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살롱

성남아트센터가 오랜만에 진지한 예술이 녹아 있는 한 편의 연극을 공연했다. 프랑스 툴루즈국립극장이 2010년 무대에 올려 큰 성공을 거둔 빅토르 위고 원작의 「천 프랑의 보상」이다. 빅토르 위고는 낭만주의 문학의 선두주자로 그 때까지 고전주의에 억눌려 있던 프랑스의 문학과 연극에 자유와 열정을 부어넣고자 분투한 혁명적 예술가이다. 그가 자신의 희곡 「크롬웰」 서문에서 고전주의가 준수해온 비극과 희극의 엄격한 구분과 삼일치 법칙과 같은 비합리적 관행을 내던지고 셰익스피어가 추구하는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주제와 형식을 채택할 것을 요구하면서 “연극은 현실을 비치는 거울이 아니라 미광을 광선으로 광선을 불로 만드는 집광경(集光鏡)이다” 라고 한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가 이렇게 희곡의 주제와 형식의 자유화에 집착한 것은 그것이 기본적으로 인간 자체는 물론 사회적 죄악과 불평등을 묘사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빅토르 위고의 휴머니즘 사상을 유일하게 소설 「레미제라블」을 통해 익숙해 있지만 그는 이 작품 말고도 휴머니즘과 인간사회에 대한 풍자를 담은 수많은 시, 소설, 희곡을 집필했다. 특히 그가 훌륭한 희곡작가로서 연극사에 찬연히 빛나는 수많은 희곡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성남아트센터가 공연한 「천 프랑의 보상」은 그 중의 하나인데 나폴레옹 3세 치하의 박해를 피해 1866년 영국령 건지섬에 망명하던 시기에 집필한 것이지만 검열이 완전히 사라진 자유로운 세상에서 공연하겠다는 희곡작가의 의지에 따라 사후 50년에 가까운 1934년에 출판되고 1961년에 겨우 무대화될 수 있었다.
「천 프랑의 보상」은 희곡판 「레미제라블」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 서로 닮아 있다. 툴루즈국립극단의 전속연출가 로랑 펠리는 어찌 보면 고리타분해 보이는 고전극의 사건과 인물을 새로운 해석과 감각으로 마무리하여 무대화에 성공하고 있다. 휴머니즘적 메시지를 현대적 상황과 적절히 연결시키고 이를 미학적으로 처리한 것은 눈에 띠는 부분이다. 제1막에서 앙상하고 예리한 철제의 구조물과 조명의 절제를 활용한 흑백의 극단적 대조는 가난과 사회적 불합리를 표현하고, 제2막에서 눈내리는 파리의 가장 무도회장을 몽환적으로 그리면서 인간의 이중성과 빈부의 차이를 풍자하고, 제3막에서 검정색과 빨간색의 대조를 통해 선과 악의 대비와 혼란을 표현한 것은 가히 미학적 연출의 묘를 얻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성남아트센터가 빅토르 위고의 알려지지 않은 희곡을 소개하고 희곡집을 출판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럼에도 성남아트센터가 창작의 근거지로서 역할을 포기하고 변방으로 자족하는 현재적 상황은 참으로 안타깝다. 거대한 극장과 부속시설을 갖고 있으면서 하나의 전속극단도 자체적으로 육성하지 못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인구 50만에 불과한 툴루즈시가 국립극장을 존속시키면서 연극과 오페라의 산실로 프랑스 5대 우수극장의 반열에 올라가 있다.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성남아트센터는 뮤지컬 「남한산성」의 창작시대로 복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