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안성수 안무의 『틀』(사진 김찬복)

춤을 보는 여러 가지 시각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메타퍼(metaphor·은유)가 아닌가 싶다.
메타퍼는 ‘지나감’ 또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메타(meta)’와 ‘옮기다’, ‘나르다’는 뜻의 ‘포레인(phorein)’이 붙어서 생긴 말이다. 따라서 메타퍼, 즉 은유는 사고나 이미지를 한 장소로부터 다른 장소로 이동시킴으로써 우리들을 가두고 있던 경계를 넘어서게 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신화나 영적 진리가 통상 은유적 그릇들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도 은유가 갖고 있는 바로 이런 신성한 힘 때문으로 생각된다.
은유는 그 외연으로서 역사적 맥락이 지니는 딱딱하고 사실적이며 일차원적 내용들이 아니라 그 내포를 통해서만, 다시 말해서 은유가 스스로를 일깨우는 진리의 여러 측면에 대한 증거들의 성운(星雲)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은유의 외연이 깨져, 내포가 흩어져 일상의 서사로 들어왔을 때 은유는 더 이상 신성한 힘을 갖지 못한다. 어떤 시인은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많이 써 진부해서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겠다고 말하기조차 한다.
지난달 한국의 춤을 현재 이끌어 가고 있는 40대 중요한 무용가들의 작품이 잇따라 무대에 올랐다. 공연기획사 MCT의 10주년 기념공연 「오늘의 춤작가 빅4 초대전」과 국립무용단의 중견안무가 초대전 「주목-흐름을 눈여겨보다」에서 안성수, 안은미, 전미숙, 홍승엽, 김영희, 정은혜씨가 각각 안무했다. 또, 박재희새암무용단의 대표작과 강혜련댄스프로젝트의 신작도 공연됐다. 대표작들은 상황에 따라 수정되기도 했지만 그대로 무대에 오른 작품도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은유의 힘이 더욱 새로운 작품이 있었던 반면, 이제는 진부한 서사가 느껴지는 퇴행적 작품도 없지 않았다.

■안성수(安晟洙) 안무의 『볼레로 2005』와 『틀』
안성수픽업그룹의 『볼레로 2005』(안무 안성수, 3월 12~13일 LG아트센터)와 국립무용단의 『틀』(안무 안성수, 3월 24~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춤의 그릇에 따라 춤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미학적으로 보여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안성수 교수는 지금 현재 일반 관객들은 물론 전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춤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대표적인 국내 무용기획단체의 10주년 행사와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무용단에서 동시에 작품을 의뢰했다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번에 대표작과 신작을 현대춤과 한국춤 서로 다른 그룹을 대상으로 안무, 절묘한 대비를 보여줬다.
인상주의 음악가 라벨의 「볼레로」에 맞춘 이 작품은 1997년 픽업그룹이 초연해, 2000년 국립발레단에서 공연했고, 2001년 『욕망의 방』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됐다. 과거의 작품들이 붉은색 톤으로 열정적 관능의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에는 백색 순수의 일렁이는 관능의 움직임으로 새로운 모습이었다. 전편이 이성애의 관능이라면 이번 작품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느껴지는 모성애에 기초한 관능이 느껴졌다.
바다 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 떼, 또는 물결에 따라 흔들리는 수초 떼처럼 8명의 무용수들은 부딪히고 흩어지면서 움직일 때마다 변화하는 만화경(萬華鏡)의 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원심력에 따라 몰리고, 구심력을 타고 흩어지고 동양적 정적미로 가득하다가 서구적 흥겨움으로 폭발했다. 라벨의 인상주의 음악을 몸으로 그대로 반복, 확대, 연주해낸 인상적 춤이었다. 과거의 것보다 더욱 절제, 응축돼 폭발하는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틀』은 안성수 춤의 ‘틀’이 얼마나 넓은 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무용수에 따라서, 음악에 따라서 표현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지, 또 달라져야 하는지를 명증하게 보여줬다.
안성수는 이 작품의 전반부를 장구에 맞춰 안무했다. 그가 화성이 아닌 장구와 같은 퍼큐션에 맞춰 춤을 만든 것은 드문 일이다. 한국 춤의 어깨 짓과 손 사위를 마치 태극의 모습처럼 흔들어 맞춘 움직임은 아주 독특했다. 특히 아름다운 등선을 활용한 춤 구성은 한국춤은 물론 국내 발레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시도였다.
국내에서 가장 표준적인 지체미를 갖고 있는 무용단은 아마 단전에 무게 중심을 두고 안정적인 한국적인 움직임에 기본을 둔 국립무용단일 것이다. 발레의 경우 서구적 미를 지향, 무게 중심이 하늘을 지향해 아름답기는 하지만 다소 비인간적 느낌이 나고, 현대춤은 보편을 뛰어넘는 개성과 표현이 목표다.
안성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지체미가 돋보이는 무용수들을 선택한 것 같다. 하나같이 팔등신인 늘씬한 지체미에 복근의 음영이 두드러질 정도로 강인한 중성적 모습이었다.
양옆에서 상체를 가로지르는 조명을 쏘고 그 조명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하면서 전혀 새로운 이미지들을 만들어 냈다. 신체의 부분이 보이기도 하고, 전체가 보이기도 하면서 만들어지는 모던한 분절, 또는 절단의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 허리를 중심으로 상체를 퉁겨 주고, 그 힘이 등, 어깨, 팔, 손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강인했다. 이 움직임들이 모여 대칭과 균형으로 대극장 무대를 정교하게 채웠다. 특히 김미애의 솔로춤은 단연 압권이었다.
후반부는 안성수 특유의 현악기와 관악기가 어우러진 투명한 화성에 맞춰 맺고 푸는 한국춤의 또 다른 맛을 보여줬다. 그러나 빠른 부분에서의 기의 흐름이 느린 부분에서처럼 고르게 퍼져 나가지 못해 아직 새로운 움직임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못한 단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천하를 놓고 결전을 벌인 항우와 유방의 초한전이 끝나고, 유방과 한신이 지휘할 수 있는 병사의 수를 두고 토론한 적이 있다. 한신이 한고조 유방은 만 명 정도의 군사밖에 지휘하지 못하지만, 자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한 것이 다다익선(多多益善)의 고사다. 안성수는 어떤 무용수건 간에 그 무용수의 특징에 맞춰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데 놀라운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에게 좀더 많은 다양한 무용수를 만나게 하면 한국 춤의 언어가 좀더 많이 넓어질 것 같다.

전미숙 안무의 『반·갑·습·니·까』(사진 최영모)

■전미숙(全美淑) 안무의 『반·갑·습·니·까』
『반·갑·습·니·까』(안무 전미숙, 3월 12~13일 LG아트센터)는 현대의 자폐적 상황을 발작적인 힘과 스피드를 중심으로 풀어냈다.
『반·갑·습·니·까』라는 제목은 자폐적인 느낌으로 읽힌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아주 힘겹게 발음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경계와 기대, 허무, 냉소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 느낌을 아주 빠르고 반복적인 경기(驚氣)와 발작으로, 때때로 자학적으로 그려냈다.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해 고통받는 모습이 역연하다. 단단하게 응어리진 추상이 무용수들의 뛰어난 기량에 대담하게 얹혀졌다. 힘과 속도, 균형의 테크닉이 놀랍다. 마지막에 공중에서 내려온 찢어진 천장과 에디트 피아프의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Je ne regrette rien)」는 묘한 울림을 준다. 흥겨우면서도 페이소스가 있는 대중음악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안무자의 수줍으면서도 강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
하나 아쉬운 점은 현대무용단탐의 모습이 겹쳐진다는 점이다. 안무자가 ‘탐’을 중심으로 활동을 해와 쉽게 벗어날 수 없겠지만, 분명 다른 무용수에게서 비슷한 느낌이 나면 둘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자폐성에서, 또 현실에 대한 저항의 형태에서 어떤 상투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강혜련 안무의 『3D』(사진 황진)

■강혜련 안무의 『3D』
강혜련댄스프로젝트의 『3D』(안무 강혜련, 3월 18~19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는 아름다운 무대구성과 영상이 뛰어났지만 음악과 동작에서 의미의 전달력이 모호했다.
이 작품에서 『3D』는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3차원(dimension)으로 이루어진 입체를 뜻하는 ‘3D’가 아니다. Dust, Desk, Disk의 ‘3D’다. 안무자의 의도에 따라 분석하면 Dust는 먼지요, 점이다. Desk는 면으로 현대사회의 데스크잡, 일상을 뜻하는 것 같다. Disk는 사이버, 또는 정보 등 시공을 초월한 현대 정보사회의 한 측면과 연결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안무자의 그 같은 의도가 작품에 제대로 구현돼 관객들에게 전해졌는지는 의문이다. 팸플릿을 보지 못한 대부분의 관객은 ‘3D’를 3차원으로 이해, 작품에 접근하기 힘겨워 했다.
작품의 시작은 깊이가 있는 무대와 조명으로 시작됐다. 핀 조명아래 떠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치 환상적 불안을 만들어내는 화가 키리코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조명과 모던한 무대가 만들어내는 불안 속에서 온 몸을 자유롭게 쓰는 무용수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은 훌륭했다. 그러나 같은 움직임과 불협화음의 음악이 30분 이상 계속 되는 상황은 관객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40여분 째부터는 불안을 야기하는 소음과 같은 음악에 신경이 쓰여 춤을 제대로 보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급기야 일부 관객은 자리에서 일어서 나가기도 했다. 50분쯤에 타악으로 음의 변화가 있었는데, 그제야 관객들은 한 숨을 쉬었다. 작가의 창작 의도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