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한국 춤계는 본격적인 지방춤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공연도 활발해졌을 뿐만 아니라 각종 명칭의 문예회관(혹은 문화회관)들의 기술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지방춤의 공연은 서울 중심의 춤과 버금할 정도가 되었다. 그간 그러한 지방춤의 주(主) 전진기지가 되었던 곳은 부산과 대구 두 곳이었고, 근자에는 대전이 급속도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이중 특히 대구는 유일하게 현대춤이 직업무용단체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특이한 풍토를 갖고 있으면서, 부산과는 또 달리 매우 응집력있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또한 지리적 이점때문에 각종의 페스티벌이 심심찮게 열린다. 이러한 대구춤계의 변화하는 모습을 매우 가까이서 꼼꼼히 기록하면서, 당당히 우리 춤계에 대해 할 말을 하는 정순영 선생(예명·정막)의 첫 춤평론집 「춤추는 바보, 춤 못 추는 바보」가 여러 사진자료를 수록하면서 근자에 출간되었다.
해방 이후 함귀봉의 조선교육무용연구소에 입문, 현대무용교육을 받고 직접 창작을 한 색다른 이력이 있는 저자는 자신의 춤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의 후반부에서 우리 예술춤의 2세대인 김상규·강이문·임성남·송범·김기전에 대한 독특한 방식의 춤인물연구를 수행하면서, 1999년 구본숙 안무의 『자라의 행방』에 대한 자신의 첫 리뷰를 시작으로 이숙재와 밀물무용단, 백향주의 춤·김현옥·안은미·백현순·백년욱 등의 춤에 대한 자세한 비평적 언급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오늘의 문맥에선 저자의 나이 때문에 더러 표현이 생경한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지만, 오히려 그런 부분들은 잘 풀리지 않는 매듭과 같이 저자의 춤사고와 교양을 응집시키고 있는 특이한 부분들이라 나는 본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비평문은 10년 전 작고한 부산의 춤 평론가 강이문 선생의 글을 읽는 것과 같이 다소 낯설고 고답적인 맛을 주면서, 그러나 지역에서도 잠들지 않고 푸른 광채를 띠고 있는 살아있는 비평안(眼)을 생생히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분명, 21세기 우리 춤문화의 건축을 위한 기초 세우기의 눈짓과 몸짓의 염원을 담은 부분들일 것이다.
신국판/ 256쪽/ 비매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