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연속수상

산 속에서 양떼를 몰며 양들을 먹이는 양치는 일은 마치 수양을 하며 도를 닦듯 사람들과 떨어져서 외로이 지내는 일이라 어떤 이들에게는 즐거움이기도 하였으나 어떤 이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기도 하였던 것 같다.
미국의 야생보호주의 작가인 존 뮤어(John Muir 1838~1914)는 1869년 캘리포니아주 시에라 산맥의 숲에서 양떼를 따라 갔던 경험을 “시에라에서의 나의 첫 여름(My first summer in Sierra)”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떠돌아다니는 이들에게 그토록 골칫거리가 되는 빵의 문제에 대하여 조바심스럽게 되씹으면서, 나는 마치 야생의 동물들처럼 여기 저기 씨앗들과 열매들 같은 것으로부터 식량을 얻고 돈이나 들고다니는 짐으로부터 신나게 독립하여 한가로이 거닐며 산을 오르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믿으려 노력하고 있던 중, 양 떼의 주인이며 내가 몇 주 동안 그를 위해 일하였던 적이 있는 딜레이니 씨가 나를 찾아와서 그의 목동과 양떼와 함께 메르세드 강과 투올룸 강의 상류지까지 가는 일에 나를 고용하겠다고 제의하여 왔다. 바로 내가 가장 마음속에 두고 있던 지역이었다. 나는 내가 지난여름 요세미티 지역에서 그 보물들을 맛보았던 산들 속으로 나를 데려다 주게 될 일이라면 어떠한 종류의 일이라도 받아들일 의향으로 있었다.”

이렇게 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나는 이가 있는 반면, 산 속에서의 외로움을 쉽게 참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마을 근처에서 양떼를 치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서너 차례 ‘늑대다! 늑대다!(Wolf! Wolf!)’하고 소리쳐서 마을 사람들을 오게 하였다. 그의 이웃 사람들이 그를 도우러 왔을 때 그들이 힘들게 온 것을 보고 그는 웃었다.”

고대 그리스의 우화작가인 이솝(Aesop BC.620~564년 경)의 이야기 “양치기 소년과 늑대(The Shepherd’s Boy and Wolf)” 속에 나오는 이 양치기 소년은 얼마나 심심하였던 것일까. 또래의 아이들과 놀지도 못하고 혹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함께 일하지도 못한 채, 친구들과 떨어져서 혼자서 양을 보고 있는 것이 그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는 내면에 침잠하는 성격의 아이이기 보다는 사회적인 성향의 아이였을 수 있다. 영어로 ‘boy’ 소년이라고 되어 있으니, 나이가 몇이나 되었을까. 초등학교나 기껏해야 중학교쯤 다녀야 할 어린 나이이지 않았을까. 말하자면 그 아이가 오히려 보살핌을 받아야 할 아이였을 것이다. 영국에서조차 19세기경이나 되어서야 소년의 공장 노동이 금지 혹은 제한되었다지만, 아이는 그러한 양치기의 노동이 아마 힘에 겨웠던 것이다.
그에게 “늑대다(Wolf!)”라고 하는 것은 우선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오게 하여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는 열쇠와 같은 것이었다. 그 말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마법의 언어였다. 누구에게나 그러한 종류의 마법은 필요하다. 특히 사랑을 필요로 하는 어린 나이에는 더욱. 그 마법은 소년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는 그 마법을 세 번 혹은 네 번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후로 그 마법은 더 이상 듣지를 않았다. 마법의 물약에도 시효가 있고 면역이 있는 것이다. 일정한 회수를 다하거나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그 마법은 변질된다. 그 열쇠는 더 이상 자물쇠에 들어맞지 않고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무엇이든 변질된다. 항속적인 것은 없다. 무형의 언어라고 하더라도 닳지 않는 것은 없다. 연인들 사이에서 오가는 사랑의 언어조차도.

“그러나, 마침내 늑대가 실제로 나타났다. 소년은 이제 정말 공포에 질려서 소리쳤다. ‘제발요, 와서 도와주세요. 늑대가 양들을 죽이고 있어요(Pray, do come and help me; the Wolf is killing the sheep.)’ 그러나 누구도 그의 외침에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말은 실현의 힘이 있다. 세 번 혹은 네 번으로 그 말은 그 말이 의도하는 것을 부른다. 사람들이 그 말로써 의미하고 얻어내었던 것과는 별도로, 말은 그 자체로서 가지고 있는 권능을 부린다. 그것은 사물을 소환하고 일을 벌이고 사건을 일으킨다.
결국 소년이 “늑대!”라고 외치면서 부른 것은 사람을 부른 것이 아니라 늑대를 부른 것이었다. 소년은 사람을 부른다고 생각하였지만 그 말은 사람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늑대를 부르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자신들을 부른다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은 늑대를 부르는 것이었다.
소년의 외침에는 강렬한 힘이 있었다. 소년은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인상적인 말을 찾아내고 외쳤던 것이다. 그것도 바로 자신의 직업과 관련하여. 그것은 마치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관심어, 검색어를 배치하고, 최다 조회수, 최다 덧글수에 집착하는 그러한 것과도 유사하다. 소년은 그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을 찾았고 실행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금새 그 강렬함을 잃어버리고 만다. 아무리 효과가 좋은 약이라고 하더라도 투여하는 회수가 거듭될 수록 그 약효는 떨어지고 마침내 없어진다.
우리는 흔히 어느 하나의 말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란 거의 없다. 사람들마다 받아들이는 의미가 모두 다르고, 사람 아닌 생명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의미가 모두 다르며, 모든 사물들에 대하여 역시 그 말은 서로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어느 한 동작의 의미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년이 “늑대”라고 말하였을 때 그것은 우선 늑대에게는 바로 자신인 늑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년에게는 그것이 관심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사람들에게는 위험 혹은 구조의 의미가 되는 것이었다. 한편 양에게는 그 말은 급박한 죽음을 의미하거나 혹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리고 늑대가 다가옴으로 인하여, 죽음이 점점 가까워 오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마법 같으면서도 강렬하고 다양한 의미를 갖는 말일수록 그것은 비밀의 영역에 속하거나 벽감에 두어야 할 성체와 같은 속성을 지닌 것일 수 있다. 그는 말하지 않았어야 할 것을 말한 것이다. 입 안에 마음속에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할 것을 바깥으로 꺼내어 빛 바래게 한 것이며, 돌아보지 말아야 할 것을 돌아보아 사라지게 한 것이다.
모든 것에는 반작용이 있다. 반작용의 법칙은 물리학의 법칙만은 아니다. 그리고 마법에조차도 반작용이 있다. 이제 사람들은 소년이 “늑대”라고 부를 때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늑대”와 관계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들의 방문을 원하는 의미의 외침이라고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이전처럼 놀라서 구조하러 찾아가는 것을 그만두는 것에 그치지는 아니하였다. 마침내는 소년의 말 모두를 믿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솝 우화는 이렇게 끝맺고 있다.

“거짓말쟁이를 믿는 일이란 없다. 심지어 그가 진실을 말할 때라도.(There is no believing a liar, even when he speaks the truth.)”

종종 거짓말이란 그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보들레르는 프랑스의 조각가 에르네스트 크리스토프(Ernest Christophe 1827~1892)의 조각 작품인 「인간의 희극(La Com럅ie humaine)」을 묘사하며 쓴 시 “가면(Le Masque)”에서, “너의 거짓말이 나를 도취시킨다. 그리고 나의 영혼은 고통의 신이 너의 두 눈으로부터 솟구치게 하는 물결들에 빠져든다.(Ton mensonge m’enivre, et mon 뎜e s’abreuve / Aux flots que la Douleur fait jaillir de tes yeux!)”라고 쓰고 있다.
무대에 올려지는 지어낸 대사들과 지어낸 몸짓들은 이렇게 우리를 도취시키고 젖어들게 하고 몰입시키는 것이며, 그렇게 거짓된 표현들은 우리를 매혹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한 가지는 그 요소로만 존재하지 아니한다. 특히 그 하나의 요소를 전체적인 속성으로 하는 명칭을 붙이게 될 때, 그 요소는 그 요소 자체로만 바라보아지지 않고 그것이 마치 전체의 속성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된다. 즉, 거짓말이라는 요소는 그것을 하는 사람에 대하여 거짓말쟁이라고 명칭을 붙일 때 그것을 하는 사람에 대하여 마치 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인 것처럼 일반화되어 여겨지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거짓말쟁이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하여 거짓말만을 할 수는 없다. 또한 진실은 마치 거짓말의 반대말인 듯이 보이나, 꼭 그러하지는 않다. 명확하지 않은 것은 진실의 범주에도 거짓의 범주에도 들 수 없듯이, 진실과 거짓은 하나가 아니면 다른 하나가 되는 그러한 양분적인 반대개념이 아니며, 거짓말은 거짓에 관한 말이기에, 거짓말과 진실은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하는 용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쟁이라고 할 때는 진실, 모든 진실이 배제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오히려 거짓되고도 위험한 것이다.

말은 그 자체로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말이 “늑대”라고 할 때, 늑대는 오기도 하고 오지 않기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하게 만들어진 말일 수록 여러 가지 수식이 붙거나 여러가지 동사로 결론지어지거나 갖가지 주어를 동반하게 될 수가 있다. 또한 말은 곧잘 그 순서도 바꾼다. 가령 “무엇 없는 무엇”이라고 할 때, 원래 뒤의 “무엇”이 수식 당하는 주체로 시작하였지만, 어느 순간 어느 맥락에서는 두 개의 “무엇”이 자리바꿈하여 오히려 원래의 앞의 “무엇”이 같은 동사에 수식 당하는 주체가 될 수도 있다. 주어진 말을 한 사람에게서 다른 한 사람에게로 차례차례 전하여 가는 소위 말이어가기 놀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