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살롱

기자 일을 시작할 때 입사 시험 마지막 관문에서 면접관이 물었다. 왜 언론사에 지원했냐고. 준비했던 답도 아니었는데 무심코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그 대답에서 먼 길을 헤매고 있다.
미술기자로 돌아다니며 좋은 글을 꽤 찾았다. 적어도 적절한 본을 보고 배우고 싶었다. 한때 신문기자들의 교과서 구실을 하던 소설가 김훈 선배의 기자 시절 기사도 구해보았으나 그 분은 미술기자를 단 며칠 만에 집어치웠다고 했다. 왜냐 했더니 “화랑 여주인들 분 냄새 맡기가 싫다” 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요즘이야 미술 관련 서적이 엄청난 양으로 쏟아져 나오지만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외국 미술작품 도록 외에는 변변한 미술책이 드물었다. 그 무렵이나, 그 후로나 여전히 한국 미술 동네에서 좋은 글로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건 혜곡 최순우(1916~84) 선생이 남기신 명문이다. 유고 선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널리 알려진 선생의 문장은 ‘잘 쓴 글’이 아니라 ‘좋은 글’의 표본이다. 한국미를 규명하려 평생을 바쳤던 그 어른의 인간미 넘치는 글은 아름다움을 유유히 즐겼던 그 마음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지난 달 26일 저녁, 서울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조촐하면서도 뜻 깊은 모임이 열렸다. 시민들의 자발적 힘으로 한국 문화유산을 지켜온 ‘내셔널 트러스트’ 10주년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이 모임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아는 이들은 자연스레 혜곡 최순우 선생을 떠올렸다. 혜곡 선생이 돌아가실 때까지 머무시던 한옥이 2002년 자칫 집장수에게 팔려 빌라 몇 채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고인의 인품을 그리워하던 이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고택을 지켜낸 게 ‘내셔널 트러스트’의 시작이었다.
그 출발을 함께 했고 지금은 문화재청 수장으로 일하는 나선화 청장이 혜곡 선생을 기리는 인사말을 했다. 비오는 날 오후께 전화를 걸어 “우리 빈대떡이나 먹으러 갈까” 하시던 생전 선생의 정감어린 음성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는 얘기였다. 막걸리 한 사발에 소찬을 앞에 놓고 한국 미술에 대한 애정을 강물처럼 퍼트리시던 혜곡은 평생을 한국미를 앓다 간 정인이었다. “함께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때로 아픔이 된다”고 했던 고인이 남긴 다음 한마디는 좋은 글의 백미다.
“자연이나 조형의 아름다움은 늘 사랑보다는 외로움이고, 젊음보다는 호젓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은 공감 앞에서 비로소 빛나며, 뛰어난 안목들은 서로 그 공감하는 반려를 아쉬워한다.”
혜곡 최순우 선생 타계 30년이 되는 해, 그의 정신에 공감하는 반려가 ‘내셔널 트러스트’를 비롯한 여러 모임으로 퍼져가니 그 어른이 먼저 가셨다 해도 외롭지 않으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