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무용/동작치료사로서 나는 2005년 1월 21일부터 30일까지 독일 함부르크에서 진행된 신체 심리치료(Body Psychotherapy) 교육훈련 프로그램인 「무빙사이클(Moving Circle)」 수업과 「인간의 태내기와 주산기를 통한 각인」이란 주제의 신체 심리치료 워크숍에 참석하였다.
신체 심리치료는 무용/동작치료의 기초개념과 같이 신체와 정신을 하나로 보는 일원론적인 접근 치료법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심리학과나 정신과에 이미 알려진 심리치료기법이다. 「무빙사이클」은 무용/동작치료사이자 신체 심리치료사인 크리스틴 콜드웰(Christine Caldwell) 박사의 이론으로 개발된 신체 심리치료의 한 기법으로 신체의 움직임을 통하여 개인의 닫혀진 마음을 열어가는 심리치료법이다. 미국 신체치료협회와 무용/동작치료학회의 정회원으로서 왕성한 활동과 명성을 갖고 있는 콜드웰 박사는, 현재 미국 콜로라도의 나로파대학 신체심리학과(Somatic Psychology) 학과장이자 교수로 재직하며 무용/동작치료와 신체 심리치료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무빙사이클은 6단계의 훈련교육 과정과 3단계의 교육자양성 단계의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국과 독일에 센터를 갖고 있어 무빙사이클의 교육 및 훈련을 포함한 다양한 신체 심리치료 워크숍을 제공하고 있다. 무빙사이클은 개인이 자신의 신체움직임을 인식하고 문제점을 인정하는 과정이 치료사의 치료적 개입(Theraputic Intervention)인 움직임요소를 통해 전달되고, 또 그것을 본인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알아가는 치료적 사이클로서 무한한 움직임의 요소들이 도입되고 적용 가능하다.
나를 포함하여 16명의 훈련생으로 구성된 이번 교육은, 6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중급자 훈련 무빙사이클의 두번째 단계 프로그램이었다. 훈련 구성원의 대부분이 심리치료에 관련된 영역에 종사하는 전문가들로서 정신분석가, 동작치료사, 정신과 의사, 신체심리치료사, 무용가 등 다양한 직업들을 갖고 있으며, 한국, 스위스, 유고슬라비아, 미국, 독일의 타 도시 등에서 이번 교육을 위해 참석하였다. 5일 동안 40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 교육과정은 1월과 8월 1년에 두 번 있으므로, 서로 그간의 변화와 훈련연습의 경험을 나누는 ‘동료간의 지도’라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훈련교육과정에서는 프로그램의 독일 호스트 중 하나인 바바라 슈미트(Barbara Schmidt)의 참혹한 경험을 통해, 참석자들 모두 다시 한번 신체와 정신의 통합 치료의 중요성을 마음깊이 공감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이번 교육 바로 전 크리스마스 여행을 태국으로 갔다가 쓰나미(지진해일)의 피해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한쪽다리의 심한 부상과 해일 속에서 1시간 이상 13살된 아들과의 헤어짐과 만남이라는 가슴 떨리는 경험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거듭되는 불면의 고통과 해일에 떠돌아다니던 자신의 몸을 독일로 돌아와서도 그대로 느끼고 있었고, 아들과 헤어진 순간을 몸과 마음으로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외과적 치료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직된 자세와 제한된 몸짓으로 고통스러워하며 훈련과정에 임하는 노력에 참석자들 모두 안타까웠었다.
그런데 수업이 진행되면 될수록 그녀의 표정과 움직임은 너무나 눈에 뛰게 달라져 가고 있었고, 본인 스스로도 그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수업의 훈련과정 일부분으로 참석자들이 파트너를 정해 무빙사이클기법을 적용시켜 실습하는 과정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문제와 아픈 기억을 빠르게 치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석자들은 그녀가 가진 「외상 후 스트레스 이상증후」(Post Tramatic Stress Disorder)의 치유과정을 직접경험하고 있는 과정을 지켜본 증인이 되었던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이상증후는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충격이나 사건 등으로 인하여 신체나 정신적으로 일시적 혹은 장기적 이상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신체 심리치료나 무용/동작치료의 접근이 가능하고 많은 연구물에서 위의 치료들의 효과가 검증되고 있다. 5일간의 긴 수업을 마쳐갈 때 그녀는 교육과정을 통해 “거대한 쓰나미로 인하여 해변을 뒤덮었던 시체들의 기억과 짧지만 엄청난 불안감을 가져다 준 아들과의 이별의 시간들을 지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보름동안의 독일여정을 통해 개인적으로 다시 한번 ‘움직임을 통한 심리치료’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무빙사이클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인간의 태내기와 주산기를 통한 각인이라는 주제의 워크숍에서 만난 다른 분야의 심리학자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신체의 움직임은 개인의 욕구와 무의식의 표출이며, 또한 그것을 통하여 치료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공통된 의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워크숍에서 만난 두명의 무용/동작치료사들로부터 현재 독일 내의 무용/동작치료의 보급과 인식을 들으며 많은 부러움과 한편 내 자신이 얼마나 나태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재 독일의 무용/동작치료와 신체 심리치료의 보급은 상당히 만족스럽고, 관련 분야의 전문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신체의 움직임을 개인의 심리치료에 적용시킨다는 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사 자신이 신체의 움직임을 얼마만큼 인식하고 경험했는가이며, 그에 대한 나의 믿음은 더욱 두터워졌다.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삶의 표현인 움직임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움직임의 특별한 의미는 더욱 깊어짐을 느낀다. 다양한 춤의 기법, 문화의 경험, 개인의 성장과정과 삶 등등 모두가 움직임을 창조하는 요소들임을 다시 한번 소중히 깨달으며, 코끝이 시리게 추웠던 함부르크 회색빛 하늘의 기억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