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시향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는 3월 3일 화전(花煎) 놀이로, 진달래 꽃을 따서 찹쌀 가루에 섞어 참기름에 지져 먹었습니다. / 역시 두견전병(杜鵑煎餠)이라고 하여 진달래 꽃을 듬성듬성 박아서 만든 전병이 있었고, 두견주(杜鵑酒)라고 진달래 꽃을 넣어서 빚은 술이나, 두견채라고 하여 진달래 꽃에 녹말을 씌워 약간 데쳐서 찬 물에 넣었다가 꿀물에 넣은 화채도 있었습니다만, 왜 그런지 요즈음은 이런 정서(情緖) 있는 풍속들이 점점 없어져 갑니다
… (중략) …
진달래는 진달래과(石南科)의 식물로서 우리나라에 39종이 있습니다. / 이 꽃은 남으로 제주도 한라산(漢拏山)에서 북으로 백두산, 그리고 옛 우리의 영토(領土)였던 만주에 이르기까지 피어 있는데, 꽃의 품(品)이 젊고, 뭇 꽃들이 피기 전에 먼저 꽃피는 선구자(先驅者)적인 것이 좋아서, 우리나라의 국화(國花)로서 삼는 것이 어떨까 하는 학자들의 의견이 나왔던 일도 있습니다.”
- 조동화, 『사랑의 꽃 이야기』(영민사, 1973)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 주~~”

김동환의 시에 김동진이 곡을 붙인 가곡, 「봄이 오면」이지요. 네 오늘은 진달래 꽃과 진달래 시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봄이 오면 온 산에, 한라에서 백두까지 아니 먼 옛날 우리의 영토였던 만주까지 삼천리 금수강산, 뭇 꽃들이 피기 전에 먼저 꽃을 피우는 꽃. 두견화(杜鵑花), 산척촉(山), 산석류(山石榴), 참꽃, 산철쭉 등으로 불리는 꽃.

당나라 때 백거이(白居易)가 친구 원구(元九)에게 보낸 시편들 중에서, 「산석류기원구」(山石榴寄元九 ; 원구에게 보내는 산석류)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山石榴(산석류) 산석류를
一名山(일명산척촉) 산척촉이라 부르기도 하고
一名杜鵑花(일명두견화) 두견화라고 부르기도 한다네
杜鵑啼時花撲撲(두견제시화박박) 두견이 울 때마다 꽃이 활짝 피는데
九江三月杜鵑來(구강삼월두견래) 구강의 삼월에 두견이 날아와
一聲催得一枝開(일성최득일지개) 한 번 울 때마다 한 가지씩 꽃을 피운다네

그러니까 당나라 이전 이미 오래 전부터 진달래가 두견화로 불려졌다는 것인데요. 이와 관련해서 중국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다음의 전설은 그 중 하나입니다.

위(魏)나라에게 나라를 빼앗긴 촉(蜀)의 망제(望帝). 그의 이름이 두우(杜宇)였지요. 망명객이 된 두우는 반드시 돌아가리라, 나라를 되찾으리라, 와신상담 이를 갈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객사하였고, 그 원귀가 새로 변한 것인데 후세 사람들이 두우의 이름을 붙여 두견새라 불렀다고 합니다. 원한에 사무친 두견새가 “귀촉! 귀촉! 귀촉도!” 촉나라로 돌아가리라(歸蜀)! 하면서 밤낮없이 피를 토하며 우는 것인데, 그 피가 스며들어 선홍빛 꽃이 피었으니 그게 바로 진달래라고 합니다. 두견새를 귀촉도(歸蜀道) 혹은 귀촉도불여귀(歸蜀道不如歸)라고 부르고, 진달래를 두견화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런 전설에 기인한 것이고요. 백거이가 두견이 한 번 울면 진달래 가지에 꽃 하나 핀다고(一聲催得一枝開) 노래한 것도 그런 전설에 기인한 것이겠지요.

눈물 아롱아롱
피리불며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오는 서역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리

신이나 엮어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나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 서정주, 「귀촉도」 전문

서정주의 시, 「귀촉도」도 남녀의 별리지한(別離之恨)을 그린 것이지만, 두견새와 두견화 전설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지요.

산척촉(山)이란 이름은 산에 피는 척촉()이란 것인데요. 척촉은 글자 그대로, 가던 걸음을 머뭇거리게()할 만큼 아름다운 꽃이란 것인데, 철쭉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철쭉이란 이름이 바로 척촉에서 연유되었다는 설도 있지요. 하여튼 철쭉과 진달래는 그 모양새가 무척 닮았는데요 닮았을 뿐 다른 꽃입니다.
이 산 저 산 진달래가 피고 지면, 이 들 저 들 철쭉이 뒤를 이어 피는 것이지요.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서 “참꽃”, 철쭉은 먹을 수가 없어서 “개꽃”이라 불렀지요.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었다 꽃이 지면서 잎이 나오는데, 철쭉은 잎보다 먼저 혹은 잎과 함께 꽃이 피지요. 그렇게 진달래와 철쭉은 닮은 듯 다른 꽃입니다.

서두에 인용한 조동화 선생의 글에서 진달래를 “뭇 꽃들이 피기 전에 먼저 꽃피는 선구자(先驅者)적”인 꽃이라 했지요. 진달래를 정말로 선구자로 비유한 시가 있습니다. 월북 시인 박팔양의 「너무도 슬픈 사실」이라는 시인데요. 남녘에 김소월의 진달래가 있다면 북녘에는 박팔양의 진달래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날더러 진달래꽃을 노래하라 하십니까
이 가난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녈픈 꽃을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로 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 꽃을
무슨 말로 노래하라 하십니까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친구께서도 이미 그 꽃을 보셨으리다
화려한 꽃들이 하나도 피기도 전에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 있는
봄의 선구자 연분홍의 진달래꽃을 보셨으리다

진달래꽃은 봄의 선구자외다
그는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외다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그 엷은 꽃잎은
선구자의 불행한 수난이외다

어찌하야 이 나라에 태어난 이 가난한 시인이
이같이도 그 꽃을 붙들고 우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이외다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오라는 봄의 모양을 그 머리속에 그리면서
찬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서 오히려 웃으며 말할 것이외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고
- 박팔양, 「너무도 슬픈 사실 -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전문

1930년 「학생」誌에 발표한 작품인데요. 김소월의 “진달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진달래”이지요.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는 대목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것인데요. 일제의 수탈 속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다 스러져간 숱한 선구자들, ‘하로 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 꽃’들을 노래하고 있는 것인데요. 어떤가요?

박팔양의 진달래를 읽다보면 또 떠오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80년대 해마다 4월19일이 되면 수유리 4·19탑까지 행진하면서 부르던, 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부르던 노래. 네. 이영도 시인의 시, 「진달래」입니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爛漫히 멧등마다,
그 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련戀戀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山河. - 이영도 「진달래」 전문

4월 혁명에 스러져간 젊은이들을 진달래의 꽃사태로 비유한 것인데, 한 때 이 시가 북한의 국화인 “진달래”를 찬양했다고, 반체제를 선동하는 시라고, 정부 당국에서 교과서에 싣지 못하게 하는 웃지 못 할 촌극도 있었지요.

그러나 누가 뭐래도 진달래 하면 떠오르는 건 김소월이지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지요. 시를 전혀 모르는 사람조차도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알지요. 전문을 다는 몰라도 한 구절 쯤은 알지요. 독일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가 있다면 한국에는 김소월(1902~1934)이 있지요. 릴케가 장미라면 김소월은 진달래꽃이지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전문

곧 봄이 오겠지요.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두견새 울겠지요.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 주~~”
진달래 화전에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면서 “봄이 오면”을 흥얼거리면 겨울의 시름도, 실연의 아픔도,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그런 게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