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공연평

* 서정춤세상 『달, 千의 얼굴』(9월2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이미희 안무의 『달, 千의 얼굴』 초연은 제목부터 많은 기대를 가지게 한다. 달은 한민족에게는 태양보다 더 친근한 대상이기에 예로부터 바라는 바를 달에게 빌었으며, 달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고로, 달에 대한 작품도 수 없이 많다.
이미희는 백제시대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달에 관한 향가, 고려가요, 시조 등에서 선정해 장을 나누었다. 이미희의 의도와 구성은 참신하며 작품에 대한 신비성을 높였다. 하지만 춤의 안무는 그 의도를 십분 따라주질 못한 감이 있다. 무용수들의 테크닉은 손색없으나 작품의 길이가 필요이상으로 길어 무용수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지쳐보였으며, 되도록 춤을 많이 보여주려는 안무가의 생각도 보인다. 하지만 체력보다는 작품에 대한 숙지가 안 돼 있기 때문에 쉬이 지칠 수 있는 부분이 더 커 보였다. 이는 무용수들을 보는 관객에게도 전달됐기 때문에 관객들 역시 같은 기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문제는 무용수확보가 어려운 시기에 충분한 시간이 없었음을 감안한다면 보완을 거친 후에는 안무가의 의도가 십분 반영된 무대로 실현되리라 확신한다.
이번 공연에서 강한인상을 준 요소는 기와지붕 모양으로 매달린 오브제다. 달을 닮은 은빛의 스탠 재질의 곡선은 매달린 위치에 따라 지붕에서 초승달로, 또 나룻배 등으로 그 모양을 달리해 한국인의 자연관이 어떻게 건축미에 반영 했는지를 일깨워 준 흥미로운 장면들을 연출한다. 거기에 등장하는 로봇다리는 자연미에 반하는 테크놀로지의 상징이다. 하지만 단청무늬처럼 알록달록한 빛색의 그 걸음걸이는 한국적 디딤새를 닮도록 고안했다.
이번 공연에 가장수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처음으로 공연예술을 체험한 기술협력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생들일 것이다. 바라기는 이들과의 교류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말고 예술적 협업자로 지속해나가 상호간의 안목을 넓히는 작업으로 발전해나가기를 바란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한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상호 협력을 통한 작업이야 말로 진정한 융복합공연이며 이미희는 이미 과거의 이 같은 작업들을 통해 그 누구보다 이 분야의 최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인류가 이미 달을 갔다 온 이상, 그리고 테크놀로지를 무대에 끌어들인 이상, 달을 보며 상상한 과거이야기 만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다. 때문에 오늘날의 달에 대한 시각에 대한 반영 역시 어느 식으로든 필요할 것이다.
아직은 생소한 이 분야에 지금의 실행착오와 지적사항은 당연하며, 논란을 제공하는 작품임은 틀림없다. 따라서 테크놀로지를 통한 예술춤의 발전과 대중화에 기여하길 바라는 안무가에게 거는 희망은 크다.

* 2014 김운미쿰무용단 소극장 기획공연 「묵간」 열여섯번째(10월18일 M극장)
2014 묵간 소극장 공연의 주제는 포레스트(FOREST=For Rest)다. “숲 안에 있으면 숲 전체를 볼 수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창작가란 안과 밖 모두를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로써 이번 묵간의 주제인 포레스트는 그 어느 때보다 의미심장하다.
첫 번째 작품의 경우, 『동상이몽-이중적 고찰』은 세 여자(박진영, 김재은)와 두 남자로 시작한다. 벽에 붙어있는 두 남자에게 손을 내미는 여자들 중 자신에게도 손을 내밀어줄 것이라 생각했던 한 여자는 그러나 소외된다. 멀쑥해지는 여자. 예쁘장하기까지 한데 말이다. 이윽고 두 남자(오정무, 박진범)의 등장 그리고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 올리자 여자는 곧 남자(박준하)로 변신한다. 전주부터 예사롭지 않은 설정은 착각 속에 살고 있는 나르시스적인 환상속의 단면이다. 하지만 노랫말처럼 “제멋에 겨워서”는 우리네의 흥이요, 삶의 원동력이지만 이로 인해 남에게는 불편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장장 5장의 인간관계로 표현했다. 변화 때마다 플롯의 대금과 같은 연주기법 혹은 탭소리의 청각적 자극은 이 극의 ‘흥‘을 극대화 시킨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투명인간적인 자아에 대한 존재감 없는 존재를 표현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회악에 대한 고발로 받아들여진다. 그 이유는 안무가가 사용한 소품들이 단순히 존재감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강렬하기 때문이다. 무용수들 간에 정지 상태로 있을 때 뽀로로 무늬가 가득한 후드를 입은 투명인간(조의연)은 우습기보다는 불길하다. 그는 불특정인에게 권총을 쥐어준다던지 보지 못한 틈을 타 상대방을 때린다던지 해서 서로를 이간질 시킨다. 우리가 흥분하고 분노하고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 얼마나 많은가. 무의식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속에는 분명 악의 존재가 있다는 안무가의 설정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프로그램상의 작품의도와는 사뭇 다른 나만 그런 걸까. 한 명의 여자(조은비)와 네 명의 남성군무(문성희, 박상규, 한우리)의 구성은 느와르적이어서 마지막에 관객을 향해 겨누는 총부리는 일종의 엄중한 경고이며 ‘다음은 네 차례다’라고 말하는 것 같이 위협적이다.

임해진의 『별별순간』은 『가장 보통의 존재』와는 반대로 남자 무용수 한 명 그리고 여자 무용수 넷의 구성이다. 빗방울의 떨어짐과 같은 피아노의 멜로디와 이를 누르는 듯한 현의 지긋함에서 느낄 수 있듯, 여자(임해진)가 바라보는 남자(양지수)를 통해 사람과 사람끼리의 관계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란, 극히 추상적이며 주관적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의 자아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길게 이어진 치마를 입은 세 명의 무용수(이지은, 강소연, 전미라)들을 통해 표현된다. 이들은 서로 뭉쳤다 풀었다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가끔은 감정을 표출하려하나 다른 면의 내가 이를 막는 듯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마치 내면속에서의 갈등과 다툼이 어색함으로 표출되듯. 끝내 치마를 벗어던지면서 신명나는 타악 연주에 맞추며 몸을 맡기는 순간 표현역시 자연스러워지며 끝을 맺는다. 쿰 무용단의 공연을 여러 차례 보다보면 전반적으로 형식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바로 갈등의 구조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로 종결한다는 점이다.

* 유니버설발레단의 『춘향』(9월25~26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춘향』은 신작은 아니지만, 새롭게 재개편하여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올랐다. 보리스 에이프만의 작품들처럼 기존의 클래식음악이나, 트와일라 타프처럼 대중음악을 모아 주크박스 형식의 작품으로, 혹은 오페라 『나비부인』의 선율로 동명의 발레를 안무한 등등의 작품들이 있기 때문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맞춘 유니버설발레단이 시도한 『춘향』의 작품형식은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춘향』이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공통점이 없을 법한 동서양의 작품을 접목시켰다는 점, 동양의 소재를 서양의 고전 음악에 절묘하게 맞추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모르긴 해도, 『춘향』이 최초 시도일 것이다. 더 나아가 『춘향』을 통해 동 서양의 요소를 절충하는 새로운 작품들이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써 유니버설발레단의 『춘향』은 빛나는 것이다.
‘효(孝)’를 기치로 한 『심청』이 동양의 신비를 보여주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춘향』은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을 주제로, 『지젤』, 『돈키호테』, 『스파르타쿠스』등의 요소를 차용했기 때문에 차이코프스키 음악과의 조합이 무리 없었다.

첫 공연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와 김주원 팀으로 개막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콘스탄틴의 이국적인 외모로 이몽룡을 어떻게 소화해 낼지가 관객들의 관심사 이면서도, 다른 팀에 비해 관심을 덜 받을 수도 있는 요소다. 하지만 막상 콘스탄틴의 춤을 보노라면 시종 춘향 못지않게 움직임이 ‘가볍다’라는 형용사가 떠오를 정도로 이팔청춘의 몽룡에 가장 적합했으며, 젊음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무용수다. 김주원 역시 가냘픈 춘향으로, 콘스탄틴의 파트너로서도 손색없었다.
『오네긴』에서와 마찬가지로 엄재용, 황혜민 커플은 연기력 면에서 가장 원숙미를 보여주었다. 사실 엄재용이 다른 두 몽룡에 비해 테크닉과 체력 면으로 가장 불안정하게 보였지만, 그럼에도 춤 역시 연기임을 보여준 좋은 예이기도 하다.
마지막 공연을 장식한 이동탁, 강미선 팀은 테크닉 면으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으며, 이동탁의 강한 마스크를 이용한 여타의 팀과 차별화 된 몽룡을 보여주었다. 강미선의 경우, 깔끔한 테크닉을 자랑 하지만 캐릭터 표현에 있어서는 과감해 보이지 않았다.
덧붙이자면 장원급제 장면에서 부분솔로를 맡았던 강민우 역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차기 몽룡 으로서의 발전가능성이 엿보인다.
할리퀸 역할이라 할 수 있는 방자와 향단의 장면 역시 방자의 연기력이 관건이며, 서동은과 김나은의 호흡은 만담을 보는 듯한 재미를 연출했다. 민홍일과 송호진의 파트너십도 동일한 재미를 제공했으며, 후반부에 갈수록 이들을 볼 수 있는 비중이 낮아져 아쉬웠다 .
총 세 팀의 비교를 남자주역 (몽룡)을 중심으로 언급하게 되는 이유는, 오늘날 발레에서 발레리노의 위상에 대한 변화다. 이미 춘향의 원전에는 운명에 수동적인 가냘픈 여성적 캐릭터와는 달리, 자기주도적인 인물이지만, 영화와 같은 매체로 옮겨가면서 수동적인 여인으로 변질되었다. UBC 역시 춘향의 캐릭터가 발랄하지만 수동적인 캐릭터로 설정되었으나, 몽룡이 능동적인 캐릭터로 상호 보완하는듯하다. 아무래도 역동성이 서정성보다는 눈에 쉽게 띄기 마련인데, 한 예로 ‘장원급제’와 ‘어사출두’의 남성군무와 몽룡의 피루엣은 관객을 압도한다.
무용수들의 활약을 극대화하게 만드는 것은 조명과 의상이다. 그런데 장면의 변화와 인물의 동선을 조명이 못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