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정보

폴 테일러 Photo·Tony Powell

무용수들은 바닥을 가로지르며 서로 몸을 부딪치는가하면 대단히 자유분방하게 다른 무용수의 팔을 향해 길게 도약하는 동작을 펼친다. 네명의 무용수들은 평화롭고 방목하고 있는, 조금은 외로운 소떼처럼 한데 모여든다. 이 모든 동작들은 바하의 음악에 맞추고 진행한다. 1975년 6월 브로드웨이 라이세움극장에서 폴테일러무용단이 공연할 때만 해도 객석에서 이 새로운 작품 『산책길(Esplanade)』이 언젠가는 현대춤 양식을 대표하는 고전작품이 될 것이라고 짐작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비평가들마저도 너무도 자유분방한 분위기 때문에 당혹해했으니 말이다.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을 본 안나 키셀고프는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산책길』은 일종의 춤작품이다. 그것도 과거에는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그런 작품이다”고 했다.
그러나 『산책길』은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인 작품이 아니다. 오늘날 현대춤, 특히 대부분은 마크 모리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 무용수들은 별다른 어려움없이 기어다니고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동작을 펼친다. 오늘날에 와서 『산책길』이 좀더 세련되고 서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테일러가 무대 구석 어느 부분에 모래를 깔았던 발상 덕분일 수 있다. 테일러를 좋아하는 관객들마저 무대를 보면서 테일러가 무용수들도 하여금 기어가도록 만든 상식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50년 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보는 지금도 이 위대한 대가가 안무한 작품, 그의 작품에서는 그의 작품임을 알려주는 요소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폴 테일러 안무의 『산책길』 Photo·Nan Melville for The New York Times

3월 초 뉴욕 시티센터에서 진행된 야심적인 프로그램 「50년의 작업: 황금시즌」에서 무대에 오른 19편의 작품 중 하나인 『산책길』에서도 자연스런 동작을 사랑하는 테일러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 패턴과 비대칭적인 구성으로 놀이하는 듯한 즐거움은 물론 경쾌함과 모든 음악에 대한 놀라운 감응도 포착할 수 있다. 작품 전반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테일러의 바탕에 깔려있는 인도주의가 빛을 발한다.
바하의 바이올린협주곡을 4부분으로 나누어 반주로 진행하는 춤에 등장하는 8명의 무용수들은 간단한 연습복을 입고 있어 젊은이들이 여름날 테니스를 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 거의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너울거리듯 동작이 이어진다.
무용수들은 선과 원의 형태를 계속 재구성하면서 들락날락하다가 한 순간 한 명 혹은 두 명을 무대에 남기고 다른 무용수들은 잠시 무대를 떠난다. 무용수들은 걷고 달리고 깡충거리는가 하면 미끄러지고 구르고 또 넘어지기도 한다. 한 무용수는 다른 무용수들에게 말을 건네거나 방향을 지시하는 듯 기묘한 팔동작을 한다.
남녀 무용수들이 다른 한 무용수를 위하여 춤을 추는 부분에서는 잠시 희롱과 구애 그리고 사랑의 분위기가 엿보인다. 짧은 2인무에서는 여성 무용수 하나가 잠을 자면서 걷는 동작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마치 상대역의 주문에 걸린 듯하다.
테일러는 분명한 시각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숨긴다. 1962년 안무한 『후광(Aureole)』에서 한 남성무용수가 부드럽게 한 여성에게 만들어주는 틀은 안무자 테일러가 여성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러한 사랑을 이성애적인 상황과 연결시키는 것을 좋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81년 「더 타임즈」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그는 “모두가 벽장 속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며 명쾌한 어조로 “비밀은 그 자체로 즐겁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산책길』에서 무용수들은 종종 특정한 성을 배제한 인간일 뿐이다. 허둥거리며 자유롭게 노니는 분주한 상황 속에서 구태여 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종결부분에 이르러 거의 어깨가 으쓱거릴 정도로 팔을 내미는 무용수가 여성인가를 파악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테일러 안무의 『후광』에서 패트릭 코빈과 리사 비올라 Photo·Lois Greenfield

『산책길』에서 테일러는 1950대 뉴욕 아방가르드 예술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게 도와주었던 단조로운 동작 어휘를 다시 도입하고 있다. 안무내용에서도 마사 그레이엄과 잠시 함께 일을 했던 약간의 흔적, 즉 상반되는 감각이나 그레이엄 특유의 허둥거리며 달리는 동작이 엿보인다.
그레이엄과 함께 일을 했던 동료 에릭 호킨스와 머스 커닝햄처럼 테일러도 재빠르게 그레이엄의 심리적인 드라마를 중단해 버렸다. 분명 양식을 지향하는 안무가라 할지라도 그의 초기 작품 『세 개의 비문(3 Epitaphs)』에서 보여주는 당당한 걸음걸이를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이 작품은 로버트 라우쉔버그가 무대를 위해 제작한 거울과 함께 검고 점으로 덮여 있는 형태가 없는 커다란 무엇을 위하여 꾸물거리며 우스꽝스럽게 추는 춤이다.
테일러가 초기에 안무한 그 작품에서는 한때 딕시밴드 음악을 반주로 사용하여 뉴올리언즈 장례식에 보낸 조문객이 비틀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티센터에서 있는 시즌공연에 소개될 다른 춤작품에서는 바로크 작곡가 헨델과 윌리엄의 음악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들 음악은 『후광』이라는 작품 속에 원형적인 서정성을 부여해주고, 2차세계대전을 노래하는 앤드류시스터즈의 노래는 『아든 코트(Arden Court)』에서 시원스런 소탕, 『컴퍼니 B(Company B)』에서는 당대의 인기를 누리는 춤동작이 더욱 더 향기를 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테일러는 한때 스스로 오랫동안 협력작업을 해왔다고 인정하는 도널드 요크에게 도배지 음악을 작곡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별스럽게도 『클레쯔머블루그라스(Klezmerbluegrass)』에서 사용했던 그 보잘 것 없는 대중음악을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에 도입한다는 것은 테일러가 아니면 과연 누가 해낼 수 있는 일일까? 현대춤 안무가로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해주었을 수도 있을 춤에 대한 그의 본능적이면서도 단도직입적인 느낌은 『산책길』에서 그리고 바하의 음악을 물질적으로 화려하게 만드는 그의 소박한 방식에서 유감없이 그대로 드러난다.
『산책길』에서는 테일러의 시티센터 발레단의 다른 레퍼토리 작품들, 즉 『세 개의 비문』, 만화 같은 『봄의 제전(연습)』, 『빅 버사(Big Bertha)』 그리고 우리들 모두에게 악마가 숨어있음을 알리는 멋진 『갈라진 왕국(Cloven Kingdom)』에서 볼 수 있는 기묘한 유머는 부족하다. 그렇다, 『산책길』에서 침울하면서도 유난히 겁이 많은 소치기역에 베티 드 종을 선정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유머를 담고 있다 할 것이다. 과거 테일러의 무용수로 일했던 드 종은 시티센터가 무대에 올린 또 다른 작품 『빅 버사』 사육제 장면에서 살인적인 자동인형을 맡았었다.

테일러 안무의 『마지막 모습』 Photo·Jack Mitchell

『산책길』에서도 무용수들을 등급에 따라서 이동시키는 구성을 하고 있어 시티센터의 다른 모든 레퍼토리와 마찬가지로 디자인에 대한 테일러의 각별한 애정을 쉽게 파악할 수가 있다. 『클레쯔머블루그라스』에 등장하는 무용수들은 미술을 배운 후 21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춤에 입문한 테일러의 젊은 시절 몸에 익힌 조형 감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는 한때 잠깐동안 라우쉔버그와 재스퍼 존스와 함께 쇼 윈도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도입한 많은 이미지, 즉 약간의 은밀한 비대칭적인 이미지들에서 티파니 쇼윈도를 위해서 제네 무어가 하나를 거꾸로 배치하고 나머지 스푼들은 일렬로 늘어놓은 식으로 배열한 디자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감지할 수가 있다.
그 외에도 『산책길』에는 테일러의 여러 작품을 채우고 있으며 그의 작품이 인기를 누리는 또 다른 이유랄 수도 있는 공동체에 대한 미묘하게 씁쓸 달콤한 감각이 배어있다. 어쨌든 우리들은 『산책길』에 등장하는 8개의 비인격적인 존재들이 대변동과 갱생이라는 내용 때문에 9·11사태에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알려지고, 또 시티센터 레퍼토리에 포함되어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에서 가혹한 어려움에 처하는 모든 남성과 여성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시티센터에서 공연하게 될 테일러의 『마지막 모습(Last Look)』이 너무도 처절하여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기는 것은 공동체의 부재 때문이다.
테일러의 다른 많은 작품이 그렇듯이, 앞서 언급한 춤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구성이 없는 춤이라고 할 수 있다. 벽장 속의 인도주의자, 테일러는 1981년에 나눈 대화에서 “춤에서 의미를 벗어날 수는 없다”고 말했었다.(*)
<뉴욕타임즈> 2005.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