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우리의 귀여운 가이드 쟈메이어는 영어와 스페인어로 번갈아 설명을 하느라고 바빴다. 관광객에게 쉴 새 없이 그렇게 설명을 하려니 얼굴에 미소를 지을 시간이 어데 있으랴. 그녀는 웃지를 않았다. 체격이 자그마하고 영리하게 생긴 그녀가 그래서 더 지적으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녀가 첫번째로 우리를 안내한 곳은 올드 아바나 중심부에 있는 내셔날 캐피탈 빌딩. “워싱턴에 있는 국회의사당 건물을 보고 너무 좋아서 그대로 지었대요.” 한 관광객이 말한다. 정말로 워싱턴 의사당과 크기만 좀 작을 뿐 높은 돌층계와 의사당꼭대기의 둥근 돔의 희고 웅장한 모습이 똑같아서 주변에 있는 검고 낡은 스페인식 건축들이 없었으면 여기가 정말 쿠바인가, 할 뻔했다.
칠들이 심하게 벗겨지고 찌그러져서 설치미술작품에나 쓰일 것 같은 오륙십년대 미국산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다니는 사이로 자전거가 포장차를 뒤에 달고 비틀거리며 다닌다. 관광객을 위한 자전거택시라고 한다. 덩치가 커서 괴물 같은 생각이 드는 자동차가 지나가자 쟈메이어가 설명한다.
“시내버스인데 캐멀버스라고 부릅니다. 낙타 등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에요.” 기름이 부족해서 한꺼번에 사람들을 많이 태우기 위해서 대형트럭 셋을 붙여서 만든 버스라고 한다. 이 캐멀버스도 수가 모자라서 시민들의 교통을 해결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대로변 곳곳에서 짐보따리를 옆에 놓고 서있는 여인들이 눈에 띈다. 오래전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모습이어서였을까, 낯설지가 않았다. 오히려 아바나의 거리가 그런 번잡한 볼거리 때문에 쿠바의 수도라는 생기가 나에게는 느껴졌다.
노란버스가 정류장에 와서 섰다. 스쿨버스인 듯, 남녀 학생들이 단체로 몰려와서 탄다. 여학생들의 짧은 미니스커트 유니폼 아래로 쭉 뻗은 긴 다리들이 건강해 보인다. 웃고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이 맑고 밝아서 나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번졌다.
“저 교정에 여인의 동상이 보이지요?” 쿠바에서 제일 크다는 아바나대학교를 지날 때 쟈메이어는 말했다.
“여인이 두 팔을 부드럽게 벌리고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환영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나요?” 관광객이 물었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쟈메이어의 대답이었다. 그런 힘든 대학의 영문과를 졸업한 쟈메이어는 관광안내원이 되어 지금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의사인 언니보다 수입이 두 배나 된다는 말을 거침없이 밝히는 그녀는 야무지고 당당했다.
버스가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길옆에 야채시장이 보였다.
“개인이 농사 진 물건들을 나라에다 받치고는 나머지를 파는 곳입니다.” 야채시장 옆에 꽃가게도 있었다. 여인이 꽃을 사들고 가고 있었다. 폐허가 된 집안에다도 꽃을 꽂고 사는구나. 전통이나 문화는 신앙 같은 것. 그런 쿠바인의 신앙이 존경스럽다.
바카디 팩토리라고 쓰인 건물에 들어갔다. 그곳은 쿠바의 특산품인 사탕수수로 만드는 럼주(酒) 제조공장이었다. 남녀 공원 몇 명이 크지 않은 작업대에 앉아서 손으로 술병에 라벨을 부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별로 빠르지 않은 손놀림으로 보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인지 휴식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들은 우리를 쳐다보고 우리는 그들을 쳐다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옆방으로 들어갔더니 나무로 만든 커다란 술통이 몇 개 놓여 있었다. 그 술통 안에서 럼주가 발효된다는 설명을 해주는 남자는 사탕수수밭이 있는 시골에 공장이 또 있다는 말로 우리의 궁금증을 약간은 풀어줬다. 그러니까 그곳은 럼주 팩토리가 아니라 관광객을 위한 쇼하우스인 것. 우리는 이층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곳에서 관광객은 럼주의 시음을 하고 사기도 하였다. 한쪽 코너에서는 쿠바의 특산품인 시가와 커피, 그리고 쿠바음악의 CD를 팔고 있었다. 그 모든 눈에 보이는 장치와 상품들이 엉성하고 허약했지만, 나는 시가와 커피와 CD를 골고루 샀다. 쇼핑의 즐거움을 거기서 누렸다.
아바나 항구에는 오래된 요새가 있었다. 1982년에 유네스코에 의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낡은 요새. 언덕위에 있는 요새는 세월의 정취를 바람에 날리며 멀리 바다건너의 올드 아바나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1956년 멕시코로부터 추방될 때 카스트로가 타고 있었다는 그랑마 보트(Granma Boat). 그것은 1950년까지 대통령궁이었다가 지금은 혁명박물관으로 바뀐 자리에서 관광객을 대하고 있었다.

센트럴파크 앞에 있는 호텔 테라스카페에서는 오후가 되면 밴드음악이 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같이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길을 가던 관광객들은 한번씩 들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테라스카페에 나라고 유혹을 안 당할 수 있으랴. 아침 눈뜨면서 잠잘 때까지 어디를 가나 들리는 쿠바음악의 리듬. 삼바나 룸바, 차차차, 그리고 살사춤이 저절로 몸에서 분출되어 나오게 만드는 그런 흥겨운 음악에 젖어 한나절을 보냈으면서도, 더욱이 시내관광을 끝내고 쟈메이어가 가리켜준 번화가 오비스포거리를 찾아가서 스페인식 중정(中庭) 레스토랑에서 실컷 음악소리를 듣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인데도, 그 흥겨운 쿠바리듬의 밴드소리에 주저없이 테라스카페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리는 아직 있었다. 육인조 밴드의 본격적인 쿠바음악. 그 리듬이 더 흥겹게 거리의 관광객을 유혹하였던 것은 밴드맨들이 다루는 악기가 다양한 탓인 듯. 기타와 바스와 섹스폰, 그리고 드럼 등의 악기를 고루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때 젊은 여학생들 십여명이 단체로 들어왔다. 밴드 가까이에 그녀들이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넓은 테라스카페에 손님이 꽉 차서 밴드맨은 더욱 신이 나는 모양.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들이 점점 달아오르고, 그래서 손님들의 얼굴도 흥에 넘친다.
그렇게 얼마동안 음악 속에 앉아 있는데, 한 여학생이 밴드맨 곁으로 나가더니 그들의 노래에 합류하여 노래를 부른다. 처음 시작은 멋쩍은 듯, 수줍은 듯 따라 부르다가 한 곡을 다 끝내고 손님들의 박수와 앵콜의 청까지 받더니 다음부터는 제대로 몸을 살짝살짝 흔들면서 불렀다. 가사도 틀리지 않고 무척 잘 부른다. 노래가 끝난 후 여학생은 밴드마스터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한다. 다음 곡을 신청하는 것 같았다. 밴드마스터가 고개를 끄떡이고 여학생이 신청한 곡을 연주하려고 할 때 그녀는 테이블에 앉아있던 친구들을 앞으로 모두 불러냈다. 친구들이 우르르 밴드 옆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관광 온 여학생들 모두가 쿠바음악을 저토록 흥을 내며 잘 부르는 걸까. 조금만 내가 노래를 할 줄 알아도 따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그들의 노래는 카페 안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테이블에 앉은 관광객들은 악사들의 노래보다 이 발랄한 여학생들의 아마추어노래를 듣는 것에 손님들은 더 신을 낸다. 처음에 나오지 않고 앉아있던 여학생들까지 하나둘 다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테라스카페에서 벌어진 춤과 음악의 즉흥 무대는 길가는 사람들까지 불러들이는 축제의 분위기. 노래가 끝나고 여학생들이 자리로 돌아갈 때 한 학생을 불러 물어보았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핀란드요.”
“그런데 어떻게 모두들 그렇게 라틴음악 노래를 잘 부르나요?” 나는 물었다.
“우리는 고등학교의 음악반 학생이에요.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쿠바에 라틴음악을 연수하러 왔어요.”
그 먼 핀란드에서부터 쿠바음악을 배우러 이 카리브 해의 섬나라까지 오다니. 쿠바음악을 이토록 모든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란 영화 생각이 났다. 쿠바혁명 이후 일거리가 없어서 해체 된지 40년 만에 아바나의 재즈음악클럽에서 활약했던 유명멤버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음악을 되살린 이 뮤직 다큐멘터리영화는 쿠바를 아는 데 무척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이 된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구성멤버들이 한사람 한사람씩 스크린에 나와 자기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장면과 더불어 젊은 날의 연주솜씨가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장면들이 가슴에 뭉클하게 와 닿는 영화다.
쿠바의 넷킹콜이라고 불리는 90세의 노인 이브라힘 페레르는 12세 때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는 그전에 돌아가시고 형제도 없다. 산다는 것이 힘들었다. 구두닦이도 하고 구걸도 하였다. 아무도 없이 혼자서 남겨진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오로지 노래 부르는 일. 그러다가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멤버가 되었다. 빼빼 마르고 키가 큰 나이 아흔 살의 할아버지 이브라힘이 노래를 부른다.

꽃들이 잠들었네, 글라디올라스와 장미 그리고 흰 백합.
깊은 내 영혼, 슬픔에 잠긴 내 영혼을 꽃들에게 알리지 마라.
내 슬픔을 알게 되면 꽃들도 울테니까.
깨우지 마라 모두 잠들었네, 글라디올라스와 장미 그리고 흰 백합.
내 슬픔을 꽃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내 눈물을 보면 시들어버릴테니까.

구슬픈 멜로디의 이 노래를 여성 보컬리스트 오마라와 듀엣으로 부르고는 서로가 가볍게 껴안는다. 오마라는 아바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야구선수. 쿠바에서 제일 처음으로 해외원정을 간 야구선수였다. 점심식사 후에는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부르던 기억을 되살린다.
1919년생인 피아니스트 루벤은 7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집에 아주 좋은 피아노가 있었다.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며 놀랐다. 80이 넘은 루벤이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는 카메라에 클로즈업 된 손등에 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