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롱

「명량」(김한민 감독, 역사극/전쟁물, 한국, 2014년, 125분)은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상대해 최대의 전과를 올린 명량해전을 영상으로 담은 작품이다. 이순신 역을 맡은 최민식의 의연한 연기는 과연 소문 듣던 대로 일품이었고 앞 뒤 배경을 지루하게 서술 않고 요약한 것도 좋았다. 사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한 사실이며 원균의 실패며 권율의 이율배반적인 면이나 선조가 궁지에 몰릴 대로 몰렸던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생략의 묘미가 느껴졌을지언정, 도통 무슨 소린인지 몰라 영화의 재미가 급감했다는 의견엔 동조할 수 없다. 그렇게 앞뒤를 뚝 자르는 대신 감독이 오로지 집중했던 부분은 글자그대로 ‘명량해전’이었다. 과연 명량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는 말로 육군에 합류하라는 선조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 열두 척의 배는 풍전등화에 놓인 조선의 운명을 결정짓는 역할을 했고, 만일 명량이 뚫려 일본수군이 서해를 거슬러 올라 한양에까지 이르면 선조는 적장의 손에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일본의 수군대장인 도도(김명곤)에게는 선조를 잡는 날이 지루한 전쟁이 끝나는 날이었고 또한 승전의 영광이 전부 도도에게 돌아가는 날이기도 했다. 그렇게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날이 밝아왔다.
감독은 명량해전의 시종일관을 한 시간 넘게 묘사한다. 전쟁영화들은 대부분 전쟁의 전체 그림보다는 전쟁 중의 한 가지 사건을 부각시킨다. 이는 사건이 중요해서기도 하지만 영화를 통해 전체 그림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게 녹녹치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명량」도 마찬가지라 이순신의 일생을 그린 「성웅 이순신」(1962,1971)에 비할 바 아니게 이순신의 성품과 전쟁의 본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한국 영화계에 본때를 보여주려는 듯했다. 갖가지 상상력과 상업성을 바탕으로 역사를 뒤틀고 배배 꼬는 오늘의 현실에 ‘반성을 좀 하라’는 외침이기도 했다. 과연 언제까지 역사를 우스개로 삼으려 하는가? 영화의 마지막에서 이순신은 곧 있을 다음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진지로 씩씩하게 걸어들어 간다. 마치 세계사에서 최고의 해전으로 기록된 명량해전의 대승을 하찮게 여기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이순신은 그렇게 거인기질을 가진 인물이다. 아니, 정통 무인이라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명량」에서는 전쟁의 재구성과 이순신의 철학이 돋보였다. 그렇게 전쟁을 하고 최선을 다해 나라를 지키는 게 무인 정신의 핵심인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이순신에게 역모란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이순신에게서 무인정권의 정당성을 찾았던 과거의 독재정권들은 주소를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역사물을 만드는 감독들은 일종의 사명감을 갖는다. 「명량」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지도자의 인물됨이다. 우리시대에 필요한 지도자 모습의 은유로서, 온갖 모략과 의심을 견뎌내고 결국 나라를 구하는 지도자가 표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영화 소개용 인터넷 강의로 ‘명량’의 배경과 내용을 보면 영화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