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2010년대 대표 지원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창작산실」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발레에서 시작하여 현대춤과 한국춤으로까지 확대되었으며, 각 분야별로 사업을 진행하다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총괄하기에 이르렀다. 세부적으로는 「우수작품재공연지원」이 신설되기도 하였다. 그 동안 공모를 통해 시범공연과 우수작품제작을 지원함으로써 무용계의 창작활성화를 도모해왔다고 한다면 2014년부터는 이제껏 발표된 우수작품들 중에서 몇 작품을 추려 우수작품재공연을 한 번 더 지원하게 된 것이다. 무용가들에게 좋은 작품을 만든다면 세 단계에 걸쳐 연계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2014년에는 몇 년간 발표된 창작산실 공연들에서 12개를 접수받아 최종적으로 5작품을 선정하여 각각 5,000~7,000만 원을 지원하였다. 발레는 이원국발레단의 『스코틀랜드의 꽃』,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Ballet Creative)의 『언타이틀드(Untitled)』, 조윤라발레단의 『크리스마스캐롤 스크루지』로 가장 많았으며 한국춤은 장유경무용단의 『푸너리 1.5』, 현대춤은 차진엽이 이끄는 콜렉티브에이(Collective A)의 『페이크 다이아몬드(Fake Diamond)』가 선정되었다.
그 중 연말과 연초를 장식한 조윤라발레단의 『크리스마스캐롤 스크루지』와 장유경무용단의 『푸너리 1.5』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윤라와 장유경 모두 우연찮게 지역 대학의 교수로 꾸준하고 열정적으로 창작활동을 벌여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서울에 비해 창작활동이 위축되어있는 지역 무용계에서는 대학 무용을 중심으로 창작활동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조윤라발레단의 『크리스마스캐롤 스크루지』는 작품 이미지에 걸맞게 크리스마스 시즌인 12월24~25일에 강동아트센터 대극장한강에서 공연되었다. 원전이 되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캐롤」(1843)은 지독한 구두쇠 스크루지의 개과천선을 그린 소설이다. 그 내용이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를 발레로 자세히 표현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발레가 줄 수 있는 시청각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더욱 현명한 방향이다. 조윤라는 이러한 방향성을 적절하게 찾아낸 듯하다.
전반적으로 춤이 잘 정돈되어있는듯한 인상은 무용수들에 의해 조성되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인 정영재와 김리회가 중심을 잡으면서 현대무용가 이광석과 비보이댄서 강선구가 색다른 느낌을 돋우고 이외에도 경력을 갖춘 발레무용수들이 여럿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대학 교수가 범하기 쉬운 오류는 동문무용단 그것도 어린 학생들을 손쉽게 대거 출연시킴으로써 마치 학예회와 같은 공연을 펼치는 것이다. 창작현장 일선에서는 자교출신 여부를 떠나 프로페셔널한 실력을 갖춘 무용수들을 무대에 세워야 한다. 조윤라가 그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몇몇 군무 장면에 다소 늘어진듯한 느낌은 안무 구성의 평이함에 기인하므로 이에 대한 보완은 필요하다.
충남과 서울을 오가면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이고도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벌여나간다는 점에서 조윤라의 성실성과 열의는 돋보인다. 이것이 지역 발레의 대표주자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원동력이다.
2월24~25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펼쳐진 장유경무용단의 『푸너리 1.5』는 「동해안 별신굿」의 푸너리 장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별신굿」이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면 『푸너리 1.5』는 삶과 죽음의 중간 혹은 경계인 현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를 풀어냄으로써 살고 죽는 모든 것을 포용하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이를 소박한 듯 화려하고 단순한 듯 현란한 푸너리 장단에 맞춘 춤으로 풀어낸다.
한국의 제의라는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창조한 한국춤사위와 국악연주, 무대미술, 조명, 의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를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을 펼치고 있는데 대본 및 연출에 조주현, 작곡과 음악감독에 이상만, 연희감독에 최병길, 무대미술에 구동수 등이 그들이다.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과의 관계 맺기는 기대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도 있지만 상충되어 응집력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부담이 있다. 장유경은 10~20년 이상씩 교류한 각 분야 예술가들과 함께 2013년 발표한 『푸너리 1.5』를 재제작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였다. 그럼으로써 전자의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춤은 구도적으로 단정하고 깔끔하게 진행되다가, 절정으로 향해가면서 다채로운 짜임새를 강조하기에 이른다. 정형적인 한국춤사위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유희적인 움직임을 펼치는 젊은 무용가들이 작품의 세련미를 돋운다. 물론 한국춤에도 이러한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현대춤적인 감각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강정환으로 여겨지는 남자무용수는 아직 앳되지만 한국춤의 경계를 무색하게 하는 자유롭고 유희적인 춤의 태로써 시선을 끌었다. 그밖에도 몇몇 남자무용수들이 군무의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 작품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독무를 맡은 김용철은 섬세하고 맛깔스럽게 움직임으로써 작품의 개성을 짙게 하였다.
장유경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앞서가는 감각으로 『푸너리 1.5』를 꾸며 놓았다. 한국의 제의와 춤이 미니멀리즘이나 아방가르드와 제대로 섞일 수 있다면 장유경의 『푸리너 1.5』와 같은 작품일 것이다.

「창작산실」은 무용계 핫 이슈이다. 시범공연지원, 우수작품제작지원, 그리고 우수작품재공연지원까지 모두 섭렵하면 한 작품에 억대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보통 개별적인 창작지원이 1,000~2,000만 원대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감안하면 그 몇 배 액수(많게는 10배 이상)를 지원받는 셈이다. 그렇기에 창작산실의 세 단계에 걸쳐 모두 지원받는 무용가라면 그 만큼의 책임감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우선적으로는 사업의 목적에도 나와 있다시피 우리 무용계를 대표할 만한 예술성을 갖춘 레퍼토리를 발표해야 한다. 줄어들고는 있으나 여전히 작품들 간의 수준차가 존재하고 기대치에 못 미치는 작품이 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의식할 필요가 있다.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만큼 냉철한 평가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무용가 자신이 지어야 한다. 창작산실은 이제 초기의 시행착오를 거쳐 어느 정도 시스템적으로 안정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후 선정된 무용가들에게는 이러저러한 핑계가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만큼 예술성 높은 역작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창작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자세가 더욱 절실히 필요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