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예술인복지에 대한 법적, 제도적 보장은 예술가들이 오래전부터 요구해온 것이었다. 2010년 홍대인디밴드 출신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 씨가 창작자를 고려하지 않은 “음악저작권”의 폐해를 지적하며 지병으로 쓸쓸하게 숨을 거둔 사건과, 2011년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망한 시나리오작가 최고은 씨의 사연이 사회여론화되면서, 예술인복지법이 2011년 말 급하게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 법 제정 요구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있었다. 2003년 조각가 구본준 씨가 교통사고 사망 후에 보험사에서 보험금 지급을 낮추기 위해 예술가를 일일 잡역노동자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예술가의 지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었다. 구본준 씨의 사례는 예술가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어떤 지위를 갖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예술인에 대한 특별한 지원제도가 필요한 이유는 이들의 창작활동의 결과로 나오는 예술작품이 공공재인데다 이들의 창작과정이 사회 전체에 창의성과 혁신성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예술가들은 그 하는 일의 중요성에 비해 수입이 없거나 불안정해 생계유지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배경에서 「예술인복지법」은 2011년 11월17일 제정되고 2012년 11월18일 시행되었다. 이 법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을 근로자로 인식함으로써 사회보장의 혜택을 주는 한편 이 사업을 관장하고 수행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설립을 명기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예술인의 업무상 재해에 대해 산재보험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고, 표준계약서의 개발과 보급 및 예술인 경력증명에 대한 별도의 조치를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2013년 12월30일 「예술인복지법」이 개정되기도 했다. 개정안 내용은 예술인 불공정행위에 대한 시정명령 및 과태료 부과, 예술인 산재보험료 지원 등이다. 예술계 불공정관행을 개선하고 예술인의 사회보장을 확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결국 예술인복지제도의 핵심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사업과 운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사업이 지난해에 비해 올해에 양적으로나마 늘어난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재단 홈페이지에 발표된 내용을 정리한 뒷 장의 [표](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13, 14년 사업안내 비교)는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발표내용일 뿐, 실제 사업운영에서는 그렇지 않아 문화예술인들의 실망이 컸다. 재단은 올해 1월 예술인복지사업설명회에서 2014년 예술인복지예산이 199.7억 원으로 지난해 대비 약 38.5% 증액됐음을 발표하고, 2014년 복지사업은 어려운 예술인을 발굴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경된다고 밝혔다. 그래서 2006년 도입된 저소득층긴급지원제도를 예술인지원에 특화해 시행한 것이 예술인긴급복지제도다.

재단은 이 사업에 전체 예산의 절반이 넘는 101억 원을 배정했다. 한 마디로 주력사업이었다. 하지만 이 사업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음이 10월초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도종환 국회의원이 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긴급복지지원을 신청한 이들에 대한 서류심사만 평균 35일이 걸렸으며, 이 가운데 15일이 신청접수와 대기에만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2월 말에 신청해 7월 중순에야 확정 통보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위기상황에 처한 예술인들의 생계 지원을 목적으로 했지만, 시행 직후부터 신청 수요 대비 심사인력 및 전문성 부족 등으로 인해 신청 예술인들의 반발과 논란을 샀던 것이다. 물론 재단으로서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기관장이 부재한데다 업무는 폭주해 제때 일처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국민적 관심이 크고 문화예술계의 기대와 요구수준이 높아졌으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고 본다.
한편 예술인복지제도의 핵심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사업과 운영에 달려 있다고 한다면, 이 재단의 역할을 현재보다 더 격상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고 본다. 이는 문화선진국들의 예술인복지제도 사례를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럽 국가들은 예술인의 법적·사회적 지위를 인정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보장제도 마련에 많은 노력을 해왔다. 스웨덴은 예술인을 위한 별도의 제도를 일반제도로 편입하는 방향으로 문화예술인의 지원노력을 기울여왔고, 다른 선진국들은 일반제도에서 예술인들을 포괄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제도에서 충분히 포괄되지 않는 예술인영역에 대해 별도의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이 방면의 연구논문인 “예술인복지지원제도 관련 해외사례검토와 시사점”(김문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8)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프랑스는 예술인을 근로자 일반사회보장제도에 적용시키며, 비정규직 예술인의 경제적 보장과 직업안정을 예술인 복지정책의 목적으로 삼아왔다. 정부에서는 엥떼르미땅(Intermittent du spectacle)을 통해, 비정부기관에서는 작가사회보장제도(AGESSA)와 예술인의 집(MDA)을 통해 예술인의 복지에 관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직능구조를 반영하고 있으며(공연예술 분야 엥떼르미땅, 작가 AGESSA 등), 연금 및 기타 사회보장을 각 직능별 특수성에 따라 적용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1982년 「예술인 사회 보험법」을 제정해 공적재원의 지원을 바탕으로 예술인연금제도인 「예술가사회보험제도(KSV)」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의 대상은 자유계약직 프리랜서와 자영업자에 해당하는 전업 예술가들이다. 이들 외에 임금근로자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예술가들은 임금근로자들을 위한 일반사회보험제도에 편입시키고 있다. 프랑스와 같이 다양한 직능구조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추가적인 연금제도를 통해 생애주기별 보장 및 노후보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의 경우, 문화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독립행정기관으로서 “미국연방예술기금(NEA)”이 미국의 예술정책을 총괄 운영하며, 주로 미국인들의 문화예술 교육 및 향유에 초점을 맞추어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NEA는 개별 예술인에 대한 복지차원의 보조금은 지원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예술인들은 오히려 사적 지원, 즉 자신이 속해 있는 직업의 업종별 이해관계를 대변해 주는 길드 및 노동조합에 가입함으로써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를 테면, 미국 배우-TV 및 라디오 연기자 조합(SAG-AFTRA), 미국음악인총동맹(AFM), 미국작가조합(WGA) 등이다. 각 길드는 자격요건을 갖춘 예술인들에게 건강보험 및 연금 혜택을 제공하며, 직종별 특징에 따른 각종 보험도 제공한다. 예를 들어, AFM에서는 악기보험을 제공한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예술인은 임금근로자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자영업자여서 일반적인 후생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예술인들은 “예능실연가단체협의회(예단협)”라는 공익법인을 설립해 예술인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자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단협의 예능인연금제도는 일본 예술인에게 특화된 맞춤형 사회보장제도라고 할 수 있다. 예능인연금제도는 예술인에 한정된 공익법인에서 운영하는 제도이므로 가입자확보와 기금운용 등의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해왔다. 법률개정으로 인해 예능인연금제도가 2009년 6월 폐지되었지만, 예술인들의 안정적 생활에 실질적 도움이 되었던 제도라는 평을 얻었다.
정책당국은 이러한 선진국들의 사례를 연구하고 한국의 실정을 잘 감안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위상을 재설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재단이 예술인복지를 위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부보조사업을 수행하는 단순 기능에서 벗어나 독일의 경우처럼 예술인사회금고를 운영할 정도의 실질적 주체로 격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제도변화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재단은 국고나 지방예산 등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양한 홍보마케팅활동을 통해 국민적 인식을 제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과 공공기관 등의 후원을 이끌어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