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작년 이맘때 땀흘리고 고민하며 만든 작품을 꼭 해외 무대에서 공연하기를 소망하였었는데 우연히 알게된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SCF)를 통하여 불가리아 「원 댄스 위크(ONE DANCE WEEK)」 페스티벌에 초청되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수많은 안무가들이 해외에 나가 공연하고 인정받고 있지만 나에게는 처음이고 걸음마이기에 그 설레임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실 나에게 불가리아는 친숙한 나라이다. 대학시절 불가리아 「바르나 국제콩쿠르」에 두번이나 참가했었기 때문인지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공연하게 될 도시는 플로브디브(Plovdiv)인데 작년까지는 수도인 소피아에서 페스티벌이 진행되었었는데 이번 해부터는 플로브디브로 옮겨졌다고 한다.
불가리아의 제2의 도시 플로브디브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립 대왕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도시이며 수많은 이민족의 침입을 받고 국명을 되찾은지 100년이 채 되지 않아서 인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인 것 같다.
특히 「원 댄스 위크」는 컨템포러리 댄스 페스티벌로 정부에서 지원을 많이해주는 큰 행사 겸 축제이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워크샵과 해외초청작 그리고 쇼케이스까지 체계적으로 스케줄이 잘 짜여져 있었다.
늦은 시간 소피아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차로 두 시간을 이동하여 플로브디브에 도착했다. 장시간 이동한터라 짐을 풀고 잠부터 청했다. 아침이 밝아오고 창밖을 바라보니 시원한 분수대와 오래된 멋진 건물들이 나를 반겼다.
곧바로 아침식사를 하며 관계자들과 페스티벌 관련된 스케줄을 정리하며 위치 설명을 듣고있는데 우리가 공연할 플로브디브 드라마시어터(Plovdiv Drama Theater)는 머물고있는 호텔에서 100 미터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소극장이지만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극장이라고 한다.
또 다른 보리스 하우스(Boris Hristov House of Culture)은 그림전시와 워크샵 등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며 우리나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이랑 비슷한 크기와 형태였다.
첫날은 쇼케이스 2편과 시에 길레 조빈(CIE GILLES JOBIN) 안무의 『퀀텀(QUANTUM)』 과 한국팀 김호연안무 『6 디그리(6 DEGREES)』를 관람하기로 하였다. 공연은 두개의 극장에서 12시30분부터 저녁 10시30까지 하루 종일 이어진다.
공연을 보면서 느낀 한 가지는 사람들이 여유로워서인지 아니면 문화적인 차이인건지 모르겠지만 공연시작 시간이 지났는데도 천천히 대화를 나누며 자리에 앉고 심지어 대부분의 공연 아니 모든 공연이 제 시간에 시작하지 않았다. 1, 2분만 늦어도 못들어가는 우리나라 공연문화와는 사뭇 달라서 한편으론 이해가 되질 않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공연을 대하는 사람들의 문화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첫날 공연인 불가리아 쇼케이스에서는 움직임보다는 개념과 오브제를 통한 끊임없는 연구에서 비롯되어있었다. 주제에 대한 리서치를 많이 한 듯 전달하고자하는 것들이 명확해 보이고 면밀해서 좋았다.
두 작품이 다른 듯 같아 보이고 같은 듯 달라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퀀텀』과 『6 디그리』 두 작품은 해외초청작이니 만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무대였다.
특히나 김호연의 작품은 같은 한국팀이어서도 자랑스러웠고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를 위트있고 디테일하게 끌고 나가며 불가리아 관객들에게 큰 웃음과 감동을 주었다.
늘 그렇듯 공연이 끝나고는 안무가와의 대화를 통해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나 네트워크가 형성 되는 것들이 부러웠다. 진심으로 작품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생각들을 공유한다는 것은 비판하기 앞서는 우리나라보다는 더욱더 발전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도 상쾌하게 맞이하며 스케줄 정리와 함께 소품제작에 들어갔다. 두개의 박스를 사용하는데 너무 무거워서 직접 가져오지 못하고 따로 다시 제작하여 불가리아 현지에서 만들게 되었다. 공연도 하기 전에 땀을 한가득 흘리며 앞으로는 몸과 몸으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그렇게 완성된 소품을 조립하고 리허설을 하러 극장으로 이동하였다. 오래된 역사를 지닌 만큼 극장의 시설도 전통스러웠다. 시스템 자체가 수동이 많았지만 워낙 극장에 오래계셨던 베테랑 분들이라서 그런지 너무나들 알아서 척척해주셨다. 원하는 것을 정확히 그리고 본인의 감각을 조금 더해서 해주셨는데 호홉만큼은 최고였다. 거기다 친절함까지 더해져서 공연 전에 기분이 한껏 업(UP)되었다.
그렇게 테크니컬 리허설을 마치자마자 불가리아TV에서 인터뷰와 리허설 영상을 찍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정말 국가차원의 행사가 맞구나 라는 생각도 잠시, 순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했는데 한국컨템포러리댄스에 대해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는 것 같았다.
인터뷰 내내 자부심 그리고 책임의식이 생겼는지 공연 전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유로운 사람들 덕에 10분이 늦춰지고 긴 호홉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작품상 우스꽝스러운 오브제가 또 한 번 크게 한몫했다. 그들 또한 너무나 즐거워하며 맘껏 웃고 즐기고 있었다.
한 가지 특별한 느낌을 받았던건 이번 작품에서 사탕을 나눠주는 장면이 있는데 매 공연때마다 모두들 사탕을 달라고 손을 내밀고 원했었는데 이번 공연에는 정 반대의 분위기였다.
불가리아어까지 공부해서 사용했는데 반응이 없어서 난 당황하며 작품을 읽힌 느낌이었다. 또한 이번에 나레이션하는 부분에서 서울안무페스티벌(SCF)때는 영어를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어린 여자아이의 대사를 그대로 번역없이 사용하였는데 관객 이곳저곳에서 눈물을 훌쩍이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욱 진심을 다해 그들과 소통하고 이야기했다. 공연이 끝나고 걱정했던 빈자리는 찾아 볼 수 없었고 우려했던 모든 것들이 큰 박수와 기립으로 이어지고 너무나 너무나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첫 해외공연을 마치게되었다. 작품이 끝난 후에 끝없는 질문으로 나를 당황케한 사람들도 있었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 재밌고 감동있었다며, 고맙고 내년에 또 공연해달라고 말씀하셔서 몸둘 바를 몰랐다.
사실 이번 작품을 통하여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다른 나라사람들의 정서에 문화에 맞을까 하는 고민이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화차이랄까 공연이 끝난 후 한국에서는 잘봤다, 수고했다, 잘했다, 고생했다 등의 위로와 칭찬의 말을 하는 편인데. 이곳 불가리아에서는 대부분 고맙다는 말을 해서 색다른 기분이었다.
나 또한 이 모든 것들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춤추고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마무리된 나의 첫번째 해외무대는 아무 탈 없이 좋은사람들과 아름다운 곳에서 감사를 느끼게 해주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공연에 조금 늦는 것보다 공연이 끝나고 피드백과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고 전체적으로 공연을 부담없이 즐긴다는 것 그리고 우리 한국 컨템포러리댄스의 잠재력과 능력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있는 한국을 한껏 느끼고 또 배우고 돌아온 감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