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좌담

조동화 선생 1주기
김경애_이번 3월호로 「춤」지가 39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창간하신 조동화 선생님 1주기를 앞두고 있고요. 「춤」지가 탄생한 지 40여 년 동안 한국 사회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변화했지만, 그동안 무용계는 폭발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참 많이 변했습니다. 1980년대에 “춤의 르네상스”라는 말이 등장하고 이후 무용계가 급속도로 팽창했는데 그 초석이 조동화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조 선생님을 리더로 해서 중심 역군이었던 세대의 정점에 계셨던, 그렇게 무용계를 일군 두 분을 모시고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무용계가 어떻게 비상해서 지금과는 어떻게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후진들에게 주는 조언까지를 들어보겠습니다.
김복희_우리 두 사람을 포함해 우리 세대를 역군이라고 한다면 조동화 선생님 같은 분은 그런 역군들의 정신세계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가 책도 읽고, 대학에서 인문학을 배웠지만 그런 것을 갖고 확실히 전진할 수 있는 힘은 별로 없던 시대에요. 내 자신도 그랬지요. 그럴 때 어떤 생각을 갖고 무용을 해야 하고, 예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동화 선생님께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대에서 석사 학위를 준비할 때 조동화 선생님께서 논문 심사위원이셨어요. 그전까지는 선생님의 글은 많이 봤지만 직접 뵌 적은 없었는데, 논문을 준비하면서 찾아 가서 논문을 보여드렸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동아에 계셨어요. 선생님을 뵈면서 참 남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됐죠.
지금 세월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당시 1975년~1976년에는 무용 공연에 대사가 많았어요.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무용 공연에 대사를 많이 쓰면 “연극이냐 무용이냐”라고 하면서 지적하는 평론가들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대사가 없어졌는데, 요즘 다시 무용에 대사가 많이 들어가고 흐름이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결국 요즘 시대만 여러 생각을 갖고 무용을 하는 게 아니라 그 당시에도 르네상스 시대를 우리가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쭉 이어져 온 거죠. 단지 지금은 양적으로 팽창했을 뿐, 제 생각에는 실제로 우리가 고민하던 것에서 지금 특별히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때는 조동화 선생님 같은 분이 몇 분 계셔서 무용계에 정신적으로 힘을 주셨지만 지금은 무용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런 분들을 별로 찾아 볼 수 없어요. 또 요즘은 변화가 별로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에요.

춤 창작 정신에 있어서 무용가들에게 무척 공격적
국수호_그 이야기에 이어서 말을 하자면 지금의 후배 무용가들이 노력은 하고 있지만 독특하지 못하다는 거예요. 우리는 옛날부터 많은 노력을 하고, 경력을 쌓아서 지금 이만큼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에 기발한 전환점을 가져 온 「춤」지와 더불어서 사회 속에 막 던져지면서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였어요. 「춤」지가 “춤 창작 정신”에 있어서 무용가들에게 꽤 공격적이었어요.(웃음) 그런 공격과 변화 속에 우리는 살아남으면서 존재감을 가졌는데, 지금의 후배들은 그런 위기의식이나 존재감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어요. 그냥 사회에 편승해서 샐러리맨처럼 살아가는 시대가 되어 버려서 참 안타까워요.
「춤」지의 역할은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폭풍우가 치는 바다 같은 사회의 거친 파도처럼 무용가들을 사회로 내몰면서 채찍질을 하고, 생각을 하면서 춤을 춰야 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깨우쳐주는 것이었어요. 춤을 추려면 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만 명작으로 오래 남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조동화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어요. 그런 조동화 선생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저와 김복희 선생세대 아닌가 싶어요.
제가 1973년부터 국립무용단에 있었는데, 그 이전의 세대는 한국 춤 세계를 창작하고 개발했고, 우리는 그것을 발전시킨 세대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이전 세대의 실기 위주의 선생님들과 인문학적 관점에서 평론을 하면서 사회 속으로 우리를 내몬 「춤」지 사이에서 어떻게 통로를 가질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세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복희_그 시대에 「춤」지가 확실히 그런 역할을 했죠. 국 선생님이 「춤」지가 우리 무용가들을 폭풍처럼 내몰았다고 했는데, 거기에 덧붙이자면 우리가 「춤」지를 원망도 많이 했어요.(웃음)
국수호_그럼요, 그럼요. 우리가 원수로 생각하기도 했죠.(웃음)
김복희_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시기도 있었죠.(웃음) 그러다 세월이 점점 지나면서 조동화 선생님 생각도 우리를 내몰 때와 달리 시대에 따라 변하시더라고요.
우리들이 활동하던 70년대 초반에 홍신자 선생님이 공연을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사과를 먹고 던지고 그랬어요. 제가 그 공연을 보고 속으로 충격을 느꼈어요. 몸으로 움직이는 것을 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행위도 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조동화 선생님의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조동화 선생님께서 그 당시에 홍신자 선생님을 많이 띄워주셨어요. 그래서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자극이 되었어요.

기량 위주의 협소한 범주에 갇혀있던 춤을 세상으로 끌어내고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
김경애_조동화 선생님을 기점으로 연구소 위주, 기량 위주의 춤이 아카데미즘을 기반한 춤지성화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정평입니다. 마침 대학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 사회적인 변화도 있었고요. 대학 무용, 즉 아카데미즘과 춤의 지성화가 이루어졌는데 조동화 선생님께서 센 바람을 일으키셨어요. 춤지성화는 작가정신을 의미합니다. 무용가가 기량위주로 춤만 추는 것이 아니라 춤작가로서 시대정신이나 철학을 담아야 하고 사회에서 발언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무용가들을 사회의 세찬 바람 속으로 내몰았고 그런 계몽을 쫓아가는 사람은 살아남았다고 분석하신 두 분의 말씀에 피부에 와닿는 절실함을 느낍니다.
김복희_제가 정년을 이미 한 나이인데 이 나이에도 창작을 하려는 마음이 있어요. 나이가 들면 무대에 서거나 작가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 몇 안 되잖아요? 그 당시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다들 학교에서 제자만 가르친다든가 하면서 춤으로 승부를 거는 사람은 몇 명 안 남았더라고요.
김경애_예술가 정신을 갖고 리더 자리에서 이끌어 온 분들만 결국 끝까지 무용계를 건설했고 지켜낸 것이지요.
김복희_그때 폭풍을 맞은 사람 중에 이렇게 올라 올 수 있었다는 것은 깊이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춤지성화는 작가정신을 의미
김경애_조동화 선생님의 업적을 짧은 시간에 이 자리에서 논하기는 어려운 게 마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선생님은 대인이셨기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관점마다 다른 것을 짚어낼 수 있어요. 많은 일화들을 남기셨고 문학, 미술 등 주변예술과의 교류 등 춤의 지평을 넓히셨습니다. 한마디로 춤의 사회적 위상 제고에 큰 뜻이 있었습니다. 「춤」지가 탄생할 당시는 ‘춤’이라는 용어는 비지성적인 그룹에 있었어요. 고상하게 사회에서 인식하지 않는 우리말이었다고 해요. 「춤」지라고 인쇄된 명함을 친구에게 주었더니, 이런 명함 가지고 다닐 수 있겠느냐고 창피하지 않으냐고까지 말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인상깊은 선생님의 말씀이 많은데 항상 생각하게 만드는, 늘 하시던 말씀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거예요. 그 일에 맞는 사람에게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을 실천하셨다고 봐요. 좋은 일들을 늘 나누어주셨고 독점하지 않으셨는데 결과적으로 지난 수십 년의 무용사가 조동화 선생님을 중심으로 그 품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되었지요. 선생님은 자신은 이론만 던질 뿐이지 그것을 받아주고, 수행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무용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씀을 하셨죠. 조 선생님이나 그 뜻을 실천하신 두 분 세대는 춤에 대한 지사적(志士的)인 의식이 굉장히 강했고, 지금 젊은 세대들은 직업적인 의식이 강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김복희_어떻게 생각하면 모든 분야가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경애_그래서 괴리감이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들 세대의 지사적인 생각과 춤을 직업으로만 받아들이는 지금 젊은 세대들의 생각과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런 자기 헌신에서 건설의 초석을 이루고 꽃을 피웠다면 이제는 그런 봉사는 어림없고 자기성취를 목표로 활동한다고 봐야지요. 그런 면에서 세대 간이 물과 기름인 듯 겉돈다고 봐요.
두 분은 조동화 선생님과 춤의 현장을 확장시킨 주역으로 많은 추억들이 있을 거예요. 개인적인 자잘한 에피소드부터 무용계의 거시적인 안목까지 생각나시는 대로 들려주시죠.

사회 전반적인 것을 포용하는 힘으로 춤이 사회적으로 확장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
국수호_저는 송 범 선생님과 조동화 선생님 사이에서 대단히 많은 갈등을 했던 무용가 중에 한 명이었어요. 송 범 선생님은 국립무용단의 단장으로 직업 무용가의 첫 주자였고, 늘 주인공을 하셨어요. 한편 조동화 선생님께서는 평단에서 가장 앞장서 계시고, 「춤」지를 운영하셨기 때문에 두 분이 대립할 수 밖에 없었어요.
「춤」지가 1976년에 창간되었는데, 그 전에는 조동화 선생님께서 「신동아」에 춤에 대한 평론을 많이 쓰셨어요. 그런데 송 범 선생님은 평론가들의 질책을 보고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나는 나대로 간다”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도 다음 작품을 만들 때 보면 그 내용을 다 참고해서 만드셨어요. 그런데 두 선생님 사이에서 직접적인 폭풍을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