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서울예술단의 『무천』/안무 배정혜 (사진 이재훈)

■서울예술단의 『무천』&『산화가』
예로부터 한국의 전통예술은 악가무가 한데 어우러지는 형태로 생성, 발전되어 왔다. 내년으로 창단 20주년을 맞는 서울예술단은 출범 당시 ‘총체예술’ 등을 표방했으나, 1998년 신선희(申仙姬) 예술감독 부임이후 창작 뮤지컬과 함께 무용단을 중심으로 가무악 양식의 무대예술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서울예술단이 2005년 시즌 첫 공연으로 무대에 올린 『무천』과 『산화가』(2005년 3월 11~13일, 문예진흥원예술극장 대극장, 평자 12일 저녁 공연 관람)는 가무악을 표방한 30분 길이의 작품들이다. 『무천(舞天)』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신화와 풍속도를 토대로 인간과 자연의 순환구조를 연결시킨 작품이며, 『산화가(散花歌)』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기록을 토대로 불교 의식무와 민속춤 등을 엮어 구성했다.
서울예술단의 이번 작업은 가무악을 표방, 제작된 그 동안의 작품 대부분이 60분이 넘는 장편이었던데 비해 중편으로 시도된 점과 개개의 소품 공연에서 탈피, 하나의 독립된 작품 안에 여러 가지 형태의 볼거리를 담아낸 해외무대 진출용 제작이란 점에서 이전 작업과는 차별성을 갖는다.
『무천』은 고구려 고분벽화 속의 인물과 모습을 표방한 첫 장면에서부터 시선을 잡아끈다. 정지된 상태에서 느린 움직임으로 묘사된 무용수들의 몸태는 선명한 색감의 의상과 정교하게 제작된 소품 등에 의해 현대적인 감각의 세련미를 곁들이면서 정감을 더했다.
해모수, 유화, 주몽 등의 캐릭터와 일신과 월신의 만남, 사냥꾼, 사슴 등 각각의 인물 설정에서 보여 지는 드라마적인 요소, 나레이터의 역할을 곁들인 창자(唱者), 생음악 연주 등이 어우러진 컨셉은 가무악을 살려내는 기본 토대로 손색이 없었다. 『무천』에서 배정혜의 안무는 개개 장면에서 춤이 요구하는 속성을 살려내는데 있어 대체로 무난한 안무를 보였고, 전인평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실크로드를 아우르는 색채가 느껴졌다.
『무천』이 개개의 캐릭터에 맞는 춤, 전편에 걸쳐 유사한 톤으로 빚어낸 의상(이미현)과 음악 등에 힘입어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조율되었던 반면에 『산화가』는 상대적으로 다소 산만했다. 일식(日食) 현상의 설정에서부터 왕의 살풀이춤, 학춤, 나비춤과 법고를 포함한 불교 의식무용 등은 춤 그 자체만으로 그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하나 그 농도가 진하지는 못했다. 움직임 구성에서 무대 장악력이 약해진 데다 전편과 비슷한 구도로 전개되는 연출, 범패를 바탕으로 작곡했다고는 하나 개개 장면의 차별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음악 등으로 초반의 긴장감이 사라지면서 작품은 내내 무게중심을 못 잡고 주변에서 겉돌았다. 불교의례악을 해외무대 공연용으로 제작했음을 내세웠으나 전체적으로 불교적인 색채가 일관되게 무대 위에서 도출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웠다.
그러나 기록에 나와 있는 「수부희」에서 차용한 듯한 마지막 장면은 독립해서 공연되어도 좋을 만큼 가무악의 어우러짐 면에서 빼어났다. 바가지를 물로 채워진 투명한 유리 용기 안에 놓고 좌우에 각각 8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두드리도록 설정하고, 무대 중앙에 무고에서 사용하는 북을 중심으로 남성 무용수들을 배치해 무대 전체를 기하학적인 구도로 활용하면서 제의적인 요소를 곁들인 이 장면은 그 전의 다소 어수선한 무대 분위기와는 다른 이미지를 연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나레이터 역할을 곁들인 창자(唱者)의 설정은 드라마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은 되었으나, 두 작품 모두에서 똑같은 패턴으로 짜여진 데다 연기적인 요소는 상대적으로 약해 아쉬움을 남겼다. 작품의 흐름에 따라 변신을 주문, 분위기 전환을 위한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살렸더라면 생동감을 불어넣으면서 시청각적인 효과를 배가 시켰을 것이다.
기악 연주자들을 호리존트 쪽에 배치하고 객석으로 돌출한 무대 좌우에 타악기 연주자 등을 위치하게 한 무대설정은 문예회관의 극장 구조상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나 관객들의 시선은 줄곧 무대 쪽으로 향한다는 점에서 정면에 배치한 연주자들의 상(像)은 언듯언듯 비치는 그 불규칙함이 감상의 흐름을 적지 않게 방해가 됐다.
『무천』은 고구려 벽화를 연계시킨 고품격의 가무악 작업으로 몇몇 장면에서 질적으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다면 국제무대에서 통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다. 해외 공연용 레퍼토리를 편성할 때 1부에 『무천』에서 담아내지 못한 다른 색깔의 소품을 배치하고 2부에 『무천』을 공연하거나 1부에 『무천』을, 2부에 지난해 초연한 『소용돌이』에서 놀이적인 요소가 강한 대목 위주의 프로그램을 편성한다면 서로 간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한 작품 안에 소품들이 보여지도록 하는 형태의 작업은 개개 소품 그 자체가 높은 예술성을 갖지 않고는 전체가 정제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그 완성도를 얻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번 공연에서 프롤로그와 작품 중간 중간에 잠시 비치는 영상의 사용은 그 내용이나 질적인 면에서 작품의 품격을 떨어뜨린 한 요인이 됐으며, 『무천』에서의 버나 돌리기 등도 기예적인 면이나 내용 등에서 어설픈 설정으로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을 단절시켜 버리는 역효과를 보인 것 등이 그런 예다.
서울예술단은 뮤지컬과 무용 두 부문에서 적지 않은 수의 직업 단원들을 확보하고 있으며 내년으로 창단 20주년을 맞는다. 춤의 경우 가무악이란 새로운 장르를 표방한 작업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직업 예술단체와 차별성을 갖는다. 그러나 노래와 춤과 연주가 한데 어우러지는, 그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가무악의 무대예술화 작업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다행히 서울예술단의 가무악 작업은 『청산별곡』, 『소용돌이』 등 근년 들어 제작된 작업에서 나날이 발전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작업 역시 그동안 지나치게 볼거리 위주에 치중하던 구성에서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제천의식에서 보여지는 집단 가무를 세련되게 녹아내려 했다는, 가무악의 새로운 접근방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예술단의 향후 운영방향 설정은 가무악을 표방한 새로운 독창적인 공연양식 창출로 그 무게 중심을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이 세계무대에서 한국 공연예술의 경쟁력을 배가시키는 한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