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살롱

만물이 소생하는 봄. 기생충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온 생물들이 기지개를 펼 때가 바로 겨우내 숙주의 몸 안에서 기회를 엿보던 기생충에게는 최적의 시간이다. 겨우내 먹이를 먹지 못한 숙주들은 게걸스럽게 먹이를 먹어대고, 기생충은 음식물을 통해 새로운 숙주로 이동한다. 흙과 풀에 붙어 있는 기생충 알들이 활동을 시작하고, 겨우내 풀을 뜯지 못했던 초식동물들이 풀을 뜯으며 갑작스레 기생충 감염률이 증가하는 현상을 ‘봄의 폭발’이라 부르기도 한다. 봄은 잉태와 출산의 계절이기도 하다. 많은 생물들이 봄철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는다. 기생충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수 없이 많은 암컷과 수컷들이 한데 모여들고, 면역계가 취약한 새끼들이 쏟아져 나오는 봄철은 기생충에게 황금기나 다름없다.
개구리에 기생하는 다구흡충(Polystoma integerrimum)은 개구리의 한살이를 절묘하게 이용한다. 간흡충(간디스토마)의 아주 먼 친척인 다구흡충은 특이하게 개구리의 방광에 기생한다. 먼 거리를 이동하기 힘든 다구흡충이 다른 개구리로 옮겨갈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은, 개구리들이 번식을 위해 한 웅덩이로 모여드는 시점, 그리고 올챙이들이 한데 모여있을 때다. 개구리의 방광에서 봄이 오기만을 앙망하다, 마침내 경칩에 개구리가 깨어나 번식을 위해 성호르몬을 분비하기 시작하면 활동을 개시한다. 봄이 되어 성호르몬이 넘쳐나기 시작하면 개구리의 번식기관들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고, 정자와 난자를 생산해 알을 낳을 채비를 한다. 동시에 방광에서 성호르몬의 변화를 감지한 흡충들도 짝짓기를 하며 알을 품기 시작한다.
이렇게 생산된 흡충 알들은 개구리가 소변을 보는 틈을 타 개구리가 번식한 웅덩이에 흩뿌려진다. 기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 달 안팎이면 흡충은 부화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점이면 딱 개구리 알들이 올챙이가 될 무렵이다. 올챙이는 아가미로 숨을 쉬는데, 흡충은 아가미에 붙어 성장한다. 하지만 아가미에 평생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면 아가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가미에서 성장한 흡충은 살을 파고 들어가 방광으로 옮겨가는데, 이 과정은 채 일분도 걸리지 않는다. 개구리의 한살이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기생충의 절묘한 타이밍은 개구리의 호르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낱 기생충이지만 계절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완벽한 타이밍을 맞춰간다.
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녹음이 우거지고 만물이 소생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쟁자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라도 모든 생물들은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튼튼하고 많은 새끼들을 낳고 자라나야 살아남을 수 있다. 겨울을 견뎌낸 강인한 생명들은 제한적인 에너지와 공간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동시에 수많은 생물들이 다음 세대를 준비하며 아주 복잡하면서 매우 정교한 관계를 형성한다. 어찌 보면 기생충이 있기 때문에 꿈틀대는 봄철의 생명력이 더 치열하고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생하는 생명들 뒤에 서로 먹고 먹히며 기생하고 공생하는 생활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봄에 느끼는 아름다움도 없을 것이다.