필은 상만과의 일전을 벌이며 등에 칼이 꽂히는 비장한 지경에 도달한다. 그는 절규하면서 이 세상의 악과 부조리에 의해 비탄에 젖은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그 다음 장면, 세월이 흘러 관객들은 그가 조폭이 되었을 거라 예상하지만 결과는 엉뚱하게도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악학원 원장이 된 중필이 창문을 여는 모습이 보인다. 생사를 넘나들던 그 어떤 절박함도 회고해보면 청소년기의 ‘통과제의’였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가 관객의 공감대를 사로잡는 부분은 두 가지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주인공의 일탈된 불량배 짓거리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가난한 계층의 계급적 갈등을 배태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중필의 영웅주의를 해체함과 동시에 그의 남성성에 대한 허구적 모습을 폭로함으로 인해 성차(Gender)에 대한 관객의 억압된 시각을 해소한다는 점이다. 관습을 전복시킨다는 것은 희극의 중요한 미학이며 이 영화가 지향하는 성차의 전복성을 엿보게 만드는 대목인 것이다. 인물들간의 내적인 드라마를 연출하는데에 있어서는 훌륭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으나 이 영화속에는 이들을 둘러싼 사회가 보이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다. 1980년대의 억압적 분위기를 애써 숨기려한 의도를 짐작할수 있다. 골치아픈 구호성의 사회적 드라마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거세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희극적 구조안에서도 사회는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배경으로 삽입해야만 관객들의 사회적 공감대가 더욱 확장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