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살롱

올해에 들어와서 동아시아 국가와의 연극교류가 부쩍 늘어났다. 한국영화와 가요가 동아시아에서 한류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면서 다른 분야의 교류까지 영향을 주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올해에는 편견과 인식의 부족 때문에 수용하지 못했던 일본의 현대극이 많이 소개될 예정이다. 그 동안은 희곡보다 연출가 위주로, 아니면 재일교포 연극인이라고 해서 공연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스즈키 다다시(鈴木忠志)의 실험적인 연출작품은 페스티벌이 열릴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초청되었고, 김수진과 츠카고헤이의 공연은 재일교포로서 무슨 무슨 연극상을 수상한 연극인이라는 식으로 소개되어 성황을 이루었다.
일본 연극은 고전극의 경우도 그렇지만 현대극도 시장이 넓고 내용이 알차다. 일본 현대극은 당대의 연극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도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최근에 교류가 잦아지면서 한일연극교류협의회라는 것이 조직되어 희곡집을 내고 희곡낭독회를 열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중국의 현대극도 세계로부터 점차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망명상태에서 희곡을 발표하고 있던 가오싱지안(高行健)이 얼마 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그의 희곡집이 발간되고 공연이 이루어졌다.
지난 달 한국연극연출가협회가 주최한 아시아 연극연출가 워크숍 공연도 최근의 중국연극을 알려고 하는 욕구를 반영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제까지 중국 현대극 공연이라고 하면 중국에서 극단이 와서 공연하는 것이 상례였다. 하지만 이번의 워크숍 공연은 국립극단이 서양번역극을 공연할 경우처럼 중국대륙과 홍콩에서 연출자를 한사람씩 초빙하여 한국 배우와 함께 작품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낯선 외국극을 공연할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조심스런 방법이고 보다 학구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막상 중국 연출자를 초빙해서 만든 공연이 우리의 현대극과 일란성 쌍둥이처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극을 보는 구태의연한 시각도 그러하고 표현방법도 그러하다. 중국 대륙의 연출자가 만든 「생사의 장」은 항일 전쟁기의 중국 변방사람들이 얼마나 부조리하게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는가를 패러디한 것 같은데 너무나 교과서적으로 브레히트를 모방하고 있고, 홍콩 연출자가 만든 「프랜치 키스」는 자본주의와 서양식 사고에 젖어 있는 합리적인 홍콩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흥미로웠지만 표현방식이 너무나 사실주의적이어서 마치 입센의 「유령」이나 「헷다 가블러」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아시아 현대극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그들의 연극도 우리처럼 서양연극을 모방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재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의 현대극이 아시아적인 정신과 전통을 어떻게 정체성 있게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는가를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교류라는 것은 친교만이 아니라 내실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아 연극을 표피적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연구하는 풍토를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