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마끼의 서울유레카

한국도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생활패턴의 변화도 가져 온다. 하여 혼자 사는 사람들은 24시 편의점을 말 그대로 편안하게 생각한다. 편의점은 그야말로 혼자 사는 사람들의 편의를 돌봐주는 천국(?)이다. 온갖 종류의 냉동식품과 인스턴트식품이 넘쳐난다. 대형마트나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신선식품은 기대하지 마시라. 딱 편의점 정도의 편의만 기대하란 말이다. 그렇지만 1인 가구의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온 나지만 좌절금지다. 서울도 점점 1인용 식품과 혼자만 갈 수 있는 식당도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나도 어느 새 불편함을 감수하며 아니 저 멀리 던져버리고 서울의 독신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내가 한국에 온 시기는 1989년 3월. 그 당시는 지방에서 올라온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하숙을 했다. 나는 작은 방에서 혼자 살았는데 같은 집에 사는 하숙생들이 자주 내 방에 놀러 왔었다. 내 방에는 그 당시 학생에게 사치이던 비디오장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방에 살아도 프라이버시가 없는 생활에 처음엔 여러 모로 귀찮았으나 어느 새 익숙해졌다. 유학생끼리 어느 하숙집 밥맛이 좋은지 정보 교환도 했었다. 같은 집 하숙생이 내 양말을 신어도 신경을 안 쓰게 되었지만 속옷만은 돌려받아 다시 빨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대로 즐거운 하숙생활이었다. 그 후에 직장 때문에 하숙집을 떠나 옥탑방에 혼자 살게 되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집안일을 혼자 다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서 대학생활을 보낼 때도 혼자 살아왔기 때문에 별 불편함이 없는 줄 알았으나 서울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일본의 그것과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집주인이나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내가 외국인인 탓인지 많은 관심을 받은 편이었던 것 같다. 결코 기분 나쁜 관심만은 아니었지만 가끔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가장 놀란 것은 내가 없을 때 집주인이 내 방에 들어왔던 일이다. 집주인 입장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그랬다는데 방 안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면 안 되는 물건들(그렇다고 나는 간첩이 아니다)이 있었기에 민망스러웠다.
더욱 당황스러웠던 일은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고 난 바로 다음날부터 사람들이 내 방으로 들이닥쳤던 일이다. 내가 자고 있건 밥을 먹고 있건 상관이 없었다. 혹여 사워를 하고 있었다고 해도…. 사람들이 내 방을 보러 내 방에 들어온다. 집주인이 열쇠를 가지고 있어서 아무 때나 방을 보러 온 사람들과 같이 들어온다. 일본엔 이런 경우가 없다. 전에 살던 사람이 방을 빼고 나서 깨끗이 청소하고 세입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방을 공개한다. 물론 한국에만 있는 전세제도 탓이긴 하다. 익숙해지면 큰 불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재한 외국인에게 불편한 시스템이긴 하다.

혼자 사는 외국인들이 느끼는 어려움 중 또 다른 하나는 한국 사람과의 친소관계에 대한 적정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자 사는 사람은 한가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나름대로 밤에 스케줄이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왜 그렇게 바쁘냐고? 나는 미리 할일을 정하고 스케줄대로 사는 편이다. 그래서 한국인 친구들과 가끔 안 맞는 경우가 있다. 퇴근 시간쯤이 되면 한국인 친구들에게 전화가 온다. 이른바 번개라는 술자리로 모여서 한잔하자는 일이 대부분이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여러 번 참석을 거절하면 상대방이 왜 그렇게 바쁘냐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바쁘다고 하면 바쁜 거다. 우린 이런 번개 문화가 익숙지 않다. 적어도 하루 전에만 통보를 해줘도 일정을 잡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던 적이 많다. 나만 그런가 싶어 알아보니 내가 아는 대부분의 일본인 친구들이 이런 고충을 토로한다. 갑자기 친구들에게 술을 먹자고 연락 오는 게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라고 한다. 한번 거절하였다고 일본인 친구가 사교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미리 약속을 잡으면 의외로 쉽게 승낙하는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미리 약속을 잡으려고 해도 여러 번 거절을 당했다면 교제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는 쪽이 좋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에게 특히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일 중의 하나가 식사문제다.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 음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다. 「고독한 미식가」는 시즌4까지 방영되었고, 「심야식당」은 시즌3가 얼마 전에 종영되었고 1월31일에는 극장판이 개봉되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는 이 드라마에는 요리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소개되지만 드라마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일본적인 부분을 들자면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혼자서 식사하는 장면이다. 정말로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가진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 일본은 고독한 사람들의 천국이다.
만일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인 이노가시라 고로가 서울에 왔다고 가정하자. 그는 어디에 가서 식사를 할까? 고깃집? NO! NO! 고깃집은 1인 손님을 잘 받지 않는다. 찌개도 2인분 이상이어야 하는 식당들이 많고…. 1인 손님은 환영 받지 못한다. 결국 이노가시라 고로가 편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은 패스트푸드점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외식문화에 관해서 아니 엄밀히 말해 끼니 해결을 위해 혼자 사는 사람들(한국인도 포함)이 넘어야 할 벽이 많다. 그래서일까? 혼자 사는 불쌍한 외국인의 끼니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함께 술도 먹고 밥도 먹자고 하는 한국인의 온정(?)이…. 그건 마음만이라도 정말로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서로가 가진 자그마한 문화차이를 인정해서 서로의 감정이 어긋나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다시 반복하지만 외로움이라는 건 개인차가 있다. 그 개인차는 외국인일 때 문화적 차이로 더욱 커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상만사 서로 다독이며 부딪칠 때 더욱 끈끈해지는 법, 차이를 인정하고 그들의 외로움과 고독에 다가서는 건 어떨까?
‘마끼’는 오늘도 서울에서 ‘나 혼자 산다.’(쪹)

※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시에서 3대째 이어오는 제과점집 차남으로 태어났다. 후쿠오카 규슈 공립대를 졸업하고, 1989년 고려대 대학원 경제학과로 유학하면서 서울 생활이 올해로 만 26년이 되었다. 틈만 나면 세계 여행을 즐겨하여 현재까지 50개국 이상을 다녔으며, 트랜스퍼 시간을 이용해 환승 도시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데 선수가 되었다. 낯선 곳을 혼자 여행하면서, 서울에서 ‘마끼’로 살아가면서 겪었던 불편함과 친절함 사이의 문화적 충돌, 그 소소한 발견의 즐거움을 기록하기를 좋아한다. 현재는 한국과 일본잡지에 영화 및 한류 관련 글 등을 쓰며 홍대 근처에 사글세를 얻어 혼자 살고 있다. 나름대로 훈남이라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호적이 깨끗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