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 있는 풍경

붓은 마음을 통해 팔과 손으로 전달되는 이미지를 추구하지만 붓이 화지를 만나는 순간 붓은 춤을 추듯 화지 위를 여유롭게 거닐며 때로는 흥에 겨워 스스로의 몸으로 다양한 필선의 춤사위를 연출한다。
부드러운 모필일지언정 몸에 수묵의 물기를 품어 안으면 어느 사이 스쳐가는 작은 바람에도 휘날리는 유연함이 칼처럼 예리하게 날을 세우고 어느 때에는 물처럼 유연함으로 화지 위를 적신다。
붓은 다가설 수 없는 연인처럼 화지를 만나는 순간 떨리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어 몸을 비틀고′ 세우고′ 화지위에 비스듬이 드러눕고 뛰기도 하면서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의 몸짓으로 한 폭의 산수화가 되고′ 화조화가 되며′ 사군자가 되기도 하면서 수묵의 향기를 품어낸다。
춤추는 붓끝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가득한 연구실에서 화지위의 수고를 뒤로하고 오래된 대나무 붓걸이에서 자신의 젖은 몸을 말리며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고 있는 붓을 보며 붓끝의 신명나는 또 다른 춤사위를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