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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로빈스 안무의 『골드버그변주곡』을 공연하고 있는 뉴욕시티발레단 Photo·Paul Kolnik/New York City Ballet

뉴욕시티발레단 공연을 볼 때 좀 떨어진 4번째 열에 좌석을 잡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한가지는 발란신의 작품을 제대로, 또 정말로 훌륭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4열 좌석이라는 것이다. 다른 어느 좌석에서보다 무대와 무용수가 눈에 쉽게 들어오고 발레 전체 구조를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비록 출연자들의 얼굴은 쉽게 식별할 수 없지만 4열에 자리잡고 앉은 단골고객들은 발란신의 작품에 출연하는 스타급 무용수보다는 작품(춤을 파악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한 상황을 “데이트를 한다”고 말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금전적인 면에서 가격도 적절하다. 뉴욕주립극장 입장권은 1열의 경우 83달러, 2열은 63달러인데 4열은 30달러에 불과하다. (연간 20달러를 내는) ‘4열협회’회원이면 그럴듯한 영화 한 편을 보면서 팝콘을 군것질하는 데 드는 15달러 정도로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다. 간혹은 날짜를 잡는 데 있어 ‘피나는’ 경쟁을 해야 하지만 또 다른 장점이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동반하는 일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게다가 무료로 받는 선물은 어떤가? 올해 4열협회 회원들은 멋진 체인을 받을 수가 있다. 비록 꽃장식 줄 정도는 휴대폰이나 속옷 그리고 선댄스영화제에서 제공하는 6백달러 상당의 외투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꺼이 뉴욕시티발레단에서 받은 티셔츠, 달력 그리고 커피잔을 받는다.
게다가 4열에 앉으면 훌륭한 해설자 미리엄 펠만 여사도 만날 수 있다. 여사는 막이 오르기 전 그리고 대체로 작품이 1/2 정도 진행되고 난 다음 주어지는 휴식시간에 20분 정도 작품해설을 해준다. 4열 좌석을 중심으로 해설을 해주는 것은 새로 공연에 오는 관객들은 처음에는 종종 싼 가격대의 좌석을 구입하는 경향이 있고, 대체로 낮은 단계에서부터 해설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해설자들은 교사, 의사, 변호사 외에도 과거에 무용수로 활동했던 사람들로 자원봉사자들이다.
자그마한 체구, 검은머리 그리고 오드리 햅번을 닮은 눈을 가진 70대의 펠만 여사는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있고 좀 과장을 한다면 춤에 대하여는 백과사전처럼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해설해주는 내용은 가장 까다로운 발레광에서 초심 발레애호가들까지 다양하고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33년 동안 뉴욕공립학교 교사와 사서일을 했었던 펠만 여사는 정년퇴직을 한 후 20여년 동안 뉴욕시티발레단에서 관객을 교육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뉴욕시티발레단 주역무용수 피터 보울이 가르치는 아메리칸발레스쿨에서도 자원봉사 일을 하고 있다. 보울은 “여사의 발레와 무용수들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며 “그러한 열정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해준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해설자라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펠만 여사. 그녀는 “언제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도 편안하다”며 “그래도 모르는 것에 대하여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다. 그 때문에 준비를 한다.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하고 내가 보관하고 있는 자료와 책 등을 가지고 연구를 해본다. 그리고 기록도 해놓는다. 때로 극장 안 어두운 구석에 앉아서 기록을 하고 캐러멜을 먹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여사가 해설을 위해 준비를 어떻게 하는가 궁금해서 극장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여사의 아파트에 들렀다. 식당 탁자 위에는 제롬 로빈스에 대해 최근 데보라 조윗이 저술한 책이 놓여 있었다. 여사는 “『골드버그 변주곡』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 위하여 이 책을 마련했다”며 “사실 나도 작품을 알고 싶어 조바심이 난다”고 말한다.
잠시 춤자료실로 가보고 싶다고 하자 여사는 “저쪽에 서가가 있다”며 “이 책도 발란신, 저 책도 발란신 그리고 저기도 발란신에 대한 책이 있다. 책 뒤편에 또 책이 있다”고 말하면서 아래쪽에 있는 서가로 가더니 “대부분은 뉴욕시티발레단에 관한 것이지만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 대한 내용도 꽤 많이 있다. 아, 여기에는 알빈 애일리에 대한 책도 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분이다”고 전해 준다.
손가락으로 이런 저런 책을 넘기면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덴마크왕립발레단에서 피터 마틴즈와 처음으로 발란신을 위해 『아폴로』를 공연할 때 그에게 “대단히 좋다. 이제 그 춤을 어떻게 추는지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던 이야기, 루돌프 누레예프가 단장을 찾아가서 “기분이 우울해서 저녁공연을 하지 못하겠으며 무대 밖에 앉아 있겠다”고 말하자 단장은 “알았다, 정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입장료는 환불하겠다”고 말했고, 그 말에 누레예프는 하는 수없이 무대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읽을 수가 있었다.
방을 나가더니 커다란 붉은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자료철을 가지고 오면서 여사는 “붉은색 자료철에는 로빈스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했고, 발란신에 대한 자료를 묻자 “검정색 철에 들어 있다”고 대답하면서 “린넨으로 만든 서가에 자료집이 두 개가 있는데, 너무 무거워 가지고 내려올 수 없다. 4백 작품이나 안무했으니 얼마나 양이 많겠는가”고 말한다.
그 외에도 「춤 총론」이라는 자료집을 보여주었는데, 내용은 과거에 했던 말, 프로그램, 기사 그리고 여러 세대 전에 나온 공연평 등을 손으로 직접 기록해 놓고 있었다. 여사는 “가능한 많은 내용을 오려내 보관한다”며 “각기 다른 카드에 각 발레의 배역을 손으로 기록해놓는다. 어떤 때는 양이 너무 많아서 조금 난처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그녀가 『골드버그 변주곡』에 대한 해설을 맡고 있는 저녁시간,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관객들은 이곳 저곳에 모여 서서 주의를 기울이면서 듣고 있었다. 여사는 준비한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5세 혹은 6세 정도 되어 보이는 금발머리 여자어린이를 보고는 노트를 옆쪽에다 놓더니 그 어린 소녀에게 “무용교습을 받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소녀는 처음에는 수줍은 미소를 띄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여사를 따라서 위로 올라갔다. 여사는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소녀에게 ‘텅듀(tendu)’라는 단어를 아는가 물었고, 그 질문을 받은 소녀는 매력적인 밝은 표정의 어머니에게 스텝을 해 보였다.
안무가이자 춤평론가 레이 위첼은 “펠만은 대단히 훌륭한 해설자다”며 “여사처럼 많은 발레 공연을 보게 되면 자칫 관객들의 마음을 잊어버리기가 쉽다. 하지만 여사는 초보단계에서부터 관객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도 있다. 뉴욕의 그 어떤 공연예술 애호가들 중에서도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훌륭한 교육자라고 할 수 있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스스로 자신의 일이 초보 관객들과 ‘발란신 문화’를 함께 나누면서 그 문화를 영속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여사. 그녀는 “비록 과거에는 발란신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을 수도 있으나 이제는 그들에게 반드시 알아야 존재로 각인시켜 주는 일이다”며 말을 맺는다.(*)
<뉴욕타임즈> 2005.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