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살롱

랄프 로렌의 니트 원피스와 재킷의 화이트 패션(2005년 봄 여름 뉴욕 콜렉션에서)

2005년 봄, ‘화이트 패션’이 여성들의 스타일을 밝게 변신시켰다.
질산더의 트렌치 코트, G.V.G.V.의 무릎 길이 셔츠와 7부 바지, 베르사체의 몸에 딱 붙는 섹시한 팬츠 수트, 샤넬의 검정선을 댄 투피스, 랄프 로렌의 니트 드레스와 재킷의 한 차림 등 모두 백색 천지다. 우리나라의 옷 매장 역시 캐주얼 바지, 하늘하늘한 소재의 블라우스, 반짝이를 붙인 모자 등 흰색으로 봄 단장을 했다.
올 봄 화이트 패션의 등장은, 두 가지 패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새하얀 빛깔을 통해 순수함의 회복을, 부드러운 느낌의 아이보리를 통해 따뜻한 마음에 대한 소망을 나타냈다. 메마르고 혼탁해져 가는 세상에 대한 외침인 셈이다.
인간은 예부터 흰색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고대 로마의 그리스도교도들 사이에선, 결혼하는 신부에게 하얀 옷을 입게 하는 관습이 있었다. 결혼은 신 앞에서 사랑을 약속하는 의식인 만큼 순수·청결·신성함을 상징하는 흰색 드레스를 입힌 것이다. 이것이 하얀 웨딩드레스의 기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백의민족’이란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삼국시대 이전부터 흰색을 즐겨 입었다. 19세기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외국인들은, ‘남자나 여자나 한결같이 흰 옷차림’을 한 것이 인상적이란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상복 빛깔로도 흰색을 사용한 데는 다른 사연이 있다. 본래 상복 빛깔은 누르스름했다. 누른 삼베천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집안 어른을 돌아가게 한 죄인’이란 뜻에서, 상주들은 거칠고 값싼 옷감인 삼베로 상복을 해 입었다. 그러던 것이 현대로 들어서면서 무명 옷감이 많이 만들어지게 되자, 이 값싸고 하얀 무명천으로 상복을 해 입게 된 것이다.
흰색은 이중적인 색채 심리를 지니고 있다. 즉, 완벽함과 평형감각을 나타내는가 하면, 고독·슬픔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흰색 옷은 통찰력이 필요할 때,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여야 할 때 입으면 효과적이고, 마음이 외롭고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땐 잠시 입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한다.
하양은 어느 빛깔과도 잘 어울리는 사교적인 빛깔이기도 하다. 검정이나 짙은 청색과의 조화는 지적이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빨강이나 오렌지와의 조화는 활달함과 쾌활한 이미지를 나타낸다. 분홍·연두·노랑·하늘색과의 조화는 화사하고 상큼한 이미지를 표현한다.
흰색 캐주얼 바지에 분홍색 봄 코트의 매치라든가, 흰색의 정장 스커트에 연두나 하늘색 니트 스웨터의 매치는 봄차림으로 산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