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살롱

내년 수교 50주년을 맞는 한국과 일본 사이가 갈수록 멀어지는 분위기다.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시절이 언제인가 싶게 ‘멀고도 먼 나라’로 접어드는 징후가 짙다. 불편한 한·일 사이를 상징하던 독도 문제가 한 풀 꺾이고, 일본군 위안부 보상 이슈가 앞장서나 싶더니 여성 대통령의 신상에 관한 보도가 툭 튀어나왔다.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산케이 전 서울지국에 대한 검찰 기소가 가뜩이나 쌓인 불만이 많은 두 나라 사람들 심기에 불을 지르고 말았다.
최근 일본에 다녀온 한 미술사학자는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다며 걱정스런 얼굴이었다. 그는 2012년 10월 일본 쓰시마섬 가이진신사와 관음사라는 두 절에서 국내 절도범들이 훔쳐 반입한 문화재급 불상 두 점의 향후 처리를 위한 조사를 위해 일본에 건너갔다. 14세기 고려 금동관음보살좌상과 8~9세기 통일신라 동조여래입상은 지금 한국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실 수장고에 위탁 보관 중으로 검찰의 접근 금지 딱지가 붙어있다.
지난 2년 여 이 불상을 둘러싸고 말이 많았다. ‘도난 약탈 문화재는 반환해야 한다’는 국제규약에 준거해 돌려주자는 주장이 우세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일본 측이 불법적으로 강탈해갔으니 우리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학자는 그 저간의 사정을 조사하러 불상을 잃어버린 절 관계자와 주변 전문가들을 만났다고 했다.
정작 그가 놀랐던 것은 밤에 숙소에 돌아와 시청한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심야 토론’쯤 되는 프로의 주제가 바로 ‘산케이 전 서울지국장 소환’이었는데 그 불합리성을 성토하던 출연자들이 갑자기 한국이 훔쳐간 불상 두 점 얘기로 화살을 돌리더라는 것이다. 문화유산을 마구잡이로 도둑질해 가는 나라 사람들이니 무고죄를 씌워 없는 죄를 만들어낸다는 식으로 논리가 비약하는 것을 보고 그는 속이 쓰렸다고 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국회의원들로부터 왜 외국에서 환수해오는 유물 수가 몇 점 안되느냐는 비난을 받았다. 특히 일본에 수 만 점이 있다는 데 더 돌려받아오지 못하느냐고 질타당했다. 말은 쉽지만 문화재 환수는 극히 까다로운 외교 문제다. 실무 담당자들은 환수가 능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지역에, 그 국가에 잘 보존되어 있으면서 한국 문화의 우수함을 알리는 것도 국내에 들어오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런 점에서 10월28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한 「동양을 수집하다」(2015년 1월 11일까지)는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특별전이다. 불비상, 반가사유상 등 200여 점이 나온 이 전시는 일제강점기 우리 박물관이 수집한 아시아 문화유산을 돌아보는 자리다. 한마디로 일본총독부박물관, 이왕가박물관과 미술관이 주변국들에서 마구잡이로 가져온 문화재 등을 돌아보는 성찰의 전시다. 약탈의 흔적이 구석구석 배어있는 이 유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또한 가해자가 아닌가, 자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