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살롱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제3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정착한 바이올리니트 정요한이 지난 2월 처음으로 바이올린 독주곡집 음반을 내놓았다. 북한에서는 천재 바이올린 연주자로 어린 시절부터 명성을 얻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백고산을 사사하고 남한에서 월북한 전 서울교향악단의 악장 문학준에게도 배웠다. 평양음악학교를 마치고 김정일의 총애를 받아 국비로 모스크바로 유학해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바이올린과 지휘 과정을 마쳤다. 북한에서는 국립교향악단의 수석 연주자로 또한 김정일 악단의 대표 연주자(단장)로 김정일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활동하여 김정일이 아끼는 예술가로 활동하였다.
러시아어를 잘 구사하고 정치적인 감각도 탁월해 북한 고위층이 소련을 방문했을 때는 통역으로도 활동했던 적이 있다. 따라서 북한의 체제 선전과 문화적 위상을 알리기 위해서 동구권의 교환교수로 활동하였고, 그곳에서 자유세계의 실상을 파악하고 한국에 올 것을 결심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종교적인 문제였다. 그는 할아버지가 기독교 장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또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배운 문학준에게서 연희전문과 기독교정신을 간접적으로 체득한 것도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렇지만 북한에서 귀족적인 대우를 받았고 그를 골똘히 보살펴주던 김정일과 장성택 등의 인연도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종교적인 신념은 그의 탈출을 막을 길이 없었다. 제3국에서 건너왔다고 해도 그 길은 죽음의 길을 넘어선 것이었다. 한국에 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를 감추고 숨어서 살았다. 물론 정요한이라는 이름도 한국에 와서 새로 지은 이름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이곳저곳 뜨내기로 활약하는 동안 바이올린 귀신이라는 소문도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함께 일하자는 권고도 받았지만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기독교 교회를 중심으로 개인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김정일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후견자의 한 사람이었던 장성택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북한을 탈출해 넘어온 평양음악학교(현 김원균 음악무용대학)의 후배인 피아니스트 김예나와 3년 전 보금자리를 꾸몄다. 김예나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최근에 학업을 마쳤다.
정요한이 내놓은 음반은 첫 번째 곡인 「그 은혜 놀라워」(Amazing grace)로 시작한다. 음반의 제목도 그렇게 달았다. 죽음의 길을 넘어서 한국에 정착한 그의 삶의 기적을 연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담아 정사인 곡, 박민혁 편곡의 작품을 애닯게 연주했다. 사라사테의 「집시의 탄식」(Zigeunerweizen)은 방랑자 같은 자기 처지를 표현한 것 같다. 그밖에 「사명」이라는 직접 편곡한 곡도 담았다. 많은 작품들이 그의 손을 거쳐 편곡되었다.
바이올린 솜씨는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국내에서 녹음되어 음향 기술적인 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있지만 부부 앙상블의 돈독함과 그 감동은 음반의 이름과 같이 ‘그 은혜 놀라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