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무기

박인숙 안무의 『마리아 콤플렉스Ⅱ』(사진 최영모)

팽대하는 저출산(低出産)은 급상하는 노인문제와 맞물려 우리 미래사회의 큰 암운(暗雲)이 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생명은 하나, 「낙태는 죄악」이라는 기치를 들고 경종을 울리며 현대무용가 박인숙(朴仁淑) 한성대 교수와 지구댄스씨어터가 14년만에 「낙태문제」를 다시 들고나선 것이다. 낙태문제는 현재진행형이며 날로 심각하다. 2005년 2월 15~16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했다(필자 15일 관람).
박인숙의 작품 경향은 움직임의 미학이나 관념보다는 현실 발언에 중점을 두고 있다. 7년여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나의 춤? 우리의 컨템포러리댄스는?’에 골몰했다. 주요 발표작품을 챙겨보니 남과 다른 컬러는 (1)서정적 작품 『흐름』, 『미소짓는 눈물』, 『광상무 잿빛장미』, (2)종교적 작품 『하얀 그림자』, 『어두운 밤』을 발표했다. 특기할 것은 (3)사회 부조리 고발과 사회참여적 발언성이 강한 작품이 눈에 띈다. 1986년작 『비둘기만 날아간다』는 부도덕한 정치권력을 우회적으로 표현했고, 1989년작 『잿빛 비망록』에서는 TV에 비친 제5공화국 청문회의 모습(광주사태, 언론통폐합, 삼청교육대 등)을 소재로 하여 정치적 압박상을 알레고리(Allegoric, 諷諭)하였고, 『풍향계』 역시 삶의 맷돌에 짓눌려 억울하고 서러운 사람들과 위선으로 가득 찬 위정자들의 이율배반적인 관계를 그렸다. 또 분단의 아픔을 다룬 작품으로 1997년 『나누기Ⅰ』과 통일 후의 남북 동포간의 갈등을 사랑으로 풀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나누기Ⅱ』, 『반쪽이 만드는 하나』가 있고, 이산가족 상봉을 주제로 한 2002년작 『북으로 창을 내고 싶소』 등 모두 그만의 독특한 감각의 작품들이 특이하다.
무릇 대학이 기존 작품의 전달이나 테크닉 트레이닝의 장(場)이 아니라면, 이같은 시각의 박인숙만의 작품세계와 작업은 기록에 남길 소중한 흔적들이다. 1991년에 시작한 『마리아콤플렉스』를 2005년에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리아콤플렉스’는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 사회 병폐이고 더욱 강조되어야 할 이슈 중 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인숙은 본시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알고 있다. 카톨릭에서는 낙태를 금기시한다. 앙가주망(參與) 분야에 관심을 가진 그가 페미니즘의 음영에 앵글을 맞추고 생명의 존엄성에 주목하여 낙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착상일 수 있다. 그가 만든 신조어 「마리아 콤플렉스」는 잉태와 낙태가 주는 감정의 엇갈림, 그 과정의 희열과 고통은 이색(異色) 춤소재로서 호기심을 자극하여 1991년 초연때부터 크게 주목을 끌었다. 낙태에 대한 죄의식, 아니 그보다 성의 포만감에서 원치 않은 생명을 잉태하고, 또 죽이는 일을 해야 하는 현대 젊은이에게 커다란 심리적 압박(죄악)을 안겨주는 교훈적 의미 또한 매우 컸다.
낙태문제의 춤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 함께 머리에 떠오른다. 우리나라 연간 150~200만건의 낙태가 행해지고 있다 한다. 다시 말하면 20초에 한 명씩 생명이 죽어 간다. 성(姓)에 대해서는 적극적이면서 성(性)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방심하는 것일까. 생명경시 풍조, 경시된 임신과 책임감, 자기중심적 사고, 미혼모들의 불장난, 죄의식의 무감각, 남 선호 사상의 일조(一助) 등, 여성들의 사회활동도 무관치 않다고 본다.
우리는 태어나면 1살로 친다. 생명이기 때문이다. 인구 2억4천만명의 미국은 연간 160만명, 한국은 4천만인데 200만건이라니 비교하면 놀랍다. 낙태 세계 1위, 미혼 또는 청소년의 낙태, 설문 통계에 의하면 기혼 여성의 53%가 1회 이상 낙태 경험이 있고, 놀라운 것은 미혼 여성의 약 30%가 낙태를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낙태시술을 하지 않고는 산부인과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고 할 정도라니 웃고 지날 일이 아니다. 무뎌진 낙태의 윤리관 탓, 그보다 앞서 「태아는 인간(생명체)이다」에 대한 인식의 불명이 있다. 알고 하는 낙태, 모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낙태가 더 무섭다.
아주 오래전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다. 대학생 딸이 어머니에게 MT를 가겠다고 허락을 구하였다. 누구하고 가느냐고 물었다. 학과에서 간다 했다. 그럼 남학생도 같이 가겠네 하면서 너는 믿지만 남과 여, 성적 욕구는 돌발적이라서 못 믿는다 했다. 남녀간에는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자기도 모르게 생긴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답은 참으로 현명한 답이었다. 『마리아콤플렉스』란 작품을 접하고 나는 이 모녀간의 대화가 떠오른다.
성이란 인간의 본능이면서 원초적인 욕구다. 편의주의나 임기응변적 처사로 끝날 문제가 아닌 지엄(至嚴) 지고(至高)한 명제다. 결혼하면 아내가 되고 곧 아이가 생긴다는 자연섭리가 바로 따르는데 도대체 모(母)가 될 자격증은 왜 없을까? 현대인들의 가치관이나 인식과 무관하게 자유분방한 사고방식 속에 성행위의 ‘파란불과 빨간불’ 신호를 분간케 하는 메시지와 경종을 울리고 『마리아콤플렉스』가 태어난 것이다.
인간사는 백사에 Dead-line(한계점)과 Off-limit(경계점)가 있다. 귀여운 실수(작란), 저질러서 절대 안될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있는 법, 차 운전의 시속초과, 술판의 끝, 입신출세의 종말, 모두 다르다. 브레이크가 안걸린 주석(酒席), 인생가도(街道)에서 영원불멸의 출세란 없다. 수태·낙태는 순간의 즐거움과 관능적 행위(쾌락) 때문에 천형(天刑)의 죄범(罪犯)을 범하고 파멸과 연계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경고하고 싶은 것이 안무자와 또 나의 생각이다. 젊음과 청춘은 진정 아름다운 꽃이다. 지키기를 못하고 참 사랑을 모르면, 그 꽃은 죽고 만다. 잉태와 낙태의 지엄지고함을 알지 못하고 지키지 못한 청춘은 인생의 행복을 포기한 것과 같다.

■박인숙 안무의 『마리아 콤플렉스Ⅱ』
팜플렛에 제시한 장면 설정은 다음과 같다. #1 Prologue, #2 이상한 놀이, #3 어떤 착상, #4 따뜻한 방, #5 영원한 여성의 굴레, #6 무거운 그림자, #7 거룩한 선물. 이에 구애받지 않고 필자가 본 순서대로 리뷰할까 한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싸늘한 동리 고층아파트 영상이 서경에 뜬다. 미구에 집을 지을 개간땅도 널려 있다. 회색빛 콘크리트 벽으로 칸을 지르고 그 속에 철저한 개인과 물질의 오만들이 함께 살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일까. 음악은 없다. 간간이 조용하게 뭔가 타악소리가 긴장을 몰고 오기 시작한다. 하수 쪽에서 바퀴달린 테이블을 밀고 한 청년과 아가씨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술잔을 들고 즐기기 시작한다. 청춘 남녀는 마주앉아 술잔을 나누더니 두 사람은 차츰 취기가 돌기 시작한다. 더욱이 이 분위기를 증폭시키듯 중간 사막 뒤에는 관능적인 음락(Sensual Pleasure) Scene의 군무가 (남녀의 강렬한 사랑유희) 불타고 있다. 갑자기 히힛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지고 일단 암전된다. 이들은 모두 「이상한 놀이」로 보인다.
#어둠 속의 한구석에 스탠드섹스(Stand-Sex)의 점경이 잠시 보인다. 무대 깊은 곳에는 만취되어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모습도 보인다. 검은색 차림의 남녀 4쌍이 젊음을 구가하듯 짝지어 춤추기 시작한다. 자유보법과 거침없는 슬라이딩도 한다. (얼굴은 가리고). 그들은 차츰 손과 몸의 강한 떨림(Vibration)으로 빠져든다. 사랑의 중독이라고나 할까. 몰아(沒我)의 과장일까. 흥분은 점점 고조되면서 어디선가 요상한 동물소리가 들린다. 이때 정장을 한 여인이 나오고, 바구니에서 모두는 알(卵?)을 한 개씩 꺼내들고 돌아선다. 여인은 “으악”하며 임신의 입덧(?)을 보이며, 이어 하하… 뒤 웃음소리와 함께 암전된다.
#다음은 기발한 착상의 ‘조명의 장난 유희’가 관객의 시선을 이리저리 끈다. 콩알 전구 꾸러미가 밤하늘의 별처럼 부유하면서 아름다운 설렘을 스펙터클 속에 선사한다. 이 스파크는 공중을 떠돌다가 플로어를 좌우로 왕복하고 비틀거리며 춤춘다. 한 그림자가 이를 밟고 지나간다. 어떤 발상일까? 분명 정자와 난자의 랑데부(Rendez-vous)가 틀림이 없다. 짝을 찾아 무수한 정자와 난자는 방황하고 헤맨다. 그리하여 천재일우의 한쌍의 생명체가, 행복한 짝이, 생명으로 탄생하는 수정아(受精兒)가 탄생할 신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게다. 절묘한 삽입적 발상이었다.
#상하 검은색 긴 차림의 남자와 붉은색 여자와의 2인무 차례다. 이때 배경에는 井자형의 2개의 목형 오브제가 중천에 매달려 뭔가 이상한 만남을 예고한다. 이어 새로운 남자로 바뀐다. 서로 아낌없는 연민과 위로를 교환한다. 이때의 엄마의 복부에는 영아가 수평으로 매달려 있어 이상한 운명의 3인무(父, 母, 子)가 전개된다. 특히 자(아이)의 몸짓은 기형적이라서 강하게 시선을 댕겼다.
#이어서 태아학(Fetology)의 환상이 그려진다. 무대 우상단에 파란 원형의 조명이 보름달처럼 뜨고 그 속에는 미완의 태아의 미동(微動)이 부초(浮草)처럼 보인다. 10여명의 하얀 드레스의 군무(群舞)희들은 이를 지켜보면서 신비로운 멜로디와 함께 생명의 찬가(춤)를 몸으로 합창하였다. 치마를 활짝 폈다가 떨어뜨리는 모습의 반복과 기저귀 서답(빨래)하는 시늉 같은 구상적 동작의 삽입도 볼 수가 있다. 어설픈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무대 좌하(左下) 핑크빛 원형 조명 속에 완숙한 태아(胎兒)가 모습이 보이고, 모자(母子)의 초희(初喜) 모습, 아기를 높이 띄우며 기쁨의 춤이 출생을 현실로 다가오게 한다. 천상의 유희처럼 아름답다(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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