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演評

장유경 안무 『대구벌환타지』

■장유경의 춤, 목화에서 패션까지
2002년 12월 2일 7시,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달구벌환타지』 목화에서 패션까지를 구가한 춤공연이 있었다.
시놉시스(synopsis)에는 프롤로그와 3개 막의 전개,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분되어 있지만 춤은 계속 이어지고 흘러 구분선을 긋기가 힘들다. 아무튼 한 여인이 피아노음을 따른 바느질부터 시작한다. 옛 무명 이불의 손질이거나 물레(紡車)가 더 직감적일 것 같다. 장고, 징, 그리고 소리, 간간히 작은 영(鈴)음이 시작되면서 부채와 흰 천을 쥔 한 여인이 머리엔 잠(簪)을 꽂고 있고 춤추기 시작한다. 절도며 꺾기 등의 탁월한 기교가 예사롭지 않아 자세히 보니 춤꾼은 장유경이다. 춤을 멋있게 추는 노하우에 익숙하다. 무당 굿 같은 흥분과 절정을 느끼게 하는 돌기(回旋)도 빠트리지 않았다. 풍요를 바라는 제(祭)임을 직감케한다. 꾸미지 않는 허술한 차림의 남자 춤꾼 뭔가 찾는 듯이 땅을 보면서 무거운 걸음으로 등장, 씨앗을 뿌리는 짓일지 모른다. 쉿-쉿 하는 효과음이 유별나다. 점차 북소리가 커지면서 쫓는 듯 힘찬 남성춤을 몰고 온다. 남자 춤꾼 6인은 역동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몸짓이 일사불란하다. 장유경무용단이 자랑하는 한 줄기 맥이다. 속도감 넘치는 도립(倒立)·회전(回轉)의 장기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 하흑(下黑),상라(上裸) 차림으로 다이너믹을 과시한다. 잇따라 쫓아 나오는 6인은 가로로 나란히 앉아 뭔가 동작을 기다린다. 6인의 시선과 손은 중천에 달린 잎(다래?)을 향하고 남6·여6의 춤꾼들은 동중동(動中動)과 정중동(靜中動)의 교직으로 대조적 강약의 묘를 지키면서 한판 춤이 어울린다. 씨를 뿌리는 것인가, 목화 재배의 풍성을 기원 한 것이가, 아무튼 힘차고 격정적 움직임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상나하흑(上裸下黑)의 다듬어진 한 남자, 두질 크기의 파이프(Stainless Pipe)를 쥐고 의미있는 눈빛으로 무대에 서고, 양 가에는 2인의 여자가 있다. 머리에 쓴 스카프가 유심히 눈에 띈다. 3인의 조형은 매우 유닉하고 좋았다. 조용히 움직이는 3인 대비적 몸짓이 새로웠고 그림도 참신했다. 양가에서 파이프를 쥐고 조용히 돌며, 남자는 그 자리에 눕고 만다. 도전과 수난의 상징으로 볼까. 6 - 8 - 12 - 20인으로 증가되면서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춤꾼의 물결은 참으로 장관이다. 하흑상백(下黑上白) 일변도의 색깔의 물결은 목화의 난무를 쉽게 연상케 했다. 고난도(高難度)의 기교구사가 아니면서 노련한 안무기술이 물류(物流)=인류(人流)를 잘 다스렸고 변하는 무적(舞跡)과 대형(隊形)의 바리에이션을 잘 소화했다. 스프링처럼 튀고 스무스한 부침(浮沈)운동 등은 흥취를 더욱 고양시켰다. 하늘에서 무대넓이의 황토색 큰 천이 내려온다. 우렁찬 음악 허밍과 코러스는 바로 달구벌 환타지의 상징, 섬유-직물-의상(Textile Fantasy) 그것을 시현(示顯)한 것이다. 10인의 춤꾼들의 부드러운 손놀림, 조용하면서 그래도 크게 보이는 몸짓따라 거대한 섬유(Big Fabric Objet)는 흔들흔들 웅장한 춤을 함께 춘다. 조용히 모두 퇴장한다. 이상을 제2막 「닻을 올리다」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이제 제3막 「밀라노 프로젝트」 차례. 흰 중간막이 쳐진다. 주연자(김용철) 손에 솜(섬유)를 쥐고 서서히 중앙 앞으로 나서면서 흰가루(솜)를 뿌린다. 그 둘레에는 8인의 춤꾼이 있고 또 그 뒤에는 더 많은 군중들 몇 줄이 서로 교호로 움직이면서 직조과정같이 오고간다. 우군(右群)과 좌군(左群)의 정과 동의 교호적 움직임은 안정감 있는 전개를 도왔고 6인, 7인의 춤의 역동감은 종결부의 기선(機先)을 잡았다. 마지막에 이른바 패션쇼와 뷰티 콘테스트를 연상하며 꾸민 의도를 느끼게 한다. 45명의 대군단을 거느린 장유경무용단이 위용을 과시한 대목이기도 하다. 삼각형(三角形)을 기본 대형으로 춤꾼을 배치하고 그간에 조용한 제자리 좌우동(Swing), 정중동의 묘수는 관객을 사로잡았다. 대열은 앞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앞으로 나와 새로운 대형을 꾸미는 모양과, 그들이 오케스트라박스의 침부(沈浮)를 활용한 연출은 뷰티 콘테스트처럼 화려하고 멋진 볼거리였다.
본적 한국춤인 장유경의 창작의욕이 제의(祭儀)나 전설(傳說)을 떠나 현실 참여를 소재로 변전했다. 장유경은 2000년 10월 18~19일 『조화 속에서』란 특출한 작품에서 어느 조소(彫塑) 작업실을 한국창작춤으로 멋있게 표출하여 큰 공감을 일으킨 기억이 새롭다. 이번 춤은 지역특성을 살리려고한 의욕과 시도는 가상하지만 그 전개에서 참고할 기초작업이 다소 소홀한 느낌이다. 즉 제목 목화(소재)에서 패션(의류·디자인)으로 비약한 과정 즉 공정(工程)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 견섬유와 마섬유의 실뽑기는 근본적으로 작업이 다르지만, 섬유소재(목화, 양모 등 단섬유)를 실로 뽑기(紡績), 그리고 같은 실이지만 화학섬유 등의 방사(紡絲), 그 다음이 옷감 짜기(製織)을 한다. 이 과정에서 물론 선염(先染)도있고 후염(後染)도 있다. 어찌 그 뿐이랴. 인간의 화장(化粧)과 같은 이른바 여러 가공(加工)공정이 따른다. 패션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이는 공업이라기 보다 예술성이 전제되는 공정이다. 디자인도 디자이너도 여기서부터 ‘창조의 묘’를 발휘한다. 이번 작품과 같은 창작이라면 이같은 개념을 일단 섭렵하고 장면 설정이나 추출(抽出)을 해야하였다.
예를 들어 이같은 공정을 춤 동작으로 대신한다면 운동 단어(單語)는 다음을 예상 할 수가 있을 것같다. 물래질, 꼬우기(撚), 타래 풀기와 감기, 돌기(느린, 빠른), 감기(wind), 풀기(해서), 짜기(날실과 씨실), 상하동(浮沈), 좌우동. 시각적 변화를 말하면 단연 염색이다. 다가가거나 만지면 재질(材質=觸感)이지만 멀리서는 우선 색깔이다. 같은 소재에 같은 색깔이지만 옷만들기 즉 디자인에서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나고 오늘의 춤(주제)은 바로 이들에 초점을 둘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주제와 장면 설정은 작가의 자유 영역이다. 허나 주제의 전개에서 짚고가야할 과정이나 대목을 빠트리거나 뛰어 넘는다면 흐름과 묘사에 이가 빠지고 무리가 따를 것이다. 시공을 초월해서 성립되는 춤의 특권의 행사(行使)는 신중해야 한다. 목화-패션을 잇는 전개는 어떻게 설정하든 자유이다. 그렇지만 주제에 합당한 또다른 전개나 통로(通路)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장면을 생각 할 수 있다.
1) 희고 아름다운 목화의 모습을 춤의 조형으로 형상화 할 수 있다. 2) 건조간(乾操杆)을 통한 색(천연염)의 묘(妙)와 미(美)를 보여줄 수 있다. 3) 4-D 프로그램을 이용, 컴퓨터 변색으로 카멜레온(chameleon) 영상처리(映像處理) 즉 색 바꾸기 ‘시뮤레이션’하여 쉽게 볼 수 있다. 4) 온갖 패션의 호화와 특수형의 환상적 조형과 데몬스트레이션도 재미있을 것이다. 5) 목화가 아니라 누에(cocoon)로부터 출발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 속에 동적 춤 요소가 목화보다 훨씬 많이 있다. 6) 대구 수성교 앞에는 8개의 높은 키의 모뉴멘트(mounment)가 서있고 섬유뭉치가 감겨져 있다. 누가 바도 바로 방적추(紡績錐, spindle)임을 직감케 한다. 7) 또 한 예로 큰 기둥(支柱)을 세우고 꼭지에서 끈(천)을 늘어트려 꼬리를 쥐고 돌며 교착(Interace)시키면서 직조광경을 보여주었다. 8) 출연자가 너무 많으면 섬세한 안무나 표현보다 대형(隊形)변화, 마스게임이 되기 쉽지 않을까.

■백현순의 『바람·물·인간의 춤』
2002년 12월 15(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바람과 물 그리고 인간의 춤』 공연은 기존의 무용단 공연의 틀에서 벗어나 음악연주나 의상 그리고 빛과 영상등을 활용해서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예술형식을 선보이고자 한다.
제1장 ‘바람(A Wind)’, 불어오는 곳도 불어 가는 곳도 모를 정처 없는 바람, 인간 역시 삶의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는 것을. 제2장 ‘물(Water)’에서는 물을 통해 질서와 섭리를 찾아 보려했다. 특히 영상 이미지와 춤사위를 합주하였다. 제3장 ‘인간(人間)’에서는 바람처럼 태어나 물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알고 비로소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과 느끼게 된다. 스스로 삶의 자세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모습의 춤을 추려고 한다. 지극히 소박하고 원초적인 발상이라서 오히려 춤이 평탄해질 수밖에 없었다. 산도 강도 없는 평원같은 춤이 되었다. 바람의 변태 물의 고감(苦甘)을 기발한 특종기사감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위험수위를 한층 높여 표현했다면 좋았다. 안무자 자신의 직접출연은 안정감이 있고 맵시가 흘렀다. 이기향의 ‘물의 정’과 ‘성난 물’의 의상은 이번도 일품이었다.
정미화의 가야금(철금?)연주는 작품을 침착하게 해주었다. 육정학의 영상은 많이 절제되었다.
바람에 만물이 날리고 흔들렸고, 물에 불편과 괴로움을 받는 생활을 단순한 괴로움의 표시로 대치하고, 마지막 인간의 장에서는 중생의 번뇌의 표시를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그 전개 속에 의외성, 돌발성, 파격성 즉 예술적 반전(反轉)이나 환상(幻像)이 모자랐다. 긴장감도 흥분도 자아내지 못하고 시종 밋밋한 평상 보법(步法)이기에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전개가 이어졌다. 사건이나 어떤 줄거리가 흘러도 좋았다. 간혹 몸짓이 속도감 있고 역동적이었지만 기존의 판에 매여있고 독창적 몸짓 언어의 창출로 시선을 끌지 못한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나 잔잔한 수도(修道)자세나 선(禪)의 호흡은 감지 할 수 있어 불안이 없고 차분한 무대가 어쩌면 플러스와 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