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최진한의 『아!맨(A! Man)』(10월 24~25일 충무아트홀 중극장)
최진한은 그 동안 『몽정』과 『네가 행복했으면 해』 같은 소(小)작품들을 통해 ‘성장통’이라는 소재를 독특한 감각으로 표현해왔다. 그가 오랜만에, 죽음과 연결된 삶이라는 사이클에서 각 과정마다의 성장통에 대해 고찰하는 작품을 들고 나왔다. 10월 24-25일 충무아트홀 중극장에서 선보인 『아!맨(A! Man)』은 그의 첫 번째 전막 작품으로 60분간 독무로 진행되었다.
노인으로 시작하여 중년 여성, 소녀 그리고 강아지(아기)로 회귀하는 일련의 전개에서, 각각의 캐릭터들(결국 하나로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지만)은 범상치 않게 제시되고 있다. 거적 질감의 두루마리를 걸치고 가느다란 끈들을 머리에 두른 최진한은 도인이나 행위예술가처럼 보인다. 경직되고 뒤틀린 몸으로 느릿하게 움직이다가 입을 크게 벌려 소리 없는 절규를 지르는 모습은 마치 삶의 마지막에 삶을 되돌아보는 의식을 치루는 듯하다.
주걱을 손에 쥔 채 등장한 중년 여성은 극성맞게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쑤시고 다닌다. 목표와 실체가 불분명한 부산한 생활에 노출되어 정신없이 삶을 흘러 보내는 그녀에게서, 현대인의 모습을 중첩시킬 수 있다는 점이 쓴 웃음을 야기한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바텐더로 분한 여자들이 와인을 권하고 따라주는 행태는 근래 공연 현장에서 식상할 정도로 여러 번 나왔다, 하지만 작품의 기이한 흐름을 깨뜨리지 않은 선에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들이 관객을 무대로 이끌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등장하였다는 것이 다음 장면에서 밝혀진다.
기이한 분위기의 절정은 최진한이 흰 드레스를 입은 소녀로 등장했을 때다. 무대로 이끈 몇 명의 남자 관객에게 물총을 쏘게 하자, 붉은 물감이 소녀의 흰 드레스를 소름끼칠 정도로 붉게 물들인다. 흰 속옷까지 물든 붉은 색은 달거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예기치 않은 성장통에 몸부림치는 소녀의 몸짓은 최진한에 의해 그로테스크하게 표현된다. 붉게 상기된 최진한의 하얀 얼굴은 여우과의 요물을 닮아있으며 번뜩이는 그의 눈빛에는 광기마저 어른거린다. 기묘하면서 꽤 잘 어울리는 그의 여장은 성정체성에 대한 의문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다.
마지막 캐릭터는 다소 생뚱맞았다. 네 발로 기면서 혀를 낼름거리고 숨을 헥헥거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강아지다. 그는 조명으로 그려진 도형에 집착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리곤 하이힐을 한 짝씩 머리에 이고 입에 물고 객석으로 지나 퇴장한다. 삶의 처음이 결국 삶의 마지막과 하나의 사이클로 연결되어 있음으로 표현하려는 듯했지만 마지막 캐릭터의 원초적인 흉내가 짙다보니 그리 긴 여운을 남기지는 못하였다.
기이한 그로테스크에서 부토가, 발칙하고 기묘한 감각에서 안은미가 이미 많은 것을 해왔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기는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첫 번째 개인발표회에서 그만의 인상을 뚜렷이 심어놓은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열려있다. 한 단계 높은 창작적 발전을 위해서는 동작 구성에서의 창의성과 음악성에 좀 더 신경을 쓸 필요는 있어 보인다.

*「송범 춤 회고전」과 「대한민국예술원 춤의 향연」
모든 예술에서 역사적인 선례자들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그들의 과업을 고스란히 이어받던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던지 간에 그것을 딛고 현재를 일구어가는 것임엔 틀림없기 때문이다. 볼 것 많은 가을시즌에도 이와 관련된 춤 행사를 간과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범 춤 회고전」과 「대한민국예술원 춤의 향연」은 우리 춤의 근·현대사를 일구는데 주요한 기여를 한 인물을 추모하거나 그러한 인물들이 자축하는 행사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10월 1~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는 故 송범의 7주기 추모공연 「송범 춤 회고전」이 펼쳐졌다. 송범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휴전이라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으면서도 한국창작무용의 발전에 헌신하고 기여한 인물이다. 200여 편이 넘는 창작물로 ‘무용극’이란 장르를 정착시켰으며 국립무용단 초대단장으로서 20년 동안이나 재직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송범 춤 회고전」에는 『생령의 신음』(1959), 『사랑가』(1968), 『부채춤』(1954/1968), 『참회』(1951/1982), 『우물가에서』(1975), 『즐거운 계절』, 『황혼』(1965), 『사형대』, 『강강술래』(1968), 『가사호접』(1933/1975), 『고풀이』 등 송범이 창작하였거나 재구성하였거나 관련한 11개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특히 젊은 무용가와 애호가로서는 『가사호접』이나 『사랑가』처럼 역사적인 한국창작물을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대부분 송범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출연진을 가나다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국수호, 김나영, 김승일, 김장우, 김충한, 박숙자, 양승미, 이지영, 정혁준, 최영숙, 최정임, 홍승욱과 함께 서울예술대학교 동랑무용단, 중앙대학교 무용학과가 그들이다. 한국무용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무용가들 다수가 스승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하는데 힘을 모았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무엇보다도 스승을 기리는 진지한 자세로 열과 성을 다해서 춤추는 모습이 행사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이미 역사성을 인정받은 작품들로 프로그래밍되어 있으므로 예술적인 완성도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다만 뜻 깊은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공연 관계자와 그 주변인을 제외하고는 관객 수가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는 점은 짚어봐야 한다.

10월 21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는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6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예술원 춤의 향연」이 펼쳐졌다. 대한민국예술원은 예술창작에 공헌한 예술가를 우대하고 창작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우리나라 예술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1952년 개원하였다. 종신제를 채택하고 있는 예술원은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무용 총 여섯 개의 분과가 있는데 다소 폐쇄적인 회원 선정에 대해 문화·예술계의 비판적인 시선이 없지 않은 바 이에 대한 인식과 개선은 요구된다. 무용분과에는 작고한 조택원(1974~1976), 김천홍(1978~2007), 송범(1983~2007), 임성남(1990~2001), 송수남(2006~2012)과 더불어 활동 중인 여섯 명의 회원이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現 예술원 회원인 김백봉(1981-), 김문숙(1997-), 조흥동(2003-), 최청자(2007-), 김숙자(2009-), 김학자(2009-)가 자신의 대표작을 선보이거나 직접 춤을 추는 등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김백봉의 『청명심수』와 『타의 예』, 김문숙의 『살풀이』, 조흥동의 『수련몽』, 최청자의 『해변의 남자』는 제자들에 의해 재현되었으며 김학자가 1975년 한국 최초로 공연한 『지젤 2막 중에서』 역시 젊은 무용수들에 의해 추어졌다. 조흥동과 김숙자 경우 각각 『한량무』와 『실심초』를 직접 추어 춤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드러냈다.
그 동안 무용계 원로로서 춤 현장을 보이지 않게 받치고 있었던 예술원 회원들이 예술원 개원 60주년을 맞이하여 자신들의 춤의 향연을 펼쳐보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전반적으로 제자들과 함께 자신의 위업을 자축하는 분위기가 짙은 관계로, 무용계를 좀 더 폭넓게 아우름으로써 행사의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는 있다. 더 나아가 유고 회원인 조택원, 김천홍, 송범, 임성남, 송수남의 위업을 기리는 자리도 함께 마련하였다면 예술원의 역사성을 한층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