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공연예술지원, 누구를 위해 필요한가
다른 분야도 다 그렇지만, 춤을 비롯한 공연예술가들은 특히 지원에 목말라 한다. 외부의 지원이 없이 자신들의 힘만으로 예술활동을 한다는 것이 (특히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공연예술 관계자들 일부만의 입장이다. 관계자들도 여러가지로 나뉠 수 있다. 우선 창작자(흔히 말하는 예술인)가 있고, 매개자(교육자, 기획자, 연구자, 비평가, 관련매체)가 있으며 시설운영자(공연장)가 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분류한다면, 창작자 중에도 직접 창작자(무용수, 안무자, 연출자, 대본작가…)와 간접 창작자(디자이너-의상, 음악, 조명, 무대미술…), 그리고 창작 지원자(오퍼레이터-조명, 음향, 무대기계…; 이들은 공식적으로 ‘무대예술 전문인’이라 불린다)가 있다. 또 종사자의 범위를 최대한 확장한다면 관객도 여기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이들 각각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한편 공연예술 관계자가 아닌 다른 분야와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힘들기 때문에 지원을 한다는 점에 흔쾌히 동의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문화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산업, 노동, 환경, 복지…)는 물론, 예술이 아닌 다른 문화 분야(문화산업, 출판, 체육, 문화유산…)쪽에서 보면 지원의 필요성과 형평성, 지원의 효과 등을 두고 얼마든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의 경우 지원의 주체가 거의 공공부문(정부, 지자체, 각종 기금)이며 그 재원이 대부분 국민의 세금(혈세!)으로 조성된 것이므로 재원을 부담한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예컨대 “내가 살기도 힘든데…”라는 가장 원초적인 반론부터 다른 분야(복지, 환경 등)가 먼저다 라는 우선순위 문제, “나 그런 거 안 좋아 해”라는 취향의 문제, 그리고 “예술? 그거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지들 좋아서 하는 일인데, 무슨?” 하는 식의 다소 감정 섞인 주장까지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잠재된 반론은 복권 수익금의 예술지원 배분을 둘러싸고 촉발되었다. 지원 액수로 보면 복권기금은 문예진흥기금을 통한 지원액보다 훨씬 많다(2004년 446/218억원, 2005년 498/491억원-실제로는 대학로 공연장 조성사업에 들어가는 복권 100억원과 진흥기금 157억원 및 진흥기금 중 2004년에 없던 조건부 기부금 33억원을 빼면 2005년은 복권기금은 398억원, 문예진흥기금은 301억원).
복권 수익금은 복권 판매액(및 운용수익)과 당첨금(및 운용자금) 사이의 차액으로서 그 중 30%는 통합된 기금(예를 들어 주택복권과 관계있는 국민주택기금) 등 10곳에 먼저 배분된다. 문화부문은 그와 관계가 없으므로 30% 배분에 포함되지 않는다. 나머지 70%는 저소득층의 주거안정 지원사업, 국가유공자에 대한 복지사업,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사업, 공익사업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업(5% 이내의 범위), 그리고 ‘문화·예술진흥 및 문화유산보존사업’에 배분된다(2004년부터 폐지된 문예진흥기금 모금의 대안으로 마련된 것임).
문제는 복권기금의 성격과 관련된 것이다. 복권 수익금은 실제로 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우선 배분 기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성격상 그들을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는 점에서 문화예술 지원 명목으로 쓰이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복권기금은 문예진흥기금에 포함되어 쓰이는데, 처음부터 그 용도가 정해져서 문예진흥기금으로 넘어오게 된다.
올해의 주요 용도와 금액을 보면, ‘기초예술의 진흥’(182억원)과 ‘서민층 및 문화소외계층의 문화 복지 증진과 관련된 사업’(285억원) 및 ‘전통예술분야 지원사업’(30억원)이다. 기초예술진흥 사업 중 대학로 복합공연장 조성용 100억원을 뺀다면, 그 비율은 전체(398억원)의 21% 정도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계층들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복권기금의 설립 취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예를 들면 지난번에 잡음이 있었던 ‘올해의 예술상’은 ‘2004 올해의 예술상 축제·시상 사업’의 일부로서 2005년 명칭은 ‘올해의 예술작품 축제사업’이다. 본래의 취지가 ‘상’(창작자)보다는 ‘축제’(향수자)에 중점을 둔 사업이라는 것이다).
공연예술 지원에 대한 이러한 반론들에 대해서 자주 동원되는 것이 이른바 ‘시장 실패’의 논리다. 한마디로 하면 공연예술은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이므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예술은 대개 수지가 맞지 않으며 아예 ‘수’는 없고 ‘지’만 있는, 그러나 사회를 위해서 꼭 필요한 분야도 많다. ‘시장 실패론’의 근거가 되는 공연예술의 특성 즉 일회성이므로 복제가 불가능하다거나 수요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예컨대 뮤지컬같이 호황을 누리는 업종도 있으므로 두루 적용되기는 힘들다. “하필 왜 수지 안 맞는 짓을 하냐?”라는 거다. 게다가 제법 겉모습이 화려하거나, 예술한다고 그럴 듯한 대우를 받거나, 극히 일부라도 잘 먹고 잘 사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있고, 무슨 떡고물이 있는지는 모르나 가끔 ‘지들끼리 싸우는’ 모습들은 논리적 타당성 이전에 감정적 반발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하물며 그 수지 안 맞는 짓을 하겠다고 어릴 때부터 사교육(예능)을 시키고, 예컨대 대학의 무용과가 50개가 넘는 현실에서 수요가 제한되어 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예술은 국가의 자원, 국민의 삶의 질을 위해 필요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서는 예술의 발생기원론에 근거를 두고 ‘먹고사는 일과 예술의 불가분성’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삶의 질’을 이야기하면서 “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으니 이제부터(는) 먹고 사는 일(생존) 못지않게 문화(질 높은 삶=문화생활)가 중요하다”는 다소 수세적인 (경제우선론 인정) 이야기도 나온다.
이러한 말들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지, 보통 사람들도 뭔가 인간다운 생활을 하려면 ‘문화생활’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갖고 있는 듯하다(예컨대 “그래도 가끔 극장에 가기도 해야…”하는 식의 이야기나 대도시에 비해 시골이 불편한 점은 ‘애들 교육’과 ‘문화생활’ 문제라고들 하는 걸 보면). 그래서인지 문화정책에서 ‘문화복지’라는 용어가 등장해서 ‘문화소외’(지역, 계층)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들에 대한 지원이 중요한 정책방향으로 자리잡혔다(한때 성행했던 ‘찾아가는~’ 식의 제목을 단 문화사업들의 배경이 바로 이러한 문화복지론이다).
하지만 문화가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 해도, 질 높은 삶이 반드시 공연이나 전시를 관람하는 따위의 일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그야말로 먹고 사는 일(식의주)이나 보건, 의료, 환경 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설사 그러한 영역은 ‘복지정책’의 대상으로 남겨 두고, 기타 보행권이나 간판 등 문화가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는 요즘 등장하는 ‘문화권’의 영역으로 보아 ‘인권정책’의 대상으로 넘겨준다고 하더라도 문화를 생활 속에서 누린다는 의미에서의 문화생활은 실천의 문제이기에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취향과 정서, 그리고 문화 해득력(literacy)을 익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한 주장은 “지성(IQ)보다 감성(EQ)”이라는 세태의 변화와 맞물려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정부에서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예술교육과를 신설하고 관련법과 기구(문화예술교육진흥원)를 준비하는 등 문화정책에서 ‘문화예술교육’의 비중을 높였다. 예술교육은 창작과 향수의 토대를 튼튼하게 하여 예술의 저변을 넓힌다는 점에서, 그리고 소외와 억압을 극복하는 치유의 기능을 한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은 요즘에 자주 들리는 ‘문화의 세기’니 ‘문화 마인드’니 하는 언설들뿐만 아니라 일찍이 백범이 말한 ‘높고 높은 문화의 힘’ 하는 말에서도 전거를 찾을 수 있겠지만, 최근에 부쩍 문화산업을 말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문화는 상표(브랜드), 포장지(디자인)로서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산업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어떤 업종보다 수지맞는 장사(부가가치 높은)라는 얘기가 자주 들려온다. 각종 매체뿐 아니라 인터넷이니 모바일 같은 신기술을 통해서 전파되는 문화 콘텐츠 중 충분히 수지맞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대중문화’란 이름의 돈 되는 문화가 전에부터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의 문화산업론은 차원이 다르다고 하겠다. 크게 보면 산업혁명에 비견되는 정보화혁명이라는 문명전환의 시대상도 반영하고 있으며, 산업적으로 보면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제조업과 서비스업만으로는 한계에 달한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문제, 그리고 최근 자주 이야기되는 일자리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문화정책에서도 문화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커졌다. 벌써 1992년에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이 제정되었고, 공연이 문화산업에 포함되었으며, 1994년에는 문화부 안에 문화산업국이 새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문화산업이 각광을 받게 되자 ‘돈 되는 문화’에만 관심을 갖거나 문화의 경쟁력(돈이 되어야 한다)에 대한 강박증을 낳기도 했는데, 문화가 사회 발전의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인문학적 경고도 나오고 ‘돈 안되는 문화’들을 소홀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와 반발도 낳았다.
이런 와중에 작년부터 새로이 등장한 개념이 ‘기초예술’이다. 물론 기초예술이란 말은 모든 정신적 물질적 삶의 토대로서의 문화라는 개념에 입각한 것이지만, 기초가 있어야 응용도 잘할 수 있듯이 ‘기초예술이 튼튼해야 문화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라는 논리로 예술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보강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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