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홈리스 출신 빅이슈판매원들과 직원들이 함께 모여 합창단을 결성하고 매주 합창연습을 하고 있다. 오디션을 겸한 연습 첫날에는 참여자 모두 애창곡을 한 곡조씩 뽑으며 신나는 시간을 가졌고, 둘째 날에는 강사의 지도로 율동 연습을 하며 서로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 본격 합창연습에 들어가기 전의 몸풀기였다. 평소 서먹했던 판매원들과 직원들이 친해지고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이 일이 가능한 것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 지원사업」 덕분이다. 재단에서는 350명의 예술인들을 선발해 활동비를 지원하고 전국의 단체나 기관들에 보내 예술적 역량을 발휘해 현장의 일을 도와주도록 하는 사업을 펴고 있다. 여기에는 문화예술 분야의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기반으로 새로운 예술직무영역을 구축하고 확장한다는 취지도 곁들여 있다.
참여할 수 있는 예술인은 ‘예술인복지법’ 상의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대중예술(방송, 대중음악 등), 국악, 사진, 건축, 만화 등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창작/실연/기술지원 등) 중에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한 예술인으로 고용보험 미가입자다. 사업기간은 2014년 4~11월. 이들은 2014년 4~5월의 2개월 동안은 수습 및 기획기간으로 월 16시간을 일하며 20만원을 받았으며, 이어 파견기간인 6~11월(6개월)에는 월 30시간 일하며 월 150만원을 받게된다.
재단은 예술인들을 선발한 데 이어 이들이 파견 나가서 일할 기관 단체 기업 등도 모집해 예술인-기관(단체)를 매칭하는 절차를 거쳤다.
「빅이슈」는 이 재단에 ‘빅이슈 합창단 사업’을 신청해 선정됐고, 이에 맞는 예술인들이 매칭됐다. 이에 따라 30대 전후의 예술인 5명이 파견돼 합창연습과 판매원 외모 코디네이션을 도와주고 있다.
경기도 파주 교하도서관의 경우, 예술인 8명을 파견 받아 예술인의 예술적 역량을 도서관 이용과 연계한 7개의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시인과 동화작가가 진행하는 「걱정쟁이를 응원하는 북멘토」 프로젝트, 음악가가 진행하는 「음악동화로 만드는 뮤지컬 - 도데의 풍차편지」 프로젝트, 무용가가 사서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유연한 도서관」 프로젝트 등이다. 전북 익산 마동도서관에선 소설가를 초청해 익산시민을 대상으로 「한뼘 자전소설 쓰기」를 무료 진행하며, 경기 안성 공도도서관은 문학가가 주부와 여성을 대상으로 지도하는 글쓰기 및 시 창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우리나라의 예술인 파견사업은 최근 유럽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예술인파견사업에 유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기업경영혁신의 필요성과 예술 역할의 확대가 맞물려 예술과 기업이 접목되는 흐름, 즉 ‘기업 내 예술적 개입(Artistic Intervention in Organization)’이 나타나고 있다. 범 유럽 네트워크 ‘크리에이티브 클래쉬(Creative Clash)’는 예술과 기업의 창조적 충돌을 통해 두 세계가 서로를 탐험하는 가운데 상호혁신과 공동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매개역할을 하고 있다. 스웨덴의 비영리민간조직 Tillt가 중심이 되어 스페인, 독일, 벨기에, 프랑스 등의 문화단체들이 주요 파트너로 참여해 공동연구를 펼치고 있으며, EU 차원에서도 2009년부터 이 네트워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Tillt는 ‘조직 내 예술적 개입’의 목적을 ① 예술이 창의성과 혁신을 고무시키는 도구로서 활용되어 조직과 개인을 성장시키는 과정 ② 새로운 예술과 예술적 방법을 개발하며 예술가들을 위한 새로운 직업영역을 창출하는 일에 두고 있다. 예술은 조직에 개입해 다른 방식의 사고, 새로운 관점을 개발하는 촉매역할을 하고, 기업은 예술가가 활동하는 새로운 환경이 되는 것이다.
예술가를 기업에 상주시키는 일종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인 AIRIS는 Tillt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AIRIS는 배우 연출가 극작가 화가 사진가 무용가 안무가 작곡가 등의 예술가들이 10개월 동안 기업 조직에 들어가 근무하는 프로그램이다. 예술가는 최소 주 1회 기업 내 업무공간에서 작업을 하게 되고, 진행매니저와 기업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비전통적인 개념의 컨설턴트로 활동하게 된다. 예술가는 기업에 상주하는 동안 새로운 시각으로 업무공간이나 직원들을 관찰한다. 조직 내부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발견하는 조사기간을 거쳐 내부 프로젝트팀과 액션플랜을 수립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조직과 구성원에게 자신이 발견한 신선한 시각을 공유토록 함으로써 다양한 관점을 이끌어내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크리에이티브 클래쉬’의 또다른 파트너인 스페인의 ‘C2+i’는 기업혁신, 지역사회프로그램, 문화예술기반 컨설팅을 제공하는 민간기업이다. 빌바오 시의회의 지원을 받아 “느린 혁신”이란 슬로건을 걸고, 기업 내 조직원의 태도와 가치관 변화, 새로운 서비스의 원형을 개발하는데 예술을 접목시키는 시도를 펼치고 있다. 스페인의 슈퍼마켓그룹 Uvesco와의 협업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 슈퍼마켓그룹은 두 번의 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워왔다. 이후 조직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고, 직원들의 소속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2012~13년 ‘C2+i’와 장기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예술가 알버트 숄러가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그는 Uvesco의 직원이 되어 직원과 고객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 내용과 느낀 감정을 기록하고, 그 기록들을 퍼포먼스로 재현했다. 나중에는 이 퍼포먼스에 직원들도 참여해 스스로 콘텐츠의 생산자 공연자가 되도록 했다.
‘조직 내 예술의 개입’은 의지 있는 기업의 참여도 중요하지만, 예술가가 기업이나 단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필요하다. TAFI(Training Artists For Innovation, 혁신을 위한 예술가 교육)는 이러한 필요에 응해 ‘조직 내 예술의 개입’ 활동을 준비하는 예술가들에게 요구되는 역량(맥락화, 연구조사, 교수법, 프로젝트 관리능력, 마케팅 등)을 교육하는 활동이다. “예술을 도구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TAFI는 “예술 고유의 특성을 지키는 것이 예술이 다른 어떤 맥락에서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예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을 실험해볼 수 있는 장으로서, 사람들이 예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해볼 수 있는 통로로서 가능성을 갖는다는 설명이다.
「빅이슈」에 파견된 예술인 5명의 면면을 살펴보면 경력이 화려하다. 「서울 프린지페스티벌」 로고송을 제작하고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발」에서 「동방의 햄릿」 공연 등의 경력을 갖고 있는 음악인, 이미 홈리스밴드 ‘봄날’에서 객원보컬로 활동 중이며 그리스 대통령 방한 축하공연과 「자라섬 R&B 페스티벌」 참가 경력을 갖고 있는 음악인, 음악극 「우르르 쾅쾅! 천둥 먹은 호랑이」 제작에 참여했고 뮤지컬 「헬로 파인데이」로 CJ창작뮤지컬공모에 선정되었던 연극인, 단편영화 「미드나잇 썬」과 장편극영화 「각시바위 전설」 등을 촬영한 영상작가, 「프리다 칼로」와 「비노바 바베」 등의 그림책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미술인. 다섯 분 중 앞의 네 분은 합창연습 지도와 그 과정을 영상에 담는 작업으로, 다른 한 분은 판매원 외모 코디네이터 역할을 각각 해주고 있다. 이 분들은 ‘빅하모니’로 명명된 홈리스합창단의 지도에 열정적이다. 매주 미리 모여 활동기획회의를 하고, 합창연습을 친절하게 지도하며, 또 이를 홍보하는 일까지 해주고 있다.
합창연습은 우선 다양한 창작워크숍과 율동을 통해 몸과 마음을 여는 일부터 시작했다. 다음 단계에는 참가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에 담아가는 과정을 거치고, 스스로 노래를 만들고 이 노래를 함께 부름으로써 음악적 힐링을 경험하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음악으로 ‘빅이슈’를 노래할 예정이다. 또 홈리스 출신 「빅이슈」 판매원을 모티브로 작곡을 하고, 그 곡을 판매원들 옆에서 부르는 작은 연주회를 통해 이들을 응원할 계획이다.
빅이슈합창단은 연말경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표하는 공식 무대를 가질 계획이다. 연말 공연에는 빅이슈합창단 뿐 아니라 홈리스밴드인 봄날, 매주 서울발레씨어터(SBT)에서 발레 실력을 연마하고 있는 홈리스발레단도 함께 함으로써 무대를 더욱 빛낼 것이다. 「예술인 파견 지원사업」이 「빅이슈」를 비롯한 기관, 단체, 지역과의 긴밀한 협업활동을 토대로 앞으로 예술인들에게 사회 각 영역의 활동 근거지와 일자리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