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김남진 안무 『바늘』(9월 19~20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김남진 안무의 『바늘』은 스마트폰과 컴퓨터게임에 중독된 청소년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들에게 스마트폰은 소통, 오락, 정보, 지식 등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단 한순간도 자신과 떨어질 수 없는, 자기 몸/정신의 일부로 여긴다. 스마트폰은 곧 자신의 삶, 그야말로 자신과 동일시할 정도다. 그래서 결코 ‘중독’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항상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공연은 암흑 속 얼굴의 형체를 겨우 감지할 수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두 눈동자, 그것도 거의 움직임이 없다. 네 명의 남자무용수들이 무대 앞쪽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화면에서 나오는 불빛에 눈만 겨우 보이는 것이다. 한밤중 눈에서 빛을 내는 귀신처럼 섬뜩하다.
현대 청소년들의 컴퓨터게임은 그 옛날 학교 앞 오락실의 전자오락 수준이 아니다. 즉, PC나 스마트폰은 단순한 게임을 즐기기 위한 수단, 이른바 오락기기가 아니다. 컴퓨터 속 세계는 그들에게 또 하나의 세상이다. 가상이 아니라 실제 삶이 펼쳐지고 있는 현실(?)인 셈이다. 그러니 실제 세상과 컴퓨터 속 세상을 구분할 필요도, 구분할 수도 없다. 그 전의 세대와 달리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세상이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이었다.
이처럼 『바늘』에는 “물의 느낌도, 흙의 촉감도, 바람의 소리도, 어머니의 냄새도 알지 못하는” 네 명의 청소년이 등장한다. 색깔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의상, 체크무늬 남방에 세 줄 무늬 츄리닝 바지가 획일화된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들이 세상을 알아가는 방법은 오직 스마트폰, 그 차가운 메탈의 촉감과 LCD 패널의 터치에 의해서다. 그 ‘사각형 물건’은 타인과 소통하고 유용한 지식을 얻고 즐거운 오락을 할 수 있는, 한마디로 편리한 생활을 위한 필수 아이템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주는 감각은 한정되어 있다. 어쩌면 전혀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기계의 빛이자 소리일 뿐이니까.
그렇게 무감각하게 자란 이들이 막상 타인과 직접 대면하게 되면 충돌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인간과 기계의 구분도 없으며,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라고는 빼앗고 무너뜨리고 짓밟고 군림하는 것, 즉 파괴와 공격에서 느꼈던 희열이 전부다. 무용수들은 계속해서 서로 번갈아가며 상의를 뺏고 상대의 약점을 노리며 공격을 일삼는다. 총싸움 칼싸움이 난무하고… 그들이 그렇게 밀치고 잡아당기고 뛰어다닐 때 무대는 아이들이 봐온 바로 그 컴퓨터게임 속의 공간이 된다. 딱딱한 스티로폼처럼 보이는 흰색 사각 판들이 그런 공간화에 기여한다. 공연시작 때 바닥 전체에 깔려 있던 큰 널빤지 같은 직사각형 조각들은 공연 중에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데, 게임 속 블록 같은 것을 연상케 하면서 그 세계를 연출해낸다.
그 공간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그들이 게임 속 인물인지 아니면 컴퓨터 밖에서 게임을 하는 인물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한다. 요즘 테크놀로지는 ‘기계적 움직임’이라고 해도 예전 구식 로봇 같은 움직임이 아니라 인간의 움직임과 거의 다르지 않을 정도로 구현해내기 때문에 비록 게임 속 인물들일지라도 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물리적인 움직임만으로는 인간과 기계가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고 컴퓨터화면에 의해 지각되는 인간의 신체는 팔, 다리, 몸통 등 부분들의 조합일 뿐이다. 그렇게 인공적으로 탄생된 ‘사이보그’(기계적 신)는 ‘다비드’(인간적 신)와 싸워 승리한다. 간단한 영상을 비롯해 극적 장치 등을 이용해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연출해냈다.
김남진의 작품은 자신이 다루는 주제에 대해 직설적인 편이다. 그만큼 소재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전개하는데, 그것은 대부분 명확한 주제의식, 논리적인 전개, 적합한 소재, 명쾌한 장치, 육체적 표현 등 전체 작품의 구성방식에서 드러난다. 『바늘』에서는 두 가지 장면이 특히 인상적으로 대비를 이룬다. 공연 후반부에 한 무용수가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자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꽤 감성적인, 아날로그적인 장면이 있다. 이는 적대적이고 파괴적인 전개와 대비되면서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와 대조적으로 공연 시작부분에 바늘과 스마트폰이 육체를 매개로 함께 나오는 장면이 있다(바늘 대신 진짜 송곳을 소품으로 사용했다). 조명을 배제한 채 화면에서 나오는 빛으로 몸을 비추던 스마트폰은 곧이어 영상촬영 기능을 이용해 손바닥만한 화면으로 몸의 특정 부위들을 클로즈업하듯 보여준다. 팔과 다리, 복부 등 몸을 따라 스마트폰이 이동하면서 보여주는 것은 마치 몸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 ‘바늘’이다.
이 장면에서 안무자는 실제 물건과 육체로서 구현하되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연출해서 실제는 아니지만 실제처럼 보여준다. 사전에 카메라로 찍어 영상화해서 연출하지 않음으로써 그 고통이 컴퓨터 화면 속 가짜 고통이 아니게끔 한다. 날카로운 바늘이 몸속을 이동한다는 것은 온몸을 찌른다는 것, 그만큼 상처를 내고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살을 에는 고통으로 망가지는 것은 몸이자 영혼이다. 김남진의 작품들은 늘 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통이 환상이 아님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결코 폭력에 관대하지 않는다. 편리한 삶은 고통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폭력에 대해서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감각해졌다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