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수상- 작은 배가 있었네

이십을 네 곱한 것에 더해 일곱 해 이전에 우리의 조상들은 이 대륙 위에 하나의 새로운 나라를 출산했습니다. 자유 속에서 잉태되었고, 모든 인간들은 평등하게 만들어 졌다는 명제에 삼가 바쳐진 나라를.
(Four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1863년 11월19일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펜실베니아주의 작은 도시 게티스버그(Gettysburg)에서 단 2분가량 되는 10문장, 271단어의 연설을 하였다. 1861년 시작된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를 거둔 격전장이었던 게티스버그에서는 2만 명의 남군 군인들과 2만3천 명의 북군 군인들이 사상 당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연설은 바로 이 곳에 전사한 군인들을 위한 묘지를 만들면서 추도식을 위해 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63년 8월28일 링컨기념관이 있는 워싱턴 디씨에는 25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여전히 차별 받고 있던 흑인의 지위를 이유로 시위를 하였고, 이 곳에서 마르틴 루터 킹 쥬니어 목사(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는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로 시작되는 연설을 하였으며, 이를 지켜보던 케네디 대통령(John Fitzgerald Kennedy 1917 ~1963)의 발의로 다음 해, 인종에 따른 차별과 각종 소수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1964년 시민권법(The Civil Rights Act of 1964)」이 제정되게 되었다.
링컨은 위 연설에서, 미국이란 자유의 이념에서 잉태되었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바쳐진 나라라고 정의하면서 말문을 연다. 미국이 탄생한 지 이십을 네 곱하고 다시 일곱 해가 지났다는 것은 네 세대 가량이 지나고 다섯 세대 째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유와 평등 하면 우선 프랑스의 자유(la libert? freedom), 평등(l’럊alit? equality), 박애(la fraternit? brotherhood)의 세 가지 모토가 떠오르는데, 링컨이 게티스버그로 이동하면서 탔었던 4량의 기차에도 이를 상징하는 청색, 백색, 적색의 띠가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대법원 건물의 정면 현관 위에는 “자유”, “평등”, “정의”라는 세 단어가 돌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기도 하다.
링컨은 우리가 어머니의 자궁 없이는 잉태될 수 없듯 자유 없이는 미국이 잉태될 수 없었으니 자유란 미국의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고 말한다. 한편, 평등의 개념이란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라고 암시하면서, 그것은 우리가 처하여 있고 실행되고 있는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해야 달성할 수 있는 한 명제이며, 그것이 우리의 실천적 과제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미국의 탄생은 잉태되고 그리고 나서 출산되는 아이의 탄생과정에 비유되어 있는데, 만약 그리스도교적 의식에 따른다면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를 하느님에게 바친다거나 하느님의 자식임을 확인한다는 의미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나, 여기서 링컨은 그렇게 새롭게 태어난 나라를 바치는 곳이 신이 아니라 평등이라는 명제 앞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하나의 위대한 시민전쟁을 하는 중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나라, 혹은 어떠한 나라이든 그렇게 잉태되고 그렇게 삼가 바쳐진 나라가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여부를 시험하는 전쟁입니다.
(Now we are engaged in a great civil war, testing whether that nation, or any nation so conceived and so dedicated, can long endure.)

링컨은 선조들이 세운 나라가 어떠한 이념에 따라 세운 나라인지에 대하여 첫 문장을 시작한 다음 두 번째 문장에서 바로 전쟁 이야기로 들어간다. 현재 커다란 혹은 큰 의미를 가지는 위대한 전쟁 중에 있는데, 그 전쟁이란 선조들이 세운 그 나라, 혹은 다른 어떤 나라가 되었든 선조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이념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링컨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은 한 특정 국가에 머물지 않고 전 인류적으로, 숭고한 이념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가 존속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즉,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단순히 머리 속에 머물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 구현되었을 때, 그것이 심각한 도전을 이기고 버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편 “testing” 이라는 어휘는 시험에 들게 한다는 식의 기독교적인 색채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한 사안을 판단함에 있어 마치 실험에 나선 과학자와 같이 모든 경우를 검증해 보는 법률가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그 전쟁의 한 위대한 격전장에서 만났습니다. 우리는 그 전장의 한 부분을, 그 나라가 존속할 수 있도록 여기서 그들의 목숨을 바친 이들을 위한 마지막 안식처로 삼가 바치고자 왔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하여야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당하고 적절합니다.
(We are met on a great battle-field of that war. We have come to dedicate a portion of that field, as a final resting place for those who here gave their lives that that nation might live. It is altogether fitting and proper that we should do this.)

연설의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문장은 마치 영화에서 줌인(zoom-in) 하는 것과 같이 이야기 되고 있다. 즉, 시민전쟁에서, 격전장으로, 그리고 그 가운데 전사자들을 위한 장지로 제공될 그 전장의 한 부분으로, 문장이 바뀔 때마다 그 시야를 좁혀 들어가고 있다.
링컨은 네 번째, 다섯 번째 문장에서, 그 격렬한 전장의 터에 모인 이유가, 바로 자유 위에 서 있고 평등의 이념을 추구하는 그러한 나라가 존속할 수 있도록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안식처로 그 한 부분을 삼가 바쳐 봉헌하기 위한 것이고,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알맞고 적절하며, 그렇게 하여야만 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링컨이 이 짧은 글에서 “dedicate”라는 말을 벌써 세 번째나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장에 쓰인 “dedicate”는 조상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평등이라는 명제에 삼가 바쳤다는 것이라면, 지금 쓰는 “dedicate”는 그 날 모인 사람들이 전장의 일부를 안식처로 삼가 바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링컨은 당시 수행하고 있는 전쟁과 그 전쟁에서의 추도식,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의미에 대하여 아마도 일종의 종교적 봉헌의 문제와 결부시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우리는 이 땅을 삼가 바칠 수도 없고, 축성할 수도 없고, 신성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살았거나 죽었거나 여기서 투쟁하였던 용감한 이들이 이 땅을 이미 축성하여 왔던 것입니다. 보태거나 빼거나 할 뿐인 우리의 미약한 힘을 훨씬 넘어서.
(But, in a larger sense, we can not dedicate-we can not consecrate-we can not hallow-this ground. The brave men, living and dead, who struggled here, have consecrated it, far above our poor power to add or detract.)

이 여섯 번째 문장에서 네 번째의 “dedicate”가 나온다. 삼가 바치는 것의 의미가 우리가 이 땅을 바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의 짧은 다섯 문장 이후에 링컨은 순조롭게 이어져 오던 자신의 논지 혹은 일반적으로 단순히 생각할 때 이르기 쉬운 논지인, 전장을 전사자들의 묘지로 바친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제시하고 이를 부인한 다음 그 이유를 설명한다.
즉, 그 곳에 모인 이들이 그 전장을 삼가 바치거나 축성하도록 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전장이 전쟁에서 사상을 당한 사람들에 의하여 이미 축성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묘지터가 이미 축성되어 있다면, 그들은 그 곳에 왜 모인 것일까. 무언가 삼가 바쳐서 봉헌하여야 할 것인데, 무엇을 그렇게 하여야 하는가.

세계는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것에 대하여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고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그들이 여기서 한 것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삼가 바쳐져야 하는 것은 차라리 산 자인 우리들입니다. 여기서 싸웠던 이들이 여기까지 멀리, 그렇게도 고귀하게 나아왔던 그 미완의 임무에 대하여.
(The world will little note, nor long remember what we say here, but it can never forget what they did here. It is for us the living, rather, to be dedicated here to the unfinished work which they who fought here have thus far so nobly advanced.)

링컨은 마침내 아홉 번째 문장에서 삼가 바치는 것은 이 게티스버그의 묘지터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아홉 번째 문장에 이르러서야, 링컨이 의미하고자 하는 바의 다섯 번째의 “dedicate”가 나오는 것이다. 링컨은 이 전쟁에서 이기자고 말하지도 않고 이 전쟁에서 이기면 어떤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전쟁에서 사상 당한 이들이 한 일을 세계가 결코 잊지 않듯이, 자신들이 바로 그들이 한 일을 마저 하여야 하는 임무에 자신들을 삼가 바쳐야 한다고 말한다.
아홉 번째 문장은 기·승·전·결의 전개방식에서 결의 서두에 해당하는 부분이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정-반-합(正-反-合. Thesis-Antithesis-Synthesis)에서 합에 해당하는 곳의 말문을 여는 부분이다. 여섯 번째 문장의 반전 혹은 부인으로 인하여, 여덟 번째 문장에 이르러서는, 그 자리에 애써 모인 수 많은 사람들과 링컨 자신이, 만약 단지 이 묘지터를 봉헌하고 온 것이라고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