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현 정부 들어 문화융성을 주요 국정지표의 하나로 발표하고, 이를 법제로 실현한 「지역문화진흥법」 등이 지난해 시행된 이후 각 지역에서는 생활문화 ‘열풍’이 불고 있다. 열풍의 진원지는 지역에서도 기초지자체들이다. 시군구와 산하 문화재단들은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문화동아리를 발굴해 공간과 강사 등을 지원하고 있고, 시의회에서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지역은 수도권의 지자체들이다. 그 중에서도 경기 성남문화재단은 「사랑방문화클럽」이란 프로젝트를 가동해 성남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클럽(동호회)들의 자생적 활동을 유도하고 친목도모와 정보교류 등을 통해 네트워크를 활성화했다. 또 문화클럽들의 기량향상과 다양한 공헌활동도 유도함으로써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로 시민이 행복한 도시’ 성남을 만들고자 했다. 성남문화재단의 문화클럽 지원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클럽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1,103개의 문화클럽들이 자생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2007년 이들 중 클럽활동이 활발한 320개 문화클럽을 대상으로 요구분석을 통해 문화클럽 발전방안을 연구했다. 이를 기초로 30여 개의 문화클럽들이 참여한 가운데 클럽지기 모임(현재 사랑방문화클럽 운영위원회)이 시작되어 222개(2014년 2월 현재)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음악, 미술, 공예, 문학, 기행 등)의 문화클럽들이 사랑방문화클럽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사랑방문화클럽의 활동은 1년을 단위로 각 클럽들의 대표(클럽지기)들이 연초에 모여 한 해의 사업방향을 공유하는 1박2일 일정의 워크숍으로 시작한다. 이 곳에서 한 해 동안의 사업방향 및 사업일정이 공유된다. 사랑방문화클럽의 활동은 5월부터 10월까지 「사랑방문화클럽 한마당」 행사가 성남시 곳곳에서 진행되며, 한 해 사랑방문화클럽의 역량이 모여 10월 초에 「사랑방클럽 축제」가 개최된다. 연말에는 모든 클럽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한 해를 정리하는 ‘활동보고회’를 통해 한 해 성과와 문제점들을 도출해 차기 사업에 반영한다.
사랑방문화클럽의 조직은 정관에 따라 운영위원회가 있고, 그 밑에 활동기구들이 있다. 이러한 모든 활동의 주체는 문화클럽이고 성남문화재단은 어디까지나 지원역할만 맡고 있다. 재단은 문화클럽의 활성화를 위해·연습 및 공연·전시 공간 확충·회원들의 발전을 위한 전문가 교육·전국 및 세계네트워크 등 문화클럽의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
경기 부천문화재단은 올해 들어 ‘문화특별시’ 부천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생활문화진흥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우선 2011년에 시작한 어린이 청소년 대상 예술교육프로그램인 「아트밸리 사업」을 중장년 실버계층으로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최근 실시한 「부천아트밸리 사업」 운영만족도 조사 결과 학생 학부모 교사 등의 평균 만족도가 94%로 나타나자 이 사업의 대상을 늘린 것이다. 시민들이 취미수준으로 즐기는 문화예술활동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로 했다. 우선 음악 무용 연기 미술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인 「문화발전소」를 각 지역에 설치하고 문화동아리들에 맞춤형 강사를 파견하기로 했다. 또 3개동 별로 ‘거점형 무대’를 만들어 시민들이 2개월마다 작품발표를 겸한 거리공연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기량을 키운 예술인들이나 단체들이 경연을 펼치는 「생활문화페스티벌」을 매년 10월에 열어 ‘시민 스타’ 등용문으로 삼기로 했다. 부천문화재단은 「생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뿌리내리면 부천지역 문화예술동호인이 현재 8천 명에서 3년 이내에 1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천의 「아트밸리 사업」이 이처럼 탄력을 받게 된 것은 만화 영화 음악을 중심으로 부천시에 형성된 기존의 탄탄한 문화 인프라 덕분이다. 「아트밸리 사업」의 강사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천시립합창단, 한국만화가협회 소속 예술인들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부천은 지난해 10월 전국 기초지자체 중 처음으로 조례를 제정해 생활문화진흥의 모멘텀을 제공했다.
광역문화재단으로는 인천과 서울문화재단이 생활문화진흥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인천문화재단은 2012년부터 시민들이 참여하는 「인천왈츠-시민창작뮤지컬」을 운영해오고 있다. 시민들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춤과 노래와 연기를 배워 직접 무대 위에 서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은 “춤추는 서울”이라는 슬로건 아래 춤을 통해 삶의 활력과 공동체를 회복하는 생활문화프로젝트인 「서울댄스프로젝트」를 5월부터 10월까지 약 6개월간 서울 도심 주요 공간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우선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춤을 사랑하고 즐기는 100명의 시민 춤꾼인 ‘춤단’이 사전 춤 워크숍으로 춤의 즐거움을 익히고 건강한 춤 문화를 선도할 주역으로 나선다. 이어 커뮤니티와 춤이 만나는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며 춤을 통해 이웃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찾아가는 프로그램인 「춤바람 커뮤니티」를 거쳐 모든 과정과 의미를 공유하는 축제의 장인 「서울무도회」(9월28일, 선유도 공원)로 이 프로젝트의 막을 내린다. 「서울무도회」에서는 도시의 익숙함을 벗어나 일상의 공간을 재발견하고 삶의 공간이 축제가 되어 활력과 해방감을 맛볼 것이라는 게 서울문화재단 측의 설명이다.
중앙정부에서는 문화융성의 실현의 하나로 생활문화진흥정책을 펴고 있다. 문체부는 2014년에 생활문화센터 조성 사업을 전개해 지역의 유휴시설(폐교, 폐목욕탕 등) 및 기존 문화시설의 일부를 생활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을 지원했다. 이 공간들은 동호회의 연습·발표 공간뿐만 아니라 지역의 개성을 살린 특성화 공간으로 꾸며져 지역주민들의 휴식과 만남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110억 원의 예산으로 전국에 35개 시설의 조성을 지원했으며, 올해는 120억 원의 예산으로 30개 내외의 생활문화센터를 신규로 조성할 계획이다. 생활문화센터 조성사업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문화참여 기회 확대’ 차원에서 진행되는 사업이다. 문체부는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협력해 신규 조성사업과 동시에 개관되는 생활문화센터를 중심으로 컨설팅·프로그램 개발·아카데미 운영 등 생활문화센터 활성화를 위한 지원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러한 생활문화 열풍은 문화의 민주화에서 문화민주주의로 넘어가는 시대적 추세의 반영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자칫 현장예술가들을 소외시켜서는 ‘허풍’으로 끝날 수도 있다. 예술가들이 여기에 적극 참여해 ‘예술 창작-유통-향유’의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 예술가 개인이 자신의 창작공간을 생활문화공간으로 개방하는 것이다. ‘개인 기업 등 민간이 설립한 문화시설의 운영자가 주민 문화예술단체 또는 동호회에게 활동공간을 제공할 경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와 관련된 비용을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 「지역문화진흥법」(7조3항)을 활용해, 예술인들이 자신의 창작공간 일부를 생활문화 동아리 회원들에게 제공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임대료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해당 창작공간을 사용하는 생활문화 동아리 회원과 예술가들이 만나는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게 해주며, 전문예술가는 자연 여기서 예술강사나 컨설턴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에 생활문화동아리 회원들이 참여함으로써 예술 창작-향유의 선순환 고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선순환 고리는 그밖에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등 문화기반시설에서 이뤄지는 예술교육프로그램 등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 공연장의 체험적 연극놀이와 무용가 되어보기, 미술관의 화가수업과 사생대회, 박물관의 역사체험교실, 도서관의 글짓기대회와 시낭송대회 등에 예술가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생활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한편 ‘예술인 일자리 창출’이란 예술인복지의 목표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이런 사항들을 면밀히 검토해 정책과 사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모처럼 형성되는 생활문화 ‘열풍’이 ‘허풍’으로 끝나지 않고 예술창작 진흥의 물꼬를 터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