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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샤 알론소 Photo·Jorge Rey/Getty Images for The New York Times

지난해 11월 하바나에서 열린 국제발레페스티발 폐막 갈라무대의 막이 내려지자 쿠바 발레계 수장으로 군림해온 연로한 알리샤 알론소가 중앙무대에서 군중들의 지나친 환호에 화답이라도 하려는 듯 관객을 향해 불편한 팔을 내밀면서 불안한 자세로 서있었다. 고요하고 정지된 자태로 만면에 우아한 미소를 띄고 있는 그녀는 여성이라기보다는 기념비적인 거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1960년부터 2년마다 열리는 페스티발을 주도해오면서 독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그녀의 자신의 힘으로 춤을 경시하고 무시했던 국가였기에 더욱 더 세계 최고의 예술인으로 꼽힐 수 있으리라.
나이 83세인 알론소는 거의 60여년 동안 쿠바국립발레단을 이끌어왔다. 지난 날 쿠바에서는 발레를 인정하지 않았고 또 타락한 예술로 치부되었었다. 요즈음 세계에서 가장 남성 위주의 국가로 인정되는 나라 중 한 곳으로 꼽혀온 쿠바에서는 남성이 타이즈를 입는 것에 대한 항의가 빗발친다. 그러한 곳에서 알론소는 당대 가장 위대한 무용수들을 양성해왔으며 발레단을 창단하여 정확한 고전주의와 풍부한 예술성을 지닌 세계 수준의 발레단으로 발전시키면서 그 명성을 널리 퍼지게 하였다.
그 모든 것은 어려운 상황, 그리고 세계 유수의 발레단과 유리된 상황 속에서 그녀가 거둔 업적이다. 게다가 사람에 따라 다른 대답을 하지만 많이 혹은 완전하게 시력을 상실한 처지에서 거둔 성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무용수들처럼 알론소도 시련을 겪으면서 나이가 들어갔다. 60대의 나이에도 무대에 섰다는 그녀이지만 요즈음은 누가 보더라도 허약한 기색이 완연하다. 하지만 강한 의지가 권위를 더한다. 대중 앞에 설 때에는 짙은 파운데이션으로 피부 화장을 하고 연필로 활모양 눈썹을 그리는가하면 입술은 붉은색 루즈로 도톰하게 보이게 한다. 그리고는 이마 주변에는 화려한 색상의 스카프로 단단하게 둘러매어 머리털을 감춘다.

하바나에서 열린 국제발레축제에서 『달리를 생각한다』를 공연하고 있는 쿠바 무용수들 Photo·Jorge Rey/Getty Images for The New York Times

외모를 그런 식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왕국은 이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조짐이 보인다. 레퍼토리가 『지젤』,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그리고 『코펠리아』 등 아름다운 작품들로 구성하고 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이 반복적으로 무대에 올리는 정도로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그녀의 단원 중 한 무용수는 자기 만족을 위한 스텝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한 때 발레단에서 일했던 쿠바 안무가들도 대부분 떠나거나 은퇴를 했고 지리 킬리안과 윌리암 포사이드와 같은 국제적으로 혁신적인 안무가들의 작품을 공연할 처지도 못되기 때문이란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농담조로 가장 형편없는 것이 알론소의 안무라고 말을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 몇 년 동안 그녀의 단원 중에서 20여 명이나 넘는 무용수들이 떠나가면서 벼랑에 처한 상황이다. 과거 쿠바국립발레단 무용수로 활동했던 무용수들은 이제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보스턴발레단, 샌프란시스코발레단, 워싱턴발레단, 신시내티발레단 그리고 로열발레단으로 옮겨가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작 그녀는 단원들의 대량 이탈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스스로 과거의 영광 속에 안주하면서 여전히 발레단에 대한 통제를 계속하면서 자신의 사후에 대비하는 계획도 전혀 세워놓지 않고 있다. 위대한 프리마돈나가 모두 그러하듯 (독재자도 예외는 아니다) 후계자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는 입을 다물 것으로 보이는 그녀는 매혹적인 억양의 영어로 “나는 2백살까지는 살지 못할 것이다”며 “조금은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알론소의 이야기를 신화라 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 1937년 하바나에서 뉴욕으로 온 그녀는 브로드웨이에서 무용수로 어렵게 살다가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후 4년이 지난 후 19세의 나이에 시력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여러 차례 망막 분리 수술을 했지만 의사로부터 몇 개월 동안 활동을 접고 침상에 머물러 있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침상에서도 남편 페르난도의 도움을 받으면서 손가락으로 스텝을 세면서 처음으로 『지젤』을 배운다. 그리고 의사로부터 눈이 약해서 그 상태로는 심한 회전 동작을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춤을 계속 춘다.
그러던 중 1943년 알리샤 마르코바가 몸이 아파서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자 대신 지젤 역을 맡아 무대에 선다. (그 이후 지젤은 그녀의 대표적인 배역이 되었고 현재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예술감독인 케빈 맥켄지는 1970년 초 그녀가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천상의 모습과 흔들리지 않는 테크닉을 보여주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었다”는 평가를 했다고 한다.)
알론소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와 뉴욕시티발레단 모두를 탄생시키는 데 있어 강한 동기를 부여했다. 그리고 아그네스 드 밀, 안소니 튜더 그리고 제롬 로빈스를 비롯한 거장들과 함께 일을 했다. 1947년 조지 발란신이 그녀를 위하여 안무했고 후에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도 발레무용수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 정도로 까다로운 『주제와 변주곡』에서도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그리고 그녀는 페르난도와 함께 쿠바로 작품을 가져가서 위대한 인물의 전기를 다루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1948년 두 사람이 쿠바에서 창단한 알리샤알론소발레단은 혁명이 끝난 후에 쿠바국립발레단으로 명칭을 바꾼다.
알론소를 도와 국립발레단을 창단하고 1959년부터 1975년까지 운영을 맡았으며 이제 나이 90세를 맞은 페르난도 알론소는 “당시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는 것을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다”고 과거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의사나 법률가 등이 직업이라고 인정을 받을 때였다”며 그런 상황 속에서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 어머니의 부자 친구들을 찾아다녔고 체르베자 폴라와 바카르디 럼과 같은 후원자들에게 공연 입장권을 판매하는 실정이었음을 전하는 그는 “커다란 맥주 두 병정도 비용으로 무대공연을 보게 했다”며 “공연을 할 수 있다는데 무엇을 개의할 것인가”라며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하게 되면서 정부로부터 주의사항과 함께 20만달러를 받는다.
국립발레단의 그러한 경과를 연구해온 학자 미구엘 카브레라는 “혁명을 시작하면서 당국은 쿠바 사람들에게 가능한 좋은 것을 제공하고자 했고, 그것도 물질적인 만족이 아니라 영적인 행복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카스트로는 발레가 그러한 자신들의 취지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론소로 하여금 사탕수수 농장, 군부대 그리고 공장 등으로 단원들을 데리고 가서 공연을 하도록 한다.

엄격한 선별과정을 통해 살아남은 자만이 쿠바국립발레단에 입단할 수 있다 Photo·Jorge Rey/Getty Images for The New York Times

현재 쿠바에서는 발레무용수가 대단히 훌륭한 직업으로 꼽힌다. 수입면에서 무용수들이 의사보다 더 많은 수입을 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형상으로도 멋진 직업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보스턴 사람들이 레드삭스에게 보내는 것과 못지 않게 쿠바에서는 미니스커트를 입는 젊은이들이 무용수들에게 애정을 보낸다.
다른 많은 동료들처럼 친척의 호의로 발레무용수라는 직업을 택했다는 알론소발레단 단원 알레한드로 세네도 과거를 회상하면서 “처음으로 TV에서 발레를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며 “그때 내 나이 4~5세였을 때였는데 TV를 보면서 ‘오직 발레만을 할 것이다’고 다짐했다”고 말한다. 삼촌과 할아버지는 어린 그에게 깔끔한 옷을 입혀주겠다며 구슬려 발레수업에 데리고 갔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알레한드로는 깔끔한 옷은커녕 몸이 너무 힘들 정도로 혹사당한다. 하지만 일단 어른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이상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여자아이들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수밖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그는 “하지만 한 달이 지나자 벌써 여자아이들이 좋아졌다”고 했다.
쿠바에서는 모든 곳에서 9살에서 18살까지 학생들에게 제대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따라 풀타임으로 훈련을 제공할 수 있는 훌륭한 학교 연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신체적, 음악적 그리고 심리적인 종합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지난해 611명의 학생들이 하바나에 있는 알레호카르펜티에르학교가 실시하는 오디션에 응모했는데, 정원은 60명이었다. 호세 마누엘 카레노와 카를로스 아코스타 등도 이 학교에서 처음으로 발레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그처럼 필요, 욕망 그리고 권태가 혼재되어 있는 발레는 이제 스러져가는 세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매스미디어에 대한 당국의 통제 그리고 미국의 봉쇄정책 때문에 쿠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