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이달의 좌담

김경애

□ 때: 2002년 12월 16일 오후 2시
□ 곳: 본지 동숭동 편집실

■춤계 지원금 제도의 역기능과 순기능 ― 줄어들고 있는 창작공연
장광열(張光烈): 예년과 달리 유난히 12월에 많은 춤 공연이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무용교과목 독립을 내건 전국 무용인 심포지엄 및 결의대회, 그리고 직업 예술단체들의 노조설립을 둘러싼 오디션 거부 움직임 등 공연 외적인 일들도 많아 무척 어수선한 가운데 한해를 보내고 있는데요, 어느 해보다 춤계의 제반 여건들이 급변했던 한해를 중요한 이슈를 중심으로 정리해 봤으면 합니다.
김태원(金泰源): 지난 10월부터 12월에 이르는 지금까지 각종 지원금을 받은 공연들이 줄을 잇고 있어서 아마 공연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여러 공연장들을 찾아다녔던 사람들은 산발적이나마 수확을 거두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춤계 현황을 개관하는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실망스럽다’는 말은 무용예술가들의 정신, 태도 등 자기 예술작업에 임하는 것들이 능동적이 아니고, 수동적이며 마지못해서 공연을 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지원금은 최하가 2천만 원이고, 최고가 6천만 원입니다. 문예진흥기금에서는 쉽게 탈 수 없는 금액입니다. 그런 돈을 40여 개 이상의 춤단체들이 가지고 갔습니다. 올 심사에 참여했던 저로서 거듭 실망스러웠던 것은 춤단체들이 서류를 제출하는 시점에서 공연계획을 세웠어야 하고, 또 늦어도 2월 말이면 지원여부 결과를 알 수 있으니 그때부터라도 적극적인 공연계획을 가지고 단체들이 활동을 가동을 해야 되는데 거의 모든 단체들이 9월이나 10월에 들어서야 공연을 준비합니다. 그 중에 한 두 단체는 공연장을 찾지 못해서 돈을 반납하기도 했습니다. 상반기, 하다못해 여름에라도 공연활동을 했어야지요.
서울에 공연장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뉴욕을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연장 찾기라고 하는 것은 뉴욕이든, 영국이든, 프랑스든 다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대관을 위해선 모두 상당한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좀 더 융통성이 있고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두번째로는 올해 두 가지 큰 행사, 「월드컵」과 「부산아시안게임」을 가졌습니다. 그 큰 행사에 우리 춤계가 적극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들러리를 섰습니다. 개인적으로 「88올림픽」이 끝나고 90년도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젠 우리춤도 들러리를 서는 것을 벗어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한 기억이 있는데, 아직도 그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춤계가 내실이 다져지지 않았고, 재정적인 자립도가 없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예술춤이 시작됐다는 70년대 중반이래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지금껏 우리춤이 예술계에서 주도적인 힘을 행사하지 못하는 현실이 암울합니다. 춤꾼들이 지원금을 받는다든지 행사에 동원된다든지 하는 일들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또 거기에서 우리는 창조적인 것을 얻어내지 못하면서 질질 끌려가고 있는 입장에 처해있고, 또 결과 예술창조를 향한 ‘자립성’이 많이 파손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외국에서도 오늘같이 어려운 시대에 어떻게 예술이 순수할 수만 있느냐, 순수예술은 사라졌다고 하는 평론가들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같이 복잡한 사회속에선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어느정도 받아들인다고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문예진흥기금, 서울시진흥기금 등 각 시·도의 진흥기금을 나름대로 활용하면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는 무용가들이 그것을 능동적, 창조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수동적이고 의타적인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거론할 만한 작품들이 나오기 힘들고, 또 작품이 나왔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경애(金敬愛): 일년을 결산할 때 몇 번 생각을 해서 ‘무슨 명작이 있었더라’ 하는 것이 아니고 처음에 탁 나와서 잊혀지지 않는 작품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작품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뇌리에 깊게 남긴 수퍼스타의 에너지는 없었던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금년 작품의 특정한 조류를 짚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김영희 안무 『달아』, 최데레사의 『움직임과 기호』, 부산에서 공연된 강미리 안무 『알』 등이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다고 봅니다. 우리 춤계의 큰 흐름을 만드는데 크게 돋보인 것은 없었지만, 손인영의 가나아트홀에서의 실험작, 최데레사의 『움직임과 기호』는 다매체의 시대를 사는 이 시대에 춤제작의 메카니즘을 확장시킨 것으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규모가 크든 작든 간에 우리가 쏟아넣은 에너지에 비해서 흐름을 가져올 수 있는 작품이 없었습니다.
문예진흥원에서 발행하는 「문예연감」의 통계를 보면 창작 공연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현대춤의 경우에는 특히 99년과 2000년에 비해 30%가 줄었습니다. 그러니까 지원금 받지 않고서는 공연을 하지 않는 겁니다. 자생적인 창작욕이 사그러든 것이지요. IMF로 시작된 문화관광부의 지원금 제도가 오히려 지원금을 받지 않으면 공연을 하지 않도록 작용하고 있는 역기능도 지적이 되지 않았습니까? 금년에는 특히 상반기에 월드컵이 있었고 하반기에는 아시안게임도 있었지만, 대통령선거 때문에 공연계는 분위기가 파편화되었습니다. 공연예술의 이벤트들이 들뜨고 어수선해 자리잡기 힘든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간 춤계가 교수중심의 사회라고 볼 수 있겠는데, 그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보면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교수들이 굉장히 위축됐고, 학생이 교수를 평가하는 제도로 가면서 이전에 비해서 상당히 제약을 많이 받습니다. 반면에 여건은 어렵지만 직업적인 무용가들이 독자적인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공연횟수로 보면 교수들의 공연과 그렇지 않은 쪽의 공연수가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학교 중심의 구조가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지요.
또 무용원에서 졸업생들이 많이 배출된 이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안일하게 작업을 하는 건데, 지방도 마찬가지고 서울에서 유급으로 주역 두 세 명만 데려와서 투입시키고 작품은 대강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식의 주요 남자무용수는 공연 당 2백만 원 쯤을 개런티로 받는다고 합니다. 좋은 현상으로 봐야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직업무용수로 팔려다니는 현상이 지원금을 받은 공연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기 앙상블을 가지고 자기 작업정신을 가지고 기량이 부족하더라도 작업을 통해서 구축해 가는 그런 풍토는 없어지고 있습니다.
장광열: 춤사회 여러 부문에서의 지각변동이 어느 때보다 컸던 한해였습니다. 정형화 된 공연양식을 벗어난 실험 공연과 멀티미디어 아트의 발달로 인한 크로스오버 작업의 증가, 부산, 대구, 대전 등 광역시를 중심으로 한 지방 춤계의 괄목할만한 성장, 춤 페스티벌의 활성화와 국제교류의 다양화, 무용교육을 포함한 춤 정책에 대한 위기의식 대두 등이 지각변동의 주요 내용들로 보고 싶습니다. 객석을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도록 해 관객들의 시선을 다변화시킨 공연(댄스컴퍼니조박), 토탈미술관의 9개 공간을 무대화 관객들이 이동하면서 특별한 체험을 유도한 공연(손인영NOW무용단), 서울과 파리를 실시간으로 연결시키는 등 웹 아트와 디지털과의 만남을 시도한 공연(별오름프린지), 이밖에 영상을 이용한 춤 공연들이 증가하는 등 춤과 타 장르와의 접목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전국 14개시도 대표 무용단이 참가 열띤 경연을 벌인 제11회 「전국무용제」는 참가작들의 평균점이 수직 상승해 지역 춤계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입증했고, 침체에 빠졌던 「국제현대무용제」는 ‘Modafe’로 페스티벌의 명칭을 새롭게 내세우면서 전문기획사의 참여로 유럽의 춤을 집중 소개했고,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아시아 연합, 일본과 한국의 합작 공연 등으로, 「탄생 90년 최승희국제무용축제」는 미국을 비롯 동양 3국의 최승희 춤 관련단체와 학자, 직계제자 등이 함께 모인 최초의 자리로 불러들여 하는 국제교류를 주도했습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네덜란드댄스시어터, 스페인국립무용단, 산카이주쿠무용단, 이스라엘 바체바무용단, 러시아 보리스에이프만발레단의 내한공연 등 외국 유명 무용단의 질 높은 작품들은 일반 대중들의 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무용수들의 기량 외에도 음악, 무대미술, 조명 등 프로덕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스탭들의 역량이 크게 향상되었고 이는 곧 실험성과 더불어 올해 공연 작품의 평균점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는 특히 지방 춤계의 활성화에 기폭제가 됐으며, 광주시립무용단을 비롯해 대전, 인천, 울산, 대구시립무용단 등 직업무용단들의 왕성한 활동도 지역 춤 발전을 선도했습니다.
해외진출 부문에서도 해외 콩쿨 입상과 함께 유니버설발레단의 그리스 공연 16회 매진 기록 등 발레를 중심으로 소득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문예진흥원에서 시행한 「신진예술가지원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고, 문화관광부와 각 시도가 지원주체인 「무대예술지원사업」도 창작 활성화에 기여했으나, 턱없이 부족한 공연장과 급속한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춤정책의 순발력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