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

베이징현대무용단의 『후미등(Rear Light)』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 중간 어디쯤
무지(無知)와 앎(知識), 그 중간 어디쯤 이상적인 지점이 분명 있다. 그게 어디쯤일까? 예술작품에 대해 말하자면, 그 지식의 지점을 넘어서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예지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예지를 ‘나름의 고유한 용어’로 참신하게 여기는 것과 그 범주를 넘어 지나치게 준비함으로써 오히려 개념을 왜곡시켜 버리는 것, 이 사이를 이상적으로 조화시키는 지점은 과연 어디일까?
이러한 생각이 떠오른 것은 지난 2월 초 베이징현대무용단이 조이스극장 공연으로 처음으로 뉴욕 관객들에게 소개되었을 때였다. 무용수의 뛰어난 자질에 대하여는 아무런 문제도 제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관객의 경우 그날 밤에 유일하게 공연되었던 『후미등(Rear Light)』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분명하지 않다.
70분 길이의 이 작품에는 1970년대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인기절정을 누렸던 영국 사이키델릭 록밴드 핑크플로이드의 첫번째 더블앨범 음악이 반주로 사용되었다. 1979년 출시된 이 앨범은 1980년대 초에는 빼어나면서도 대담한 경기장용 볼거리로 이어진다. 이어 이 밴드와 함께 작업을 했던 감독 앨런 파커는 「벽(Wall)」이라는 제명으로 영화를 제작하여 1982년 개봉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리 한즈홍(Li Hanzhong)과 마 보(Ma Bo)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후미등』을 안무하게 만든 것이다.
이상과 같은 경위로 안무한 작품을 두고 그 배경에 대해 논쟁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비록 앨범이나 무대 공연 그리고 영화에 대하여 그리 잘 알지 못했던 관객일지라도 조이스극장에 입장한 관객 중 많은 사람들이 무용단과 작품에 대하여 애정 어린 신호를 보냈으니 말이다. 관객들은 많은 부분 추상적이고 도전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 소외 그리고 억압당하는 남녀 사이의 사랑, 모든 것이 빈틈없고 산뜻한 춤과 무대를 있는 그대로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리와 마는 앨범에 수록된 음악이 아닌 오리지널 음악에 울음소리, 차량소음, 기차 기적소리, 먼 곳 혹은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등 음향 효과를 씌운 영상 사운드트랙을 사용하였다. 많은, 어쩌면 지나치게 많다고도 할 수 있을 중국인 관객들이 보기에는 영어로 된 상세한 내용을 배경으로 빼내고 음향으로 분위기를 돋군 것이 오히려 특별한 의미를 없애버리는 것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특히 부분적으로 도입한 모든 사운드트랙이 생생한 이미지, 종종 무대에서의 춤추기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연상시키면서 그 날 밤 다시 영화를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파커의 영화, 대규모 록비디오는 MTV가 설립되던 시기에 제작되었다. 통렬하면서도 미묘한 의미를 담고 있는 노래에는 거의 모두가 뿌리깊은 영국적인 감성이 강력한 이미지가 함께 실려 있다.
2차세계대전에서의 폐허와 죽음의 장면, 가족 드라마, 가혹한 교사들, 애니메이션으로 조합해놓은 꽃 그리고 대장장이들의 행렬, 군림하는 어머니, 너무도 쇠진하여 반응을 보일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 록스타와 억지로 관계를 맺게 되는 초라한 부인의 모습도 담겨있다. 그러다가 현실에서인지 환상에서인지 국민전선 파시스트가 되어 장광설을 펼치고 마침내 벽이 무너지고 평화 혹은 사랑을 담은 평화를 되찾는다.
이토록 영상은 안무에 영감을 부여하였다. 하지만 그 영상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는 거의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했던가? 그리고 안무자가 영상의 세세한 부분들을 초월하거나 변형시키는 데 만족스럽지 않은 것을 두고 실망하는 것이 옳은 태도일까? 원래의 앨범이 서정적이었을지는 몰라도 음향 효과를 덧씌우지 않고 그대로 앨범을 사용했어야 했다. 춤을 대하는 관객들에게 그저 좌석에 앉아서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이 나름의 고유한 용어 그대로 진행되도록 방관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접근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신중치 못한 것, 체험을 보다 충만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정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 애호가들로 원래의 특징적인 면을 그대로 화면에 담아내지 못한 영화를 심하게 비난하면서 동일한 딜레마에 처한다. 영화의 경우에도 종국에는 소설을 읽었던 독자들은 원작이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 다른 독특한 내용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않을 경우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된다.

■기존의 인식에 갇히면 새 작품에 방해
이렇듯 작품이란 거의 대부분 과거와 연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면서 원작자인 보마르쉐가 상세하고도 미묘하게 묘사한 부분들을 일일이 다 포착하여 담아내지 못했다며 모차르트를 비난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여러 안무가들에게 저마다 만들어놓은 발레작품 『신데렐라』를 두고 우리와 함께 성장해온 동화의 내용을 그대로 살리지 못했다며 흠을 잡을 수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베르디가 「오텔로」와 「팔스타프」에서 세익스피어를 왜곡시켰다며 꼬투리를 잡을 수가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해리 포터」를 두고 책의 상세한 내용들을 제멋대로 축약했다면서 비난을 할 것인가?
예술양식은 각기 다른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오페라 대본은 연극 대본에 비하여 보다 간결해야만 한다. 연극과 영상에서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내면적인 독백을 표현하는 일은 어렵다. 춤은 대부분 초현실적인 클로즈업으로 가득한 영화에 비하여 세부적인 특성을 더 많이 담아낼 수 없다.
베이징현대무용단은 주기적으로 현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느라고 통일성이 떨어지는 무대로 만들었고 사운드트랙의 지속적인 사용으로 내용과 충돌하고 그 때문에 무리하게 필연성을 제시하면서 안무가가 의도했던 본래의 목적을 분산시켜 버리는 느낌을 주었다.
예술작품을 그것이 지닌 고유한 언어로 감상하는 데는 어쩔 수 없이 논쟁이 있게 마련이다. 영화의 경우 놀라운 대단원뿐만 아니라 미묘한 구성적 세밀함이 드러나 버리거나 참신한 마음으로 내용을 대할 수 있는 느낌이 손상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아예 영화평을 읽지 않는 사람도 있다. 영화 혹은 오페라나 춤 작품에 대하여 깊게 파들어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다렸다가 작품을 보고 또 다시 보면서 연구를 하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지식을 축적하고 작품 감상에 대한 경험이 깊다보면 작품과의 첫 만남에서도 감흥을 받을 수가 있다. 영화가 책 내용을 그대로 살려내지 못했다거나 오페라의 경우 각본의 내용을 그대로 담지 못했다느니, 또 춤작품이 원래의 앨범, 쇼 혹은 영상의 내용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스스로 인식체계의 범주를 잘못 설정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안무적인 성과 혹은 메시지에 대하여 보다 엄격한 규범을 지닌 사람들은 『후미등』을 보면서 그런 성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 가지 인식 체계로 다른 것을 무효화하지 못하고, 또 그럴 수도 없다.
때로 초기 작품들에 의하여 영감을 받았던 예술인들은 새로운 것을 위하여 당시의 영감을 저버릴 수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영감을 더욱 더 풍요하게 만들거나 무엇인가 새로운 것으로 변형시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비법이라는 것은 어쩌면 가능한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보류하고 참신한 작업으로 결국에는 그러한 지식을 다시 가져와 우리가 보아온 것, 들어온 것 그리고 느껴온 것을 담아내는 것이라 할 것이다.
<뉴욕타임즈> 2005. 2. 20

베이징현대무용단의 『후미등(Rear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