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공연평

* 국립무용단의 『토너먼트』(9월1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이 있다.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철로 만든 자신의 침대에 뉘여서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을 잘라내고 침대보다 작으면 침대 길이에 늘여서 죽였다는 그리스신화의 인물 때문에 유래된 말이다.
전국의 국공립 무용단 대부분은 한국춤 장르 단체이고, 이들의 상주극장들은 예술극장이기보다는 대부분 국가행사위주로 만들어진 다목적 홀에 가깝다. 따라서 무대규모가 한국춤을 추기에는 너무도 큰 공간이어서 춤에 공간을 맞추기 보다는 공간에 춤을 맞추게 된다. 하지만 생각을 전환해보면 그러한 환경이기에 사설 무용단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대규모 레퍼토리 작업들이 국공립단체들이기에 가능하기도 한 기회이기도 하다.
영문제목을 사용하는 한국 창작 춤은 부지기수이지만 국립무용단의 『토너먼트 (Tournament)』처럼 한국춤의 정서에 반하는, 공격적이면서도 어딘지 도시적인 느낌의 제목은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이번 작품은 『단 (壇), 2012』을 안무했던 현대춤의 안성수가 다시 한 번 작업에 참여했는데, 위촉 안무가 아닌, 국립무용단 단장 윤성주와 함께 부분 안무를 맡은 공동 작업이어서 이채롭다. 무용수들을 성별로 나누어 청록색 의상의 남성무용수들은 한국춤의 윤성주가, 선홍색 의상의 여성무용수들은 현대춤의 안성수가 안무를 맡아 각자의 작업을 무대 위에서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형식이다.
음악면에서도 남성을 상징하는 거칠고 무정형적인 한국 타악 연주가 남자 무용수들에 맞췄다면 섬세하고 치밀하게 짜여진 서양의 고전주의 현악작품에 여자 무용수들이 맞추는 등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요소요소마다 서로 다른 차이점과 대비미를 이루고 있는 재미를 발견한다. 게다가 판타지물로서, 평면적 무대를 탈피하여 빠른 속도의 회전무대는 「매트릭스」와 같이 영화적 기법을 사용하려는 흔적도 보인다.
어찌 보면 남자 대 여자의 결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밤과 낮이 서로 합쳐지지 않듯 음양의 경계선상에서 이루어지는 대립은 유별(有別)을 강조하는 동양(유교)의 정서다. 그래서 『토너먼트』라는 제목에서 느낄만한 “배틀(battle)”적인 공격적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동시에 태양의 제국의 현자 자라스트로와 밤의 여왕의 관계와도 같아 마치 「마술피리」의 구도를 보는 느낌인데 결말의 설정에 가서 더욱 확실히 느껴진다.
신무용계열의 국립무용단의 기존 레퍼토리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스판 소재로 제작한 초현실적인 의상이나 허리를 사용하는 여성무용수들의 동작 등으로 당혹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토너먼트』는 분명히 일반관객들의 눈높이용 작품 역시 아니다. 그렇지만 국공립무용단으로써의 역할을 볼 때, 『토너먼트』는 그간 윤성주 단장이 시도한 여러 작품들이 신무용계통의 한국춤의 계승을 넘어, 국립현대무용단도 아직 시도하지 못한 큰 스케일의 컨템포러리적 한국춤, 동시에 한국춤의 컨템포러리화의 가장선상에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기 때문에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 국립국악원무용단 『사제동행』(9월26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한 무대에 스승과 제자가 함께서는 무대는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인해 그 어느 무대보다 긴장감이 고조되기 마련이다. 박은하, 이흥구, 이성훈, 정재만, 한명옥, 국수호, 김매자 이상 7명의 명인을 사사한 제자들이 스승의 작품을 따로 혹은 같이 추는 ‘사제동행’이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25, 26 양일간 열렸다. 공연은 박은하와 제자들이 꾸민 양도일류의 『설장구춤』로 개막하여 장단과 가락연주처럼 사제간의 일치감을 뽐냈다, 남성미와 동시에 구성미가 돋보이는 『동래학춤』의 이성훈, 무정형 춤 속에 극이 담긴 “국수호류”가 붙은 『장한가』는 유일하게 창작전통이라는 점에서 눈에 띄며 제자들과 특별출연하여 무대를 더욱 빛냈다. 또한 지난달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고 정재만류의 『승무』는, 작품을 올리기 전 스승이 생전 제자들을 가르치던 모습을 상영하여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장면이 전환되는 중간에는 사제와의 대화형식의 막간극을 이용했는데, 전통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전통무용가가 갖추어야할 정신 등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구실을 한다.
예를 들어 궁중정재인 『학연화대합설무』(지도 이흥구)에서는 궁중 춤으로써 춤에 임하는 몸가짐, 그리고 이매방류의 『살풀이춤』 (지도 한명옥)은 한국적 정서의 집체적 춤임을 작품을 보고 황홀해 하는 제자의 소감과 함께 춤의 겉멋만 보지 말고 속의 정신을 볼 것을 당부한다.
김매자 안무의 『춤, 그 신명』은 전통춤의 계승, 발전은 전통의 기본기와 정서가 있어야함을 전하는 메시지가 있는 춤으로, 객석에서 무용수들이 등장하는 등 춤 구성이 가장 역동적인, 이번 공연의 유일한 창작 작품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발견하는 점은 우리가 멀게만 느껴진 유파의 창시자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시대 무용가들에게 의해서도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의 새로운 계파 탄생에 대한 심층적인 설명도 앞으로는 필요할 것 같다.

* 지경민의 『인간의 왕국』(9월14일 강동아트센터 소극장드림)
일본의 호시 신이치(星新一)는 1957년부터 1997년 죽을 때까지 초단편의 SF소설을 꾸준히 발표하여 일본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작가다. 하지만 그가 소설에 등단하기 전까지는 돌연사한 아버지의 사업채를 물려받아 빚까지 떠맡으며 채권자들에게 시달림을 받으며 사람에 대한 냉소적인 생각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가만히 보자면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SF장르를 가장한 인간군상에 대한 냉소적인 풍자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중 「친선키스」라는 게 있다. 미래의 어느 날, 외계에 초청받은 지구의 과학자들이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외형의 외계인들에게 인간의 인사법을 키스로 가르쳐주어 외계의 여자들과 재미를 볼 궁리를 한다. 그러다보니 동성과의 원치 않는 키스도 해야 할 경우도 생기는데, 그것까지는 무난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지구인들이 인식하는 외계인들의 입술이란 키스를 하지 말아야할 곳이었다는 내용이다. 차이점을 무시하고 겉으로만 판단하다가 큰 낭패를 본다는 내용으로, 그의 전반적인 작품에서는 욕심에 눈이 먼 악인에 대한 권선징악과 어리석은 이들을 ‘이용해먹는 선인’이라는 다소 이상(理想)적인 요소도 들어있는데 아마도 사회초년 시절부터 빚쟁이들에게 시달림을 받은 고통에서 헤어나기를 소원한 신이치의 별(星)과 같은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지경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국립현대무용단의 『11분』에서였다. 공동 안무 및 무용수로 참여 했던 이들이 작품의 소재가 된 파울로 코엘료 원작소설 『11분』의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주위 사람들을 표현하는 반면, 지경민은 아주 소소한, 주인공이 어렴풋이 기억하는 비중 없는 인물을 공연 중 가장 인상 깊은 인물로 끌어냈고 그 인상이 오래 남았다. 그래서 한때 국립현대무용단 홈페이지 메인 페이지에 장식하기도 했다.
지경민이 자신의 “첫 안무작”이라 부르는 『인간의 왕국』은 그러나 『11분』에서 맡았던 ‘연필 빌리는 아이’의 감성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전작으로만 봐서는 굉장히 감성적일 것 만 같은 이 안무가는 180도 다른 분위기의 무대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외계인들이 지구로 불시착한 모습을 통해서 반추해보는 『인간의 왕국』은 TV 『동물의 왕국』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밝혔듯 외계인의 시선에서 본 인간세상이다. 프로그램에서는 외계인들의 착륙을 기다리는 인간들의 환호를 묘사하지만 실지로는 ‘불시착’에 가깝다. 외계인들이라 해서 특수 분장을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하 일체의 유아복을 연상시키는 흰색 의상(우주복)에 어울리는 무용수들은 백치상태의 천진난만해 보이는 아기의 모습과도 같다.
성인들에게는 낯설다 못해 민망할 수 있는 소통의 행동방식들 - 껴안은 채 서로의 몸을 비비는 인사법이나, 이인합체를 위한 체위 - 등은 인간이 당연하다고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외계인들의 눈으로는 꽤 웃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관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무대 상수 가운데 설치한 외계인의 동상은 돌려놓는 각도에 따라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변하는 등 안무가의 의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오브제이다. 다만 오랜만에 보는 멜로디언을 이용한 그들만의 신호는 관객들을 향수에 젖게도 하지만 좀 뜬금없다.
옹알이를 내는 아기들처럼 각각제멋대로이다가도 지구에 착륙하기 위한 대형은 마치 스카이다이버들의 공중곡예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렇게 탈의가 용이하도록 의도적으로 고안한 의상으로 입었다 벗었다를 재빨리 번갈아가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옷에 가려진 인간의 가식 그리고 솔직함의 교차점이어서 분명 호시 신이치로의 작품마냥 웃음 속에 가려진 날카로운 ‘인간고발’임을 의심할 바 없다. 하지만 지경민이 바라본 인간의 왕국에서는 반전의 씁쓸함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끔 인간에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숙한 한국의 도깨비들처럼, ‘인간의 욕심을 부리던 말 던, 그건 그거고 우리라도 즐겁게 즐기자‘는 해학적 ’체념‘이 깔린 한국적인 낙천적이 호시 이치로와 다른 점이다, 막판에 무용수들은 빤쓰 바람으로 양손에는 벗은 옷의 손 자락을 잡고 원을 그리며 마치 어른과 아이가 함께 손을 맞잡고 강강수월래를 그리는 정다움 모습을 연출하며 마티스의 『춤』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이렇듯, 독특한 감각의 젊은 안무가들 중에서 특히 지경민의 감각은 변화무쌍하며 자유롭기 때문에 지경민이라는 이름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